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의 나에게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는 "꿈을 향해 더욱더 가열차게 달려라"는 아니다. 그보다는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더라도 너무 자신을 미워하지 마라"이다. 20대 중반에서 30대 중반 사이 일생에 한 번뿐인 가장 눈부신 청춘 시절에 한국에서 대학 교수되긴 다 틀린 게 너무 원통하고 절망스러운 나머지 하루 종일 집 안에 틀어박혀서 싸구려 포도주만 마시고 있었던 그때의 나에게 가서 말해주고 싶다. 그렇게까지 불행해하지 않아도 되니 일어나서 쇼핑이라도 하러 나가라고 말해주고 싶다.
나는 서른아홉 살에 결혼하여 여덟 살짜리 남자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결혼 후 주위 친구들에게 "나 이제 엄마 됐어. 아들은 여덟 살이야."라고 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몰라 난처해하는 표정이 되곤 했다.
그런데 딱 한 명, 이렇게 말해줬던 친구가 있었다.
"어머 횡재했네! 완전 날로 먹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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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나를 처음으로 엄마라고 불렀을 때 너무 좋아 심장이 통통거리며 나대던 기분이 바로 심쿵이었다.
그날 아들 입에서 엄마라는 단어가 튀어나오는 순간, 나는 갑자기 그간의 모든 사정을 다 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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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은 본능적인 지혜로 누군가에게서 사랑받고 싶다면 사랑을 받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는 걸 알았을 뿐이었다. 사랑받고 싶다면 사랑스러운 사람이 되도록 애써야 한다는 걸 타고난 현명함으로 알았던 거였다. 사랑스러운 사람이 되도록 노력할 줄 안다는 건 인생을 사는 데 있어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 자산인가.
- <어느 날 갑자기 엄마가 되었다>
당시 내 나이 20대 후반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한국에 돌아와서 다른 길을 찾았어도 크게 늦지 않았을 나이였건만 그때는 세상이 다 끝났고 미래가 없어 보였다. 나는 잘난 척하면서 남들 안 가는 브라질로 유학을 왔다가 인생을 통째로 쓰레기통에 처박은 머저리였고 남들 다 들고 귀국하는 박사 학위를 못 딴 무능력자였다. 창피하고 망신스러워서 도저히 얼굴을 들고 대한민국 땅에 돌아갈 수가 없었다.
-<브라질에서 이혼하고 돌아오다>
내 눈에 비친 엄마는, "나는 어쩌다 보니 세상에 너희를 내놓아서 그 책임을 져야 하니 너희를 열심히 키우기는 한다만 자녀의 양육이란 벗어나고 싶은 일종의 형벌 같은 것이란다"라고 잊을 만하면 큰소리로 짚어주는 사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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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결혼을 했던 삼십 대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아이를 키우는 건 그렇게까지 불행한 일이 절대로 아니라는 사실을. 오히려 그 반대라는 사실을. 우리 엄마도 결코 불행한 사람은 아니었고 오히려 우리를 키우면서 아주 많이 행복했으리라는 사실을 깨달은 건 내가 어느 날 덜컥 여덟 살 아이의 엄마가 되고 나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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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열심히 보살펴준 아홉 가지는 당연하게 여기고 다 잊어버리면서 내가 미처 못 챙겨준 한 가지만 기억하며 노여워하는 아이를 보면서 또 깨닫는다. 나도 그랬을 거라고. 엄마가 베풀어준 아홉 가지는 제쳐두고 한 가지만 오래 끌어안고 살았던 거라고.
-<미처 몰랐던 엄마의 사랑을 알게 해 준 아들>
너에게서 아무것도 원하지 않고 너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단다. 네가 살아갈 험한 세상에 대한 걱정과 불안은 내 마음속에서 혼자만 감당하고 그 불안을 네 앞에 드러내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거야. 엄마는 언제나 너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고 칭찬하고 자랑할 것이다. 너도 너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고 자부심을 가지는 것이 엄마가 원하는 거니까.
-<처음으로 받은 어버이날 꽃바구니>
스무 살 시절뿐만 아니라 어쩌면 평생 동안, 하고 싶은 어떤 일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그 일을 해도 될 완벽한 조건을 갖춰야 한다고 여기면서 그 완벽한 타이밍을 기다리다 세월을 보내는 건 아닐까. 완벽한 조건이 갖춰지는 완벽한 타이밍이란 영원히 오지 않을 것이니 스무 살로 돌아간다면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지금 바로 시작해야 한다고 결심할 테다.
-<내가 아닌 내가 되려 하지 말자>
우리 사는 세상에는 완벽하지 않은 조건에 있는 사람들에게 생길 수 있는 불화와 갈등을 부각시키는 부정적인 낙인이 많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약하고 여린 존재에 대한 따스한 온정과 배려, 애틋한 연민과 공감이라는 긍정적인 감정도 많다. 부정적인 낙인은 부지런히 내려놓고 긍정적인 감정은 서로 열심히 부추기고 띄워주는 세상이 되길 바란다. 이 책이 그런 세상으로 가는 길을 더 넓게 여는 작은 손짓이 되었으면 좋겠다.
-<맺는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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