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형법 제329조 위반 절도죄 현행범 되시겠습니다."
그날 처음 본 사람에게 내가 처음 건넨 말이었다. 다행히 나와 비슷한 심정의 사람이 많았는지 내 말이 끝나자마자 엘리베이터 안에서 와하하 웃음이 터졌고 그도 겸연쩍은 듯 웃었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그는 역시 텀블러를 반납하지 않았고, 직원은 미회수 텀블러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없었다고 한다. 세상은 느리게 변한다. 결국 세상을 변하게 하는 것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작은 변화다. 텀블러를 끝내 반납하지 않았던 그가 살아가며 '절도'라는 단어를 마주할 때마다 약간씩 불편해지기를 바란다. 스스로 돌이켜서 변화하기 어려운 우리네 인생에 때로는 그런 작은 파동들이 작동한다는 것을 믿는다.
"사건 속에서 내가 힘을 보태는 일은 '이 사람이 원하는 진짜 자기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그런데 정작 사회는 '한 사람의 온전한 회복'을 기대하는 것 같지 않다. 기술은 이미 3차원 가상세계가 통용되는 메타버스의 시대로 진일보했음에도 사회 수준은 제자리걸음이다. 인권 감수성은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채 획일적인 기준으로 사람들을 줄 세우고, 피부색이나 성별, 출신 배경, 장애와 같은 다양한 소수성을 차별의 도구로 삼는 일이 여전하다."
"법정에서 사회의 어두운 축소판인 사건들을 하나하나 펼쳐보면 더 절망스러울 때가 많다. 다른 사람의 권리를 짓밟았으면서 끝까지 아니라고 우기는 인간, 자기 합리화의 달인들을 거의 매 사건마다 마주한다.
연약하고 추악한 인간의 단면을 들여다보는 것이 나의 일이지만, 왠지 이 일을 금방 그만둘 것 같지는 않다. 아마도 어릴 때부터 별로 무난하지 않았던 내 성격 때문인 듯싶다." -<들어가며>에서
"일을 하다 보면 좋게 좋게 넘어가지 않아야 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악의적으로 저러는 건 아니겠지 하면서 그냥 넘어갈까 하는 순간들을 마주할 때, 뒤로 물러서지 않고 그 마음을 어떻게라도 표현해버리는 나 자신이 솔직히 좀 당황스러울 때도 있다."
"세상은 느리게 변한다. 결국 세상을 변하게 하는 것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작은 변화다. 텀블러를 끝내 반납하지 않았던 그가 살아가며 '절도'라는 단어를 마주할 때마다 약간씩 불편해지기를 바란다. 스스로 돌이켜서 변화하기 어려운 우리네 인생에 때로는 그런 작은 파동들이 작동한다는 것을 믿는다."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해야 좋은 세상이 온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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