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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돈다발 자책골' 김용판 의원실엔 "믿더라도 확인하라"

강청완 기자

입력 : 2021.10.22 09:14|수정 : 2021.10.22 09:14


김용판 국민의힘 의원실에 걸려 있는 '믿더라도 확인하라' 실훈 액자 (제보사진)
이재명 경기지사가 출석한 지난주 월요일 '대장동 국정감사 1차전'의 화제는 단연 '돈다발 사진'이었다. 김용판 국민의힘 의원이 성남 지역 폭력조직원 박 모 씨가 이 지사에게 건넨 사진이라며 띄운 현금다발 사진 얘기다. 국민의힘은 '조폭연루설'을 내세우며 기세를 올렸지만 한나절도 채 가지 못했다. 민주당 한병도 의원이 한 SNS에 올라온 똑같은 현금 사진을 찾아냈기 때문이다. 동일 인물로 추정되는 이가 2018년 11월 페이스북에 '렌터카와 라운지 바 사업으로 번 돈'이라며 올린 사진이었다.

돈다발, 김용판
사진의 진위 논란은 진행 중이지만 적어도 그날 국정감사는 사실상 거기서 끝났다고 봐도 무방한 수준이었다. 이 지사는 "코미디"라고 촌평했고 민주당 의원들은 반격 모드로 전환해 총공세에 나섰다. 민주당은 김 의원을 윤리위에 제소하는 등 다음날까지 반격을 이어갔지만 국민의힘 대응은 속수무책에 가까웠다. 김 의원은 한 언론과 통화에서 "사진의 진위 여부는 확인하지 못했다"고 실토하고 말았다. "사진 한 장으로 전체를 덮으려 하고 국민을 호도시키는 자세는 적절치 않다"는, 민주당을 향한 김 의원의 국감 발언은 사실상 패배를 시인하는 말로 들렸다. 야당 안에서조차 '자책골'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폭력조직원 박 씨의 새로운 증언이 나오면서 사건은 진실게임 양상으로 흘러가는 분위기지만 현  시점에서 야당의 판정패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로 보인다. 청문회와 국정감사가 상당 부분 기세 싸움이라는 걸 감안하면 예봉이 완전히 꺾인 채 주도권을 내주고 말았다. 야당이 그렇게 벼르고 별렀던 대장동 국감은 '맹탕 국감'이라는 평가를 피하지 못했다. 박 씨는 "전달하라고 받은 돈을 과시욕에 찍어 올린 사진"이라고 했지만 진술의 일관성은 이미 한 차례 흔들렸다. 어떤 새로운 증거와 증언이 나오더라도 민주당 입장에선 방어가 훨씬 수월하게 됐다. 일각에선 민주당이 또 다른 반격을 준비하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돈다발 사진을 국감장에 띄운 김용판 의원 역시 사실 확인에 소홀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민주당 한병도 의원이 제시한 사진은 국감 다음날까지도 버젓이 해당 SNS에 올라와 있었다. 사진에는 렌트카 명함을 비롯해 각종 명함도 같이 찍혀 있다. 용도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사진이었다. 김 의원 측은 "사진의 진위 여부를 확인하지 못했다"는 김 의원의 발언에 대해 "새로운 증언이 나오기 전에 한 이야기"라고 수습했지만, 야당으로선 만에 하나 결정적 증거를 잡는다 해도 그 신빙성을 의심받게 됐다.

김용판 의원실 사진
정작 의혹을 제기한 김용판 의원실에는 "믿더라도 확인하라"는 실훈(室訓)이 떡하니 걸려있다. 20년 넘게 경찰 생활을 한 김 의원의 좌우명 같은 말로, 오래전부터 걸려 있던 액자라고 한다. 국민의힘이 김 의원을 믿고 공격수 역할을 맡긴 데는 경찰의 2인자인 서울지방경찰청장 출신이라는 그의 전력을 고려한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아직 단정은 이르지만, 국감장에서 보여준 그의 '자책골'은 그 실훈을 무색하게 하는 것이었다. 스스로도 믿지 않아 확인하지 않았는지, 혹은 믿음이 너무 지나쳐 확인이 부족했는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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