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당 대표에게 당원권 정지 6개월의 중징계가 내려진 초유의 사태 6시간 만에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는 직무대행 체제 돌입을 선언했습니다. 불과 그 1시간 전 인터뷰에서 '대표직에서 물러나지 않겠다'는 이 대표의 울분 섞인 불복 선언을 "징계 효력이 이미 발생했다"며 일축했습니다.
어제(8일) 오후 당 최고위원들과의 비공개 면담 이후 권 원내대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 윤리위는 국가로 이야기하면 사법부에 해당하기 때문에 사법부에 해당하는 윤리위 결정에 대해선 수용할 수밖에 없다, 수용해야 한다."
하지만, 당내 사법부인 윤리위의 결정, 또 그 근간이 되는 당의 헌법과 법률, 당헌·당규의 해석을 놓고 이 대표와 권 원내대표 측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습니다.
이 대표가 먼저 내세운 당규는 윤리위 규정 30조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내가 당 대표이기 때문에 정치적 사유로 내려진 징계 처분을 최고위원회 의결을 거쳐 취소 또는 정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30조 (처분의 취소·정지) 당 대표는 특별한 사유가 있는 때에는 최고위원회의의 의결을 거쳐 징계 처분을 취소 또는 정지할 수 있다.
반대로, 권 원내대표 측은 징계위 의결 즉시 이미 이 대표는 대표 권한이 박탈됐다며 이 대표 주장의 근간을 흔들고 나섰습니다. 이 대표는 더 이상 대표가 아니기 때문에 징계 처분을 취소하거나 정지할 권한도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이 대표는 윤리위 규정 23조 2항으로 맞섰습니다. 징계의 효력이 발휘되도록 하는 '징계처분권'이 자신에게 있기 때문에 아직 징계 효력이 발생하지 않았다는 논리입니다.
제23조 (징계 절차의 개시와 징계처분권자)
② 위원회의 징계 의결에 따른 처분은 당 대표 또는 그 위임을 받은 주요 당직자가 행한다.
당 윤리위 규정은 '당 대표' 또는 '위임을 받은 주요 당직자'를 징계처분권자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대표는 자신이 대표이기 때문에 징계의 처분권 또한 자신에게 있으며 스스로 징계의 처분을 보류할 수 있다는 해석을 내놓은 반면, 권 원내대표 측은 '위임을 받은 주요 당직자'인 이양희 당 중앙윤리위원장이 이미 이 대표 징계처분권을 행사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양희 윤리위원장에게 대체 누가 징계처분권을 위임해줬다는 것일까. 당무감사 업무를 했던 한 관계자는 "관행상 당 윤리위원장에게로 징계 처분 권한이 넘어가는 것으로, 당 대표가 따로 권한을 위임해주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고 답했습니다. 특히 "당 대표가 징계 대상이 되는 이번과 같은 경우엔 특히 당 대표가 아닌 이양희 윤리위원장이 징계처분권을 위임받는 것이 맞는다"고 덧붙였습니다. 반대로, 이 대표 측 관계자는 "윤리위는 당의 하부 기관 중 하나"라며 "징계처분권을 위임할 권한 자체가 당 대표에게 있기 때문에, 당 대표가 사전에 징계처분권을 이양희 위원장에게 공식적으로 위임했어야 권 원내대표 측 주장이 성립한다"고 반박했습니다. 이 같은 징계 처분 자체에 심각한 절차적 하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당 사무처 관계자는 윤리위 규정 21조를 들며 권 원내대표 측 주장에 힘을 실었습니다.
제21조 (징계의 종류 및 절차)
① 징계는 제명, 탈당 권유, 당원권 정지, 경고로 구분한다.
② 당원에 대한 제명은 위원회의 의결 후 최고위원회의의 의결을 거쳐 확정하며, 국회의원에 대한 제명은 위원회의 의결 후 의원총회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확정한다.
③ 탈당 권유의 징계 의결을 받은 자가 그 탈당 권유 의결 통지를 받은 날로부터 10일 이내에 탈당신고서를 제출하지 아니할 때에는 위원회의 의결을 거치지 아니하고 지체 없이 제명 처분한다.
④ 당원권 정지는 1월 이상 3년 이하의 기간을 정하여 한다.
⑤ 정당한 사유 없이 당에서 실시하는 교육을 받지 아니하거나 1년 동안 당비를 3월분 이상 납부하지 아니한 당원은 위원회의 의결로 당원으로서의 권리 행사를 정지시킬 수 있다.
⑥ 징계 후 추가 징계 사유가 발생한 경우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전 징계보다 중한 징계를 한다.
