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에 보는 뉴스 요약, 스브스레터 이브닝입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취임 후 처음으로 기자 간담회를 가졌는데요, '노동시장 개혁 추진 방향'을 브리핑하기 위해서죠. 브리핑 내용은 크게 1) 근로시간 제도 개편 2) 임금체계 개편의 두 가지였는데요, 일이 많을 때 몰아서 일할 수 있게 '주 52시간 근무제'를 유연하게 손질하는 내용이 가장 눈에 띄네요.
"한 주에 몰아서 일할 수 있게 손질"
근로시간 제도 개편의 핵심은 '주 52시간제 유연화'라 할 수 있는데요, 이를 위해 이정식 장관은 "현재 '주 단위'로 관리하는 연장 근로시간을 노사 합의로 '월 단위'로 관리할 수 있게 하는 등 합리적인 총량 관리 단위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했죠. '연장근로 한달 총량 관리제' 정도로 이름 붙일 수 있겠네요.
쉽게 계산해 볼까요. 우리는 2018년 여야 합의로 '주 52시간제'를 도입했는데요, 정확히 말하면 '주 최대 52시간 근무제'죠. 법정 근로시간이 주 40시간이고요, 연장근로 가능한 시간이 주 최대 12시간이니까요. 즉, 근로시간 기준이 주 단위로 관리되니 주 52시간 넘게 일할 수 없는 거죠.
근데 '월 단위'로 연장근로시간을 관리하면 어떤 변화가 생길까요. 현재 주 12시간까지 가능한 연장근로시간을 월 단위로 환산하면 약 52시간(12시간×4.345주)이 되죠. 한 달에 배정된 연장근로시간을 한 주에 몰아서 할 경우 주 최대 노동시간이 92시간(기본 40시간+연장근로 52시간)까지 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오네요. 물론 나머지 3주는 40시간만 일하면 되지만 집중적으로 노동할 경우 노동자 건강권이 위협받을 수밖에 없죠. 이 장관은 '특정 주에 연장 근로가 몰리면 건강권이 악화될 수 있다'는 질문에 대해 "제도의 취지에 부합하는 근로자 건강권 보호조치가 반드시 병행될 것으로, 예를 들어 11시간 연속 휴식 등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답했네요.
이 장관은 "'주 단위' 초과근로 관리 방식은 주요 선진국 중 우리나라가 유일하다"며 "해외 주요국은 기본적으로 노사 합의에 따른 선택권을 존중하고 있다"고 했는데요, 주 52시간제의 유연화 필요성을 강조한 거죠. 일본은 연장 근로시간을 월 단위 45시간으로 관리하고, 영국은 1주에 총 근로시간을 48시간으로 제한하고 있지만 노사합의 시 예외를 허용한다고도 소개했죠.
"'주 120시간 근무'는 아니다"
윤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일주일에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하고 이후 마음껏 쉴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요, 야당과 노동계가 반발하면서 윤 후보가 곤욕을 치렀죠.
스타트업들은 예외 조항을 둬가지고 근로조건에 대한 당사자 합의와 근로자들이 근로조건을 선택해야 하는 거 아니냐(하더라). 주 100시간이든 200시간이든 (노동시간을) 쓰되, 연간 전체, 또는 6개월 단위로만 해 줘도. 뭐 하나, 게임 하나 개발하려고 하면 한 주에 52시간이 아니라, 24 곱하기 7이면 얼마야 168이잖아. 주 120시간을 일해야 한다는 거다. 그러고 한 2주 바짝 (일) 하고 노는 거지.
