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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 대응을 촉구했다가 해고당한 과학자 이야기

심영구 기자

입력 : 2023.01.19 13:00|수정 : 2023.01.19 13:00

By 로즈 아브라모프(뉴욕타임스)


겨울이 따뜻해지면서 해충이 얼어 죽지 않은 탓에 썩어가는 솔송나무. 사진=Desmond Picotte / 뉴욕타임스
 
*로즈 아브라모프(Rose Abramoff) 박사는 기후변화가 자연과 인간이 관리하는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지구과학자다.
 

새해가 밝고 얼마 되지 않아 나는 오크리지 국립연구소(Oak Ridge National Laboratory)에서 해고됐다. 앞서 동료 과학자들에게 기후변화에 맞서 행동에 나설 때라고 호소한 게 해고 사유였다. 지난달 열린 미국 지구물리학회(American Geophysical Union) 회의에서 참가자들이 모두 모이는 점심 세션이 시작하기 직전, 나는 동료 기후과학자 피터 칼무스(Peter Kalmus)와 함께 준비해 간 팻말을 펼쳐 들었다. “실험실에서 나와 거리로 나섭시다.”라고 쓴 팻말이었다. 몇 초 만에 경호원들이 우리 손에 든 팻말을 빼앗아 갔다. 그 몇 초 사이에 우리는 동료 과학자들에게 간곡히 청했다. 과학자로서 우리가 아는 사실들을 대중에게 적극적으로 알리자고, 지구가 죽어가고 있다는 걸 모두가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지구과학자와 천문학자 6만 명을 회원으로 둔 미국 지구물리학회는 우리의 행동을 문제 삼아 곧바로 우리를 학회에서 쫓아냈다. 이어 우리의 발표도 학회 일정에서 삭제했다. 이어 학회는 우리가 한 일의 규정 위반 여부를 정식으로 조사하고 있다.

이어 1월 3일, 나는 지난 1년 동안 과학자로 일해온 테네시주 녹스빌 외곽에 있는 오크리지 국립연구소에서 일방적으로 해고 통보를 받았다. 내가 알기로 기후변화에 맞서 행동을 촉구했다가 직장에서 해고된 지구과학자는 내가 처음이다. 앞으로 나 같은 피해자가 얼마든지 또 나올 수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두렵다.

오크리지 측은 나를 해고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고 말했다. 해고 사유는 다음과 같다. 나는 정부의 지원을 받아 학회에 참석한, 즉 공무상 출장 중이었다. 그런데 공무상 출장 중에 연구소의 직원 윤리강령을 어겼기 때문에 해고가 불가피하다는 거다. 해당 윤리 강령에는 과학적으로 진실한 연구를 할 것, 연구소의 명성을 깎아내리는 일을 하지 말 것과 같은 내용이 있고, 정부 재원을 “반드시 승인된 용도로만 책임감을 가지고 정당하게, 주의해서 적절히 사용해야 한다”는 조항도 있다.
 
점심 세션 전에 무대에 올라 구호를 외치기로 했을 때 칼무스 박사와 나는 무대에서 끌려내려오거나 점심 세션이 열리는 방에서 쫓겨날 각오는 하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의 연구 자체가 학회 프로그램에서 삭제되거나 내가 이 일로 일자리를 잃게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지난해 내가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행동에 다른 과학자들과 함께 참여하기 시작했을 때 오크리지 연구소의 내 상사는 대중이나 언론을 상대로 인터뷰할 때 반드시 개인 자격으로 해야 하며, 연구소가 엮이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주의를 줬다. 나는 상사가 정해준 지침을 지키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했다. 학회에서 행동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펼치면서도 우리가 속한 기관은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칼무스 박사는 나사(NASA)의 제트추진연구소(Jet Propulsion Laboratory) 소속이다.

