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일을 맞아 베이징대 한반도연구센터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인 약산 김원봉과 중국 정부 실력자의 대화 기록을 처음 공개했습니다.
지난 1944년 2월 김원봉이 중국 국민당 비서장 오철성을 만나 대화를 나눈 것으로, 김원봉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대해 "소수가 장악하고 있는 정치 기구로, 소수의 교민을 대표할 뿐"이라고 말한 것으로 적혀 있습니다.
김원봉은 이어 일제 시라카와 대장 폭사 사건, 즉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서 폭탄을 던진 윤봉길 의사의 의거를 언급한 뒤, "교묘한 수단으로 이익을 취하는 행동"이라며 "진정한 혁명가는 쓰지 않는 수단"이라고 말했습니다.
"일본은 중요 인사 한두 명이 암살됐다고 국책을 바꾸지 않는다"고도 했습니다.
당시 임시정부에는 백범 김구 계열의 한국독립당과 김원봉 계열의 조선민족혁명당이 공존하던 상황이었습니다.
김원봉은 이런 논리를 들어가며 조선민족혁명당에도 별도의 활동 자금을 지원해 줄 것을 중국 정부에 요청했습니다.
의열단장을 지내며 23차례 폭탄 투척과 요인 암살을 주도했던 김원봉이 윤봉길 의사의 의거를 비판한 것인데, 김원봉은 조선의용대를 이끌고 광복군에 합류한 상태였습니다.
김원봉 연구 학자들은 개인의 희생을 전제로 한 투쟁의 한계를 느껴 군대를 조직해 조직적인 투쟁으로 전환해야 함을 강조한 것으로 봐야 한다며 윤봉길 의사 폄하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해석했습니다.
김구 계열과 김원봉 계열은 항일 노선과 사상적 차이, 활동 자금 배분 등을 놓고 갈등을 빚었습니다.
임시정부가 국제 사회의 승인을 받지 못한 주된 이유로 임시정부의 내부 분열을 꼽은 중국 국민당 문건도 새로 공개됐습니다.
김원봉은 독립을 위해 무장 투쟁에 앞장섰지만 해방 후 월북한 전력 때문에 논란이 돼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