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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 "AI 예술에도 '아우라'?"라는 질문에 인간과 AI가 내놓은 답

정혜경 기자

입력 : 2022.12.11 09:03|수정 : 2022.12.11 11:49

창작의 언덕을 오르는 인공지능 2편


"좋은 예술가는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Good artists copy, Great artists steal)."

여러분들은 이 말에 동의하시나요? 뭔가를 배울 때를 떠올려보세요. 보통 우리는 수업이나 책, 요즘은 유튜브 또는 <당신의 지식 레시피, 스브스프리미엄> 등에서 이미 누군가가 성취한 것을 반복해 인식하면서 이 성취들 역시 어떤 '시스템'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죠. 그러다 보면 이른바 '지식'으로 부를 수 있는 인식의 체계가 되기 위해 갖춰야 하는 성립 요건을 체화하게 되고, 이윽고 이를 응용해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있게 됩니다.

인간이 만드는 AI의 기술적 지향점은 결국 이런 인간의 학습 패턴과 인식을 그대로 이식하는 일일 겁니다. 그렇기에 Zero-shot 단계(명령-답변)의 기계적 응답이 아닌 함축적, 고차원적 피드백을 설계하기 위해선 인간의 인식에 가까운 다양한 경우의 수를 마련하기 위한 방대한 데이터가 필요할 테고요.
 

["AI 예술 작품엔 아우라가 있나요?" AI에 물었더니]


지난 편(창작의 언덕을 오르는 인공지능)에서 인간 지능과 큰 차이를 발견하기 어려운 GPT 4.0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드렸는데요. 기존 시리즈와의 차이는 100배 이상 차이가 나는 '매개변수'라고도 말씀드렸습니다. 더 많은 경우의 수를 학습한다는 점입니다.

사실 지난 1일(목) 오픈AI가 바로 직전 단계인 GPT 3.5를 출시해 업계에서 큰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자연어처리 모델 '다빈치-003'과 대화형 모델인 '챗 GPT'인데요. 특히 '챗 GPT'는 AI 연구진들 사이에서도 "충격적"이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습니다. 인터뷰를 위해 만난 카카오브레인의 한 엔지니어는 "사람이 작성한 것과 전혀 분간이 되지 않는다"라고 평가했습니다.

현재 누구나 무료로 사용할 수 있게 오픈되어 있는데요. 궁금하신 분들은 오픈AI 계정만 있으면 여기서 해보실 수 있습니다. 저는 먼저 영어로 "삿포로 여행을 5일간 다녀올 예정인데 관광 일정을 어떻게 짜는 것이 좋겠느냐"고 입력해보았습니다. 그러자 로딩 시간 없이 1-2초 만에 "관광 일정을 짜기 전에 스스로 어떤 여행을 원하는지 먼저 파악해보라"라는 조언을 담은 약 2천 자 분량의 답변이 작성되었습니다.

심지어 한국어로도 질문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 다소 추상적일 수 있는 질문을 던져봤습니다. "AI가 만든 예술 작품에도 '아우라(Aura)'가 있다고 생각하나요?"라고 질문을 입력했습니다.

역시 지체되는 시간 없이 아우라의 개념 설명("사물이나 사물을 감정적으로 인식하고 그것을 설명하는 말")과 함께 "AI가 만든 예술 작품은 작가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 프로그램이 자동으로 생성한 결과물이므로 아우라 개념을 적용하기엔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고 명쾌한 한국어 문장으로 대답했습니다.

챗 GPT를 사용해 본 결과. 불과 몇 초 만에 영어와 한국어 문장을 만들어냈다
AI가 거침없이, 그리고 마치 사람이 칼럼이나 개인 블로그 등에 작성한 글의 느낌을 주는 유려한 한국어 문장을 작성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것이 이른바 인터넷 시대가 열린 이후 정보를 습득하는 주류 방식인 '검색'의 최종 진화 형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지도 챗GPT 등장 소식을 전하는 기사의 제목을 "Google is done"이라고 뽑았나 봅니다.

대화를 이어가는 동안 이전에 작성한 대화 역시 해당 서비스 사용자를 이해하기 위한 학습의 데이터로 저장됩니다. 부적절한 요청은 거부할 수 있고 대화 중 추가 질문에 따라 자신의 실수 여부도 인정하는 기능도 포함되었습니다.

그간 검색 엔진 사용자가 목적과 의도에 맞는 검색 결과를 위해 여러 검색 키워드를 조합해야 했던 것과 대조적으로, 이른바 '눈치'까지 탑재한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여전히 한계도 있습니다. 더 구체적인 상황에서 전문적인 지식을 요구하는 질문을 던지자(회사의 성과급 체불 문제에 근로자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답변이 중간에 끊기거나 에러 메시지가 뜨기도 합니다.

