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조금도 아니고 어떻게 행복하기만 하겠는가. 서로 행복한 시기가 다를 뿐이다. 자기가 행복할 땐 남을 보지 않아서 서로 엇갈릴 뿐이다. 이 글을 쓰다 ‘행복이란’을 검색해 보니 ‘행복은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한다. 뭐야, 언제부터 인생에 그런 목표가 있어야 했던 거야. 그럼 지금부터라도 행복해 볼까. 아, 귀찮은데."
"어린 시절의 나는 세상에서 없어져도 아무도 못 알아차릴 만큼 존재감 없는 아이였다. 집안도 외모도 성격도 존재감 무. 거기 있지만 없는 것과 다름없는 아이. 그 외 다수에 속하는 어린이 1인, 청소년 1인. 그런 내가 어른이 되어서 300권 가까운 책을 번역하였고, 이런 나를 보며 꿈을 꾸는 사람들이 있다니 인간 승리다. 유일하게 좋아하는 일, 유일하게 할 줄 아는 일이 직업이라는 이 은혜로운 상황을 맞게 된 건 글쓰기와 독서를 하며 존재감 없는 시절을 꿋꿋하게 살아낸 과거의 나 덕분이리라."
"어떻게 하면 받을 수 있을까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빌려준 내 마음이 편해질 수 있을까가 고민이었다. 하루키의 고민 상담소에는 약 보름 동안 약 37,465개의 질문이 올라왔고, 무라카미 하루키는 3,716개의 답변을 달았다. 확률은 10퍼센트. '또뽑기' 하면 꽝만 나오는 내 마이너스의 손, 걸릴 거라고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름으로 메일이 왔다!"
"그래, 얼굴 보고 경기하면 어때, 뒷모습이라도 아가씨로 봐주니 고맙잖아, 하고 생각하니 얼굴에 곱실곱실 미소가 돌고 목소리도 가늘어진다. 그러나 기껏 친절하게 가르쳐 주었더니만, 한 번 더 쳐다보고는 쌩 가버린다. 왐마, 하루키 님도 재수 옴 붙은 느낌이 드는 이 상황에서는 긍정적일 수 없을 거다."
"나무늘보를 보면 나를 보는 것 같다. 남들이 보기에는 집 밖으로 나가는 일 없이 종일 집 안에만 있는 내가 느리고 게을러터져 보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 긴 세월 나름대로 쉬지 않고 번역만 하며 성실하게 가장 노릇을 하고 있다. 동물이나 인간이나 자기 가치관과 다르게 산다 하여 부정적인 평가를 하는 것은 교만이다."
"서로 잘 지내라고 인사하고 전화를 끊었다. 추억 속의 사람들은 잠시 소환했다가 제자리에 돌려놓는 게 좋다. 긴 공백은 무엇으로도 메우지 못한다. 안부는 바람을 통해 듣도록 하자. 그 시절 내가 알던 모든 사람들이 50대가 된 지금도 하늘 아래 어디선가 행복하게 잘 살고 있기를 기도한다. 나는 잘 지내요."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이 있는 게 아니라 좋은 관계 나쁜 관계가 있을 뿐이다. 흔히 관계가 파괴된 후 그런 사람인 줄 몰랐는데, 하고 상대방을 비난하지만, 관계가 나빠진 것이지 사람이 나빠진 건 아니다. 살아가면서 변하지 않는 관계는 없다."
"하나둘 보다 보니 급기야 10년 치 공연 영상을 다 보고 말았다. 번역을 시작한 이후, 텔레비전 한 번 마음 편히 본 적 없는 내가 말이다. 국카스텐 덕질을 기점으로 기를 쓰고 사는 쪽보다 내려놓고 사는 쪽으로 삶의 노선이 바뀐 것 같다... 국카스텐 덕질은 나를 위해 돈을 쓰고 시간을 쓰는 나의 유일한 일탈이자 도락이자 휴식이자 낙이다. 음악대장이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나는 아직도 무음의 세계에서 소처럼 일만 했겠지."
"그러나 알고 보면 남들도 행복하지 않다. 인생이 조증도 아니고 어떻게 행복하기만 하겠는가. 서로 행복한 시기가 다를 뿐이다. 자기가 행복할 땐 남을 보지 않아서 서로 엇갈릴 뿐이다."
"내 작업 공간은 이렇다. 책상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주방, 오른쪽에는 거실. 앞에는 텔레비전, 옆에는 소파, 발밑에는 멍멍이. 주부미(주부미)가 철철 넘쳐 난다. 이러니 따뜻한 번역이 절로 나오는 게 아닐까?^^ 그래서 나는 번역가라는 수식어보다 '번역하는 아줌마'라는 말이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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