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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위기 태풍 대비해야"…목소리 높이는 금융당국

유영규 기자

입력 : 2022.06.05 08:51|수정 : 2022.06.05 12:46


금융당국이 금융권의 위기 대응능력 강화 주문에 나선 것은 주요국 중앙은행의 돈줄 죄기와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경제에 태풍이 몰아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기 때문입니다.

특히 소상공인 대출 만기연장·상환유예가 종료되는 9월 이후 대출 부실이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은행권의 손실흡수 능력의 확충 필요성을 강도 높게 주문하고 있습니다.

이런 위기의식은 금융감독당국 수장의 최근 연이은 충당금 확충 주문 발언에 여실히 드러납니다.

오늘(5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정은보 금융감독원장은 지난달 3일 은행장 간담회에서 "대내외 충격에도 은행이 자금 중개 기능을 차질없이 수행할 수 있도록 손실흡수 능력을 확충할 필요가 있다"면서 "평상시 기준에 안주하지 말고 잠재 신용위험을 보수적으로 평가해 대손충당금을 충분히 쌓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지난달 18일엔 금융감독자문회의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지금과 같은 불확실한 상황에서는 부실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 사전적으로 관리하고, 필요하다면 충당금을 미리 많이 쌓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정 원장이 충당금 적립 관련해 고강도 발언을 이어간 것은 대내외 경제환경 불확실성이 커진 것 외에 최근 은행권의 수익성이 개선되고 있다는 점도 작용하고 있습니다.

올해 1분기(1∼3월) 국내은행의 당기순이익은 5조6천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0.7% 늘었습니다.

금리 상승으로 이자이익이 늘어난 게 은행권의 순익 증가를 이끌었습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예대 마진 상승으로 당국의 충당금 적립 확대 요구가 거세졌다"며 "2분기 결산을 앞둔 8월 중순까지 충당금 적립을 둘러싼 논란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문제는 충당금 적립 이슈가 단순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대손충당금은 예상되는 대출 손실에 대비해 선제적으로 쌓아놓는 돈입니다.

국내 은행들은 고정이하여신 비율에 맞춰 충당금을 적립하고 있는데 최근 부실채권 비율이 낮은 상황이 지속되다 보니 충당금을 추가로 쌓을 근거가 부족하다는 게 은행권의 설명입니다.

고정이하여신은 금융기관의 대출금 중 연체기간이 3개월 이상인 부실채권을 말합니다.

한 시중은행 재무담당 임원은 "취약 차주의 자산건전성 악화 가능성에 대해 염려가 있는 점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고 내부적으로 최대한 보수적으로 자산건전성 관리를 하고 있다"면서도 "다만 충당금 적립 기준이 있기 때문에 충당금을 더 쌓고 싶다고 해서 임의로 쌓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금융감독원이 집계한 3월 말 기준 국내은행의 부실채권(고정이하여신) 비율은 0.45%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습니다.

반면 낮은 부실채권 비율이 대출 만기연장과 상환유예 조치 때문에 발생한 왜곡 현상이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서영수 키움증권 이사는 "국내 대형 은행의 충당금 적립률은 0.44% 수준"이라며 "위기 발생해 대비해 필요한 은행의 충당금은 현저히 부족한 상태"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미국 등 선진국 은행은 코로나19 위기가 발생하자 연체율 하락에도 충당금을 늘려 향후 발생할 수 있는 위기에 대비하고 있다"며 "미국 은행의 2021년 말 대출자산 대비 충당금 적립률은 1.56%로 2019년 말(1.16%) 대비 큰 폭으로 상승한 상태"라고 말했습니다.

금융당국은 현행 충당금 기준과 잠재 부실 가능성의 불일치를 해소하고자 은행권과 공동으로 충당금 설정 방식 개선을 위한 태스크포스(TF)를 운영 중입니다.

현재도 은행들은 대손충당금 산정 시 경제성장률 전망치 등을 통해 미래전망정보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 만으론 잠재 부실 위험을 과소평가할 수 있다고 보고 금리 상승 위험이나 담보가치 하락 가능성 등 변수를 추가로 반영하는 방안을 논의 중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금융당국은 충당금 적립 외 자기자본 확대를 통한 금융사의 손실흡수 능력 강화도 함께 주문하고 있습니다.

충당금이 예상되는 손실에 대한 대응 능력이라면 자기자본비율은 예상하지 못한 손실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대변합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현재 국내 은행들은 최저자본규제를 모두 준수하고 있어 자본 적립은 기본적으로 은행들이 스스로 대비해야 하는 측면이 있다"면서도 "다만 바젤3 규제 체계상 은행이 최저자본규제를 충족하더라도 감독당국이 필요하면 추가 적립을 요구할 수 있는 근거(필라2)는 마련돼 있다"고 말했습니다.

금융권 안팎에선 금융당국이 은행권의 자기자본 추가 확충이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현재 제도 도입만 돼 있는 경기대응완충자본을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봅니다.

경기대응완충자본은 신용팽창 시기에 추가 자본을 적립하도록 해 과도한 신용 확대를 억제하고, 신용 축소 또는 경색 때 적립된 자본을 해소해 신용공급을 원활하게 하는 제도입니다.

금융위원회는 2016년 경기대응완충자본 제도를 도입한 이후 적립 수준을 0%로 유지해오고 있습니다.

국제결제은행(BIS)은 위험가중자산의 0∼2.5% 범위에서 감독당국이 비율을 정하도록 권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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