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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Pick] 조선의 뜨끈∼뜨끈한 온돌, 미국 열차에 설치될 뻔했다?

김성화

입력 : 2023.01.23 07:49|수정 : 2023.01.23 21:49


"조선의 온돌을 미국 열차에 적용해 봅시다"

고종 주치의였던 한 미국 출신 의사가 조선의 온돌을 미국 열차에 적용하려 애쓴 사실을 혹시 아시나요?

그 주인공은 바로 조선 구한말 왕실 주치의이자 국내 최초의 서양식 병원 '제중원'을 설립한 의료선교사 호러스 알렌(1858~1932)입니다. (* 1904년 세브란스병원으로 이름을 바꾼 제중원은 세브란스의 전신이기도 함.)

의료선교사인 알렌은 의학뿐만 아니라 호기심 많은 발명가이기도 했는데요, 그의 발명 사랑은 조선 생활을 하면서 반한 온돌을 활용한 아이디어에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1887년 9월 10일, 알렌은 뉴욕의 특허회사인 메저즈 문 앤드 컴퍼니(Munn & Co)에 '온돌 난방 객차' 특허를 제안하는 편지를 보내게 됩니다.

당시 조선에서 직접 경험한 온돌을 상세히 설명하면서 객차에 이 원리를 적용하려고 했던 것인데요, 알렌의 주장은 이랬습니다.

"달리는 객차의 굴뚝에서 빠져나가는 폐열로 객차를 난방하게 되면 최대 70%에 이르는 열효율을 내면서도 따뜻함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편지와 함께 알렌이 직접 꼼꼼하게 그린 난방 객차 도면과 작동원리를 설명한 그림은 그가 이 아이디어를 현실화하기 위해 얼마나 깊이 고민하고 연구했는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폐열을 활용해 객차를 난방하는 원리를 설명한 알렌의 그림. 굴뚝을 빠져나가는 열을 표시 부분으로 통과하게 해 객실을 난방하는 원리. (그림=세브란스병원 제공)기관의 연기와 폐열을 전달하기 위해 객차 아래로 연도(煙道)를 설계한 그림(위)과 객차 바닥의 돌판 그림(아래). (그림=세브란스병원 제공)
알렌의 일대기를 다룬 자료집 편역을 맡은 연세대 박형우 객원교수는 "고종의 주치의였던 알렌은 조선 의학 발전에 기여했을 뿐만 아니라 기차와 관련된 여러 발명을 고안했다"며 "자료집을 통해 의료선교사이자 발명에 관심이 많았던 알렌이 조선에서 보낸 삶을 확인할 수 있다"고 전했습니다.
 

'조선 최고 명의'된 미국 의사,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병원 세우다


1884년 9월 최초의 선교사로 조선을 방문해 서울에 거주하고 있던 알렌은 한국에 서양 의학이 본격적으로 뿌리내리게 되는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결정적인 사건으로 명성왕후의 조카인 민영익을 서양식 외과 수술로 살린 일인데요, 알렌이 조선에 도착한지 불과 3개월이 지난 1884년 12월 4일 갑신정변이 일어난 그때 민영익이 자객에게 칼을 맞게 됩니다.

동맥이 끊기고 머리와 몸이 칼에 수차례 찔려 사경을 헤매던 민영익을 알렌은 조선에서는 볼 수 없던 서양식 외과 수술로 간신히 살려냈고, 알렌의 수술 덕분에 민영익은 목숨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3개월 만에 조카 민영익이 완쾌하자 명성왕후는 크게 기뻐하며 알렌에게 고마움의 뜻으로 10만 냥을 하사했는데, 지금으로 치면 무려 50억 원이나 되는 거금이었습니다.

민영익을 살린 일이 조선팔도에 삽시간에 퍼지면서 알렌은 최고의 명의로 이름을 떨치게 되고, 고종의 신임을 얻은 그는 왕실 주치의뿐만 아니라 최장기 주한 미국 공사로 지내며 승승장구합니다.

또 조선인의 질병 치료와 조선인 의료진 양성을 목적으로 서양식 병원 설립을 고종에게 제안하게 되는데요, 그렇게 탄생한 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병원 광혜원(廣惠院)입니다.

1885년 2월 29일에 문을 연 광혜원은 이후 3월 12일 제중원(濟衆院 널리 민중을 구제하는 병원)으로 이름을 바꿨고, 1904년에는 지금의 이름인 세브란스병원이 되었습니다.

이후 미국과 조선을 오가며 많은 애를 쓴 알렌은 1905년 을사늑약 체결 후 미국으로 돌아가 의사로서 여생을 보냈습니다.

조선 구한말 왕실 주치의이자 발명가였던 호러스 알렌(1858~1932)
여담으로 알렌은 기록을 잘 남기는 습관이 있기도 했다는데요, 1924년 알렌이 뉴욕 공립도서관에 기증한 한국과 관련된 생산·수집한 모든 기록물 쌓아놓고 높이를 쟀더니 2.74m였다고 합니다.

또 조선 생활 초반 김치 냄새에 힘들어하던 알렌은 나중에 가서는 "나는 김치를 즐겨먹는 극소수의 외국인이다"라고도 했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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