정부가 주 52시간을 하게 된 이유는 그렇게 해 놓으면 일자리가 막 생긴다고 생각하는 거다. 근데 일자리 증가율이 0.2%밖에 안 됩니다. 일자리 증가라는 정책 목표를 타깃으로 한 정책으론 실패한 거다. (매일경제 유튜브/ 지난해 7월)
오늘(23일) 발표된 안을 보면 몰아서 일할 수 있게 제도를 개편하지만 주 120시간까지 일할 수 있게 바꾸는 건 아니죠. 이에 대한 기자의 질문이 나왔는데요, 이 장관은 "선거 과정에서 현장의 애로사항을 듣는 과정에서 120시간, 이런 말씀이 나온 것으로 저는 이해를 하고 있다. 그러나 공약과 국정과제 만드는 과정에서 여러 여건이 고려됐다"고 답했네요.
◇ 기자: 윤석열 정부에서는 120시간까지 탄력적으로 하겠다고 이야기를 했었는데 지금 월 단위로 좁혀진 것 같거든요. 그 사이의 갭들은 포기를 하신 건지 차이가 조금 있어서 답변 부탁드리겠습니다.
◆ 이정식 장관: 두 가지를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선거 과정에서 현장의 애로사항을 듣는 과정에서 120시간 이런 말씀이 나온 것으로 저는 이해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게 공약과 국정과제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여건들, 예산까지 고려하면서 국정과제가 만들어졌고요.
(..) 말씀하신 그 부분은 포기하거나 이런 부분은 아닌 것 같고, 그러나 노동시장, 그때 문제의식은 아마도 선택권, 다양성, 현실 적합성, 이런 부분의 현재 그 법·제도 관행의 그런 문제점에 대한 인식을 표현하신 거다, 라고 볼 수 있고, 그러한 내용들이 노동시장 개혁과제의 큰 방향에는 들어가 있다, 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근로시간도 저축? 제도도입 검토
근로시간 유연화와 관련한 방안이 더 있는데요, '근로시간 저축계좌제 도입' '선택근로제의 정산기간 확대'도 추진하겠다고 거예죠.
근로시간 저축계좌제는 업무량이 많을 때 초과 근무를 하고, 초과 근로시간을 저축한 뒤 업무량이 적을 때 휴가 등으로 소진하는 제도라고 해요. 이정식 장관은 근로시간 저축계좌제에 대해 "적립 근로시간의 상·하한, 적립 및 사용방법, 정산기간 등 세부적인 쟁점사항에 대해 면밀히 살펴 제도를 설계하겠다"고 설명했네요.
선택근로제는 현재 연구개발 분야에만 정산기간 3개월을 인정하고 있고 다른 분야는 한 달인데요, 이를 확대하겠다는 의미로 보이네요.
이정식 장관은 "이러한 제도개선 과제들이 근로자 건강권과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건강보호조치 방안도 함께 마련하겠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방안을 오늘 제시하지는 않았죠.
"연공급 과도"…임금체계도 손질
임금체계 개편의 핵심은 호봉제를 직무·성과급으로 바꾸는 건데요, 박근혜 정부 때에 이어 다시 추진하겠다는 거죠. 이 장관은 "우리나라 100인 이상 사업체 중 호봉급 운영 비중이 55.5%이며, 1000인 이상의 경우 70.3%로 연공급이 매우 과도하다"고 진단했죠. 그러면서 "연공성 임금체계는 고성장 시기 장기근속 유도에는 적합하지만, 이직이 잦은 저성장 시대에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성과와 연계되지 않은 보상시스템은 공정성을 둘러싼 기업 구성원 간 갈등과 생산성 저하, 근로의욕 저하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고 임금체계 개편의 필요성을 여러 측면에서 설명했네요.
노동부 자료를 볼까요. 우리나라 임금체계는 연공(여러 해 근무한 공로)성이 강한데요, 근속 30년 이상 노동자의 임금은 근속 1년 미만 노동자의 2.87배에 달하죠. 오래 일할수록 많은 임금을 받는 구조죠.
이 장관은 "불과 3년 뒤인 2025년에는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중이 20.5%로 늘어 초고령사회로 진입이 예상된다"며 "장년 근로자가 더 오래 일하기 위해서는 임금체계의 과도한 연공성을 줄여야 한다"고 부연 설명했죠.