미국 지구물리학회와 오크리지 연구소에서 내가 받은 징계는 절망적인 현실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준다. 주류 과학 기관과 연구소들도 누구보다 상황을 잘 아는 과학자가 기후변화를 막자고 호소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현실 말이다. 물론 나도 예의를 갖춰가며 의견을 나누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게 지지부진 시간 끌다가 지구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망가져 버린다면, 그때는 후회해도 아무 소용없는 일이다.

나도 예전에는 ‘고분고분한’ 과학자였다. 나는 알래스카 우치악비크(Utqiagvik)에서 영구동토가 녹는 것을 관찰했고, 동토가 녹으면서 땅에서 대기 중으로 얼마나 많은 온실가스가 방출되는지 측정했다. 데이터를 채워 넣고, 이를 바탕으로 평균 기온이 높아진 지구의 대지에서 공기 중으로 얼마나 많은 탄소가 방출될지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나는 어디까지나 연구자로서의 본분을 다하는 것만 생각했다. 관찰과 연구를 통해 얻은 데이터는 우리가 머지않아 재앙을 맞이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었지만, 관찰 결과를 해석하고 대책을 세우는 일은 내 몫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겨울날이었다. 뉴잉글랜드 솔송나무가 썩는 냄새가 온 숲을 가득 채웠다. 원래는 추운 겨울이 되면 얼어 죽었어야 할 해충이 겨울이 따뜻해지면서 죽지 않고 살아남아 나무를 갉아먹어 죽은 나무가 썩는 냄새였다. 아득한 절망감과 두려움이 덮쳤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연구해 봤자, 내가 출판하는 논문을 읽는 건 기껏해야 동료 과학자들 몇 명이 전부일 테고, 그래서는 아무것도 달라질 수 없었다. 금방이라도 우리에게 닥칠 기후 재앙을 가장 먼저 알아챌 수 있는 일을 하면서도 정작 그 위험을 세상에 알릴 수 없다는 사실도 속상했다.

그렇지만 나는 그때까지도 순진했다. 과학자들이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열심히 연구하면, 과학 기관들이 이를 잘 정리해서 정치권과 정부, 언론에 전달해 줄 거라고 생각했다. 현실은 그러지 못했다. 그런 통로가 없지는 않았지만, 부족해도 너무 부족했다. 그러는 사이 탄소 배출량은 줄어들기는커녕 계속 늘어났고, 지구는 계속 뜨거워지고 있다.
 
몇 년 전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걱정하는 전 세계 과학자들이 모여 “과학자의 반란(Scientist Rebellion)”이라는 단체를 결성했다. 과학자의 반란은 비폭력 시민불복종 운동을 전개했다. 한참 동안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의미 있는 대책이 나오기를 헛되이 기다리던 나는 마침내 과학자의 반란에 참여하기로 했다.

과학자의 반란 회원이 되고 내가 한 첫 시위는 백악관 정문에 내 몸을 사슬로 묶고, 바이든 행정부에 기후 위기를 선포하라고 촉구한 일이었다. 내 손목에 쇠사슬을 감은 날 이후 나는 지금까지 비폭력 시위에만 참여했으나 벌써 세 번이나 체포됐다. 오크리지 연구소의 상사는 내게 조심하라고 주의를 줬지만, 연구소 차원의 징계는 없었다.

그러나 나는 계속해서 더 적극적으로 시위에 참여했다. 과학자들이 직접 행동에 나서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자, 언론은 이를 긍정적으로 조명했고, 오랫동안 탁상공론에 그치던 정책이 도입되는 등 효과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과학자들은 전 세계 13개국에 있는 공항 터미널 수십 곳에서 개인 전세기를 이용한 호화 여행이 기후변화에 끼치는 악영향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시위를 벌인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스페인 정당 포데모스(Podemos)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에 개인 전세기 사용을 줄이기 위해 필요한 기준을 마련하자는 청원서를 냈다. 과학자들이 행동에 나서자 사람들이 귀를 기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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