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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사지 목탑 기단 축조법 드러났다…"석탑보다 먼저 조성"

유영규 기자

입력 : 2022.06.15 09:46|수정 : 2022.06.15 09:46


백제 무왕(재위 600∼641)이 세운 익산 미륵사지 중심 권역에 있었던 목탑의 기단부 축조 방법과 전반적인 규모가 확인됐습니다.

미륵사는 목탑을 중심으로 동쪽과 서쪽에 석탑을 배치하고, 금당(金堂·본존불을 모신 건물)과 문도 3개씩 둔 삼원병렬식 사찰이었습니다.

그중 서쪽 석탑만 일부가 남아 있는데, 목탑이 이 탑보다 먼저 조성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미륵사지 목탑터에서 발굴조사를 시행해 지면을 고르게 다진 뒤 흙과 돌을 쌓아 올려 기단부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고 오늘(15일) 밝혔습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면 위에는 물이 잘 빠지도록 깬 돌과 흙을 올리고 기초부를 단단히 조성했습니다.

이어 기단부 바깥쪽은 5∼6단, 안쪽은 2단인 석축(石築)을 다진 흙과 함께 쌓았습니다.

석축 안쪽은 성질이 다른 흙을 시루떡처럼 교차해 다져 올렸습니다.

또 기단부 바깥쪽은 흙을 경사지게 쌓았으며, 기단부 북쪽 일부는 후대에 다시 축조됐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조사단은 "상하층 기단부에서 땅을 파낸 흔적을 찾아냈는데, 이를 근거로 목탑 평면 규모를 추정할 수 있게 됐다"며 "정확한 수치는 추가 연구를 거쳐 공개할 계획"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서쪽 석탑은 잘 다진 대지를 파서 기초부를 만들었으나, 목탑은 대지를 조성하기 전에 이미 기초부 공사가 이뤄졌다"며 "목탑을 중심으로 동서 석탑과 건축물이 배치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습니다.

익산 미륵사지 목탑 기단부 발굴조사 모습 (사진=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제공, 연합뉴스)
미륵사지 목탑터는 앞서 1981년과 1994년에도 조사됐으나, 당시에는 중앙부만 조사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에 정확한 축조 기법과 규모를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관계자는 "이번 조사 목적은 미륵사지 정비와 복원을 위한 기초자료를 확보하는 것이었다"며 "미륵사지 고증을 위해 다양한 융복합 연구를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미륵사지와 경주 황룡사지 디지털 복원은 윤석열 정부 국정과제 중 하나입니다.

(사진=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제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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