임금체계 개편은 노사가 정하는 문제로 정부가 강제할 수 없죠. 다만, 고용부는 임금체계 개편을 위한 정보 제공을 위해 '한국형 직무별 임금정보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이라고 해요. 직무급, 즉 직무 가치에 따라 임금을 정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 직업별 직무내용과 임금수준에 관한 정보를 모아 공개하는 거죠.
노동부는 또 다음 달 중 전문가로 구성된 '미래 노동시장 연구회'를 만들어 10월까지 4개월간 운영하기로 했는데요, 연구회는 구체적인 입법·정책과제를 마련한다고 하네요.
민주노총 "깊은 실망과 분노"
새 정부 노동정책의 윤곽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노동 관련 화두도 던져졌네요. 노동자들에게 노동시간과 임금은 노동조건의 핵심적인 사안이어서 민감할 수밖에 없는데요, 수용하기 어려운 내용이 많아 오늘(23일) 발표가 제도화되기는 쉽지 않을 듯하네요.
민주노총은 '주52시간제'를 무력화하고 노동시간을 무한대로 늘릴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라며 반대하고 나섰네요. 민주노총은 근로시간 저축계좌제 등에 대해서도 "노동시간을 줄이기 위한 정책은 전혀 없이 근로시간 저축계좌제, 선택적 근로시간제, 스타트업·전문직의 노동시간 규제 예외적용 등 초과노동시간에 대한 편법적인 노동시간 연장을 위한 정책만을 내놨다"고 비판했죠.
그러면서 "고용노동부 장관이라면 물가폭등 시기에 노동자의 생활안정을 보장할 임금인상과 복지확대, 노동시장 양극화를 극복하기 위한 비정규직 대책, 산업환경의 변화로 플랫폼노동의 확산에 따른 노동자 권리 보호 방안 등의 문제에 대한 정책 방향을 내놔야 했다"고 했는데요, 뒷부분에는 "깊은 실망과 분노를 표한다"는 말로 노동부와 노동부 장관을 비판했네요.
고용노동부 장관이라면 물가폭등 시기에 노동자의 생활안정을 보장할 임금인상과 복지확대, 노동시장 양극화를 극복하기 위한 비정규직 대책, 산업환경의 변화로 플랫폼노동의 확산에 따른 노동자 권리 보호 방안 등의 문제에 대한 정책 방향을 내놔야 했습니다.
민주노총은 고용노동부 장관이 대통령의 관심사인 시대착오적 장시간 노동방안과 사용자의 일방적 임금결정권을 보장하기 위한 정책만을 내놓은 것에 대해 깊은 실망과 분노를 표합니다.
이미 파산한 신자유주의이념으로 자본가의 이익을 절대시하고 노동자를 적대시하는 윤석열 정부의 노동정책은 노동자의 저항으로 파산의 운명에 처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다시 밝혀둔다.
오늘 발표된 방안들은 경영계에서 요구해온 것들이 많은데요, 그래서인지 경제단체들은 대체로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죠. 경총은 "경제위기 극복과 일자리 창출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며 "근로시간 제도 개선과 임금체계 개편을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유연근무제 도입 요건 개선, 취업규칙 변경 절차 완화 등의 방안이 보완돼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네요. 경총은 또 "파업 시 대체근로 허용, 사업장 점거 전면금지를 서둘러 추진해야 한다"고 촉구하기도 했죠.
한국중견기업연합회와 중소기업중앙회 등도 기업과 근로자의 애로를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죠.
오늘의 한 컷
흔한 표현이지만 '한 폭의 동양화' 같지 않나요? 강원 춘천시 소양강 민물가마우지 군락지 사진인데요, 물안개가 짙게 깔리면서 신비한 장면을 연출하고 있네요.
(사진=연합뉴스, 고용노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