오픈AI는 이번 GPT 3.5를 알고리즘에 인간의 피드백을 통한 강화 학습을 적용해 이전보다 '기계스러움'을 벗어나 이용자 지시에 더 사람처럼 반응하도록 훈련한 모델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아직 완벽한 기술에 이르진 못했지만 이전보다 훨씬 '인간처럼 반응하는' 챗봇을 확인한 업계에선, 이르면 12월 또는 내년 초 출시될 것으로 예상되는 GPT 4에 대한 기대도 커지고 있습니다.
 

[AI 창작의 시대 = 인간 창의성 2.0 시대]


구글을 긴장하게 만들 정도로 발전 속도가 가파른 AI는 사실 창작 영역에서 이전에 없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할 수 있게 도와주는 도구로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연세대 미디어아트학과 오영진 객원교수는 이와 관련해 "인공지능은 도구 또는 대리 행위자의 두 가지 쓰임으로 긍정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자율 생성 등의 기능은 그전에 인간이 해오지 않았던 표현의 영역을 열어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오 교수는 오히려 AI는 인간의 새로운 창의성을 열어주는 존재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인공지능이 화가를 밀어낸다, 시나리오 작가를 밀어낸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얘기다. 대체로 높은 레벨의 창의성은 인공지능을 사용하더라도 인간이 리터칭을 해줘야 한다. 이 역할은 앞으로도 극복이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인공지능 신경망의 확률적 결합의 원리로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서로 다른 개념을 점프시키는 창의성을 흉내 내기 쉽지 않다."

스프 이미지
실제 내년 초 상용화를 앞두고 있는 카카오브레인의 <B-DISCOVER> 서비스엔 GPT 시리즈를 만든 오픈AI의 이미지 생성 머신 'DALL-E'에서 먼저 선보인 기술처럼 자연어로 명령문을 입력하면 비슷한 화풍의 배경을 자동으로 추가 또는 확장해주는 '아웃페인팅' 기술을 적용할 예정입니다. 총 1억 8천만 장에 이르는 이미지-텍스트 쌍이 학습되었습니다. 1024x1024 크기의 정방형 이미지가 생성되면 이를 중심으로 같은 크기의 정방형 이미지들을 점차 화면 외곽으로 확장하며 배경을 채워 넣을 수 있는 서비스입니다.

화면을 채워 넣을 때에도 명령어를 입력하면 명령에 따른 요소들이 오른쪽 구석, 왼쪽 상단, 정면 아래 등에 등장해, 가운데 최초의 이미지로부터 연결성을 갖는 새로운 이미지가 계속 생성됩니다. 담당 엔지니어인 김세훈 공학박사는 "예를 들면 아이들을 위한 동화나 삽화 같은 그림을 그리는 데 용이하게 쓰일 수 있을 것 같다. 그림을 잘 못 그리는 일반인들도 AI 서비스를 활용해 머릿속에 있는 형태를 최대한 구현할 수 있게 도울 수 있지 않을까 한다"고 밝혔습니다.

이런 도구들은 그림 솜씨가 부족한 일반인들을 위한 서비스로 쓰일 뿐 아니라 예술의 새 영역을 확장할 수 있는 기회로도 평가받고 있습니다. 서양화가 두민 작가가 카카오브레인 AI 머신 '칼로'와 협업한 작품이 일종의 기술-예술 하이브리드 영역의 실제 사례입니다. 전편에서 소개한 <스페이스 오페라 극장>과 비슷한 경우입니다.

AI 칼로와 두민 작가가 협업한 <Blessing you>
다만 작가의 머릿속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심상, 구도, 도구들을 표출할 '명령어'를 떠올리는 작업, 그리고 조금씩 구도를 변형하는 수정 작업뿐 아니라 AI가 창작한 결과물을 본래 창작의 의도에 부합하는 형태로 바꾸어 직접 그렸습니다.

이태원 참사 직후 그림을 그리게 된 두민 작가는 작품 창작에 착수하며 애도의 뜻을 전할 수 있도록 '노트르담 성당 내부', '위안', '천사의 느낌', '성스러운 분위기', '영광' 등의 명령어를 입력했습니다. 이미 입력된 이미지 데이터 값 때문에 AI 칼로가 만들어 낸 '천사'의 이미지는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서양인으로 나왔지만 구도와 빛의 형태만 참고해 유화로 색을 직접 배합해 만들었고, 천사를 동양인으로 바꾸어 그렸습니다.
 

[AI 창작물, 누구의 소유가 될 것인가?]


다만 AI의 데이터 집적 능력과 '인간다워짐'에 가까워지는 알고리즘 생성 사이클이 더 빨라질수록 이를 뒷받침해 줄 제도적 장치의 사각지대는 점차 더 커지고 있습니다. 과거와 달리 예술인들 사이에서 인공지능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은 주류가 아니지만('자칫 내 직업을 잃을 수도 있어!'라는 우려 말이지요), 이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접근성의 차이와 쉽게 선 긋기 어려운 저작에 대한 권리 등은 여전히 보완해야 할 숙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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