21조 ②항을 보면 가장 강력한 수준의 징계인 제명의 경우 최고위 의결을 거쳐 확정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지만, 그보다 낮은 수준의 징계의 경우 따로 최고위 의결 같은 추가 절차를 거쳐야 할 필요성이 명시돼 있지 않습니다. 때문에 제명보다 낮은 수준의 징계는 보통 윤리위 의결 즉시 그 효력이 발휘되는 것으로 봐왔고, 그것이 관행이라는 해석입니다. 특히, 이 관계자는 ③항의 제명 다음으로 강력한 징계인 '탈당 권유'의 경우 징계 의결 통지를 받은 뒤 10일 내로 탈당 신고서를 내지 않으면 위원회 의결 없이 제명 처분하는 것으로 돼있는 부분을 강조했습니다. 그 말인즉슨 징계 의결 즉시 탈당 권유의 효력이 발휘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일반적으로 당원권 정지와 경고 처분의 경우엔 '탈당 권유'보다 더 깊은 수준의 논의를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일 테고, 징계위 의결 이후 즉시 효력이 발휘되는 것으로 보는 것이라고 당 사무처 관계자는 설명했습니다.
엇갈리는 해석에 대해 1995년에 이 윤리위 규정을 만드는 데 참여한 인명진 전 자유한국당 비대위원장은 SBS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윤리위에서 결정한 순간 당원권 정지가 발효되는 게 맞는다"며 "당 대표가 자기 자신의 징계를 취소할 수는 없다"는 해석을 내놨습니다.
그럼에도 당헌·당규는 각 상황을 세세하게 규정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각자가 자신에게 유리한 전례들을 참고해 해석할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 이에 공은 국회 밖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이 대표의 징계 처분 효력 집행 정지 신청에 대한 법원의 결정이 첫 번째 변수입니다. 징계위 개최 전부터 이 대표는 이미 법원에의 징계 처분 효력 집행 정지 신청을 예고했습니다. 법원이 정치권 내부 문제에 판결로 개입하는 경우는 이례적이지만, 법원이 이 대표의 신청을 인용할 경우 이 대표는 본안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대표직에 복귀할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이 대표의 대표직 복귀 여부와는 관계없이 또 다른 변수, 수사기관의 판단에 따라 이 대표가 또다시 징계위 문턱에 서게 될 가능성도 거론됩니다. 윤리위 규정 21조 6항에 따르면 징계 후 추가 징계 사유가 발생한 경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전 징계보다 중한 징계를 하도록 돼 있기 때문입니다.
제21조 (징계의 종류 및 절차)
⑥ 징계 후 추가 징계 사유가 발생한 경우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전 징계보다 중한 징계를 한다.
당 사무처 관계자는 해당 조항에 따르면 당원권 정지 6개월 기한이 만료된 뒤라도 이 대표에게 불리한 검경 수사 결과가 나오면 추가 징계를 받게 될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여기에 더해 윤리위 규정 22조도 한 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제22조 (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자의 직무 정지 등 징계 특례)
① 다음 각 호와 관련한 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자는 기소와 동시에 당내 각종 경선(국회의장‧부의장‧상임위원장 후보자 선출을 위한 선거 제외)의 피선거권 및 공모에 대한 응모 자격이 정지되고 당협위원장 및 각급 당직을 맡고 있는 자는 그 직무가 정지된다.
1. 살인, 강도, 강간 등 강력범죄
2. 강제추행·공연음란·통신매체이용음란·성매매알선 등 성범죄, 사기, 공갈, 횡령·배임, 음주운전, 도주차량운전, 아동 및 청소년 관련 범죄 등 파렴치 범죄
3. 뇌물과 불법정치자금 공여 및 수수, 직권남용 등 부정부패 범죄
국민의힘 당규상 '성범죄'와 관련해 기소되면 기소와 동시에 당내 각종 경선 피선거권 등이 제한되고 직무가 정지됩니다. 경찰은 일단 시효가 다 한 이 대표의 성 상납 의혹에 대해 포괄일죄(여러 개의 행위가 포괄적으로 1개의 구성 요건에 해당하여 1개의 죄를 구성하는 것)를 적용할 수 있는지 살펴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 대표의 성 상납 혐의가 수사기관에서 입증될지, 또 입증된 혐의를 '성범죄'로 분류할 수 있을지도 문제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국민의힘 당헌·당규를 살펴본 뒤 당 관계자에게 "규정이 너무 성겨서 정치적으로 악용될 소지가 많은 것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이 관계자는 "재량의 범위가 넓어서 엉성해 보이지만 나름 다양한 지도부와 정치인들의 고민과 욕심이 녹아 있는 것"이라며 "권 원내대표든 이 대표든 단순히 정치적으로만 밀어붙일 순 없을 것"이라고 반박했습니다. 하지만, 이 대표의 성 상납과 증거 인멸 교사 의혹의 폭로 배경을 놓고 각종 의혹이 제기되기 시작한 상황에서 '관행이 그러하다'는 이유로 권 원내대표 측이 내놓은 당헌·당규 해석을 이 대표가 쉽사리 받아들일 리는 만무해 보입니다. 어제 당원 가입을 촉구하는 내용의 글을 올린 뒤 별다른 공식 입장을 내놓고 있지 않은 이 대표가 공을 어디로 넘길지 눈길이 쏠리고 있습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