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1.06.13 09:42
수정 : 2021.06.13 09:42- 뉴질랜드에는 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 평등법이 있다. 제정 당시 어느 분야에서 가장 반대가 심했나?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뉴질랜드에서 1993년에 통과가 됐습니다. 한 개인에 대한 차별을 포괄적으로 금지하는 법안인데, 특히 13개 요소를 명시하고 그것에 대한 차별을 무조건 금지하는 법안이었습니다. 피부색, 종교, 인종, 성별, 그리고 성적 지향 등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법 자체는 통과할 때 우리 사회에 큰 이견이 없었습니다. 각계의 토론이 몇 년씩 이어지긴 했지만 큰 저항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기본권을 존중하고 차별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모두가 빠르게 인지하고 동의하는 근본적 가치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이후에 뒤따른 LGBT 이슈, 특히 동성혼의 합법화 문제는 국회가 다뤄야 했던 훨씬 더 논쟁적이고 분열적인 이슈였습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법률로서의 체계로서의 의미를 가질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인식, 사람들의 행동, 인권 규범에 대한 사회적 수용도가 전체적으로 올라가게 만들었습니다."
- 우리나라의 경우 포괄적 차별금지법에 대해 일부 개신교 집단에서 격렬한 반대가 이어지고 있다. 뉴질랜드에선 이런 의견들이 어떻게 다뤄졌는지?
"뉴질랜드도 대부분의 사회와 마찬가지로 견해나 의견들이 굉장히 많은 사회입니다. 각자의 입장에 따라 논란거리가 될 수밖에 없는 이슈인 만큼 뉴질랜드에서도 여러 의견과 논쟁이 있었던 건 사실입니다. 포괄적 인권법(차별금지법)도 물론 큰 문제 없이 통과되긴 했지만 사전에 많은 토론과 논쟁의 과정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민주사회라면 당연히 통과해야 하는 절차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의 의견은 경청되어야 하고요. 민주 사회에서는 어떤 이슈든 간에 공론의 장에서 토론하고 논의해서 합의를 모아가야 합니다. 바로 그게 의회의 역할이겠죠. 여러 목소리들의 합의점을 찾아 해결책을 찾는 것입니다."
- 원칙적으로 맞는 얘기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경우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처음 발의 됐던 17대 국회 때 부터 20대까지 번번이 통과가 저지되어 왔고 21대 국회에서도 답보 상태다. 뉴질랜드는 사회적 갈등을 어떻게 해결한 건가?
"뉴질랜드의 핵심 철학은 공론장을 활성화 시키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평화적이고 건설적인 방식으로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보장하는 데 가장 공을 들였습니다. 국민청원과 시위, 국회에서의 토론 같은 방식으로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반드시 의견이 다른 서로 간 존중이 있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뉴질랜드라고 해서 완벽하다는 인상을 결코 주고 싶지 않습니다. 오늘날 뉴질랜드 역시 많은 문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특히 인종차별 문제가 여전한데 원주민인 마오리족 등에 대해 오랫동안 고질적으로 인종 차별 문제가 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코로나 시국으로 인해 상황이 점점 더 악화되고 있고요. 여러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민주 사회는 열린 토론으로 인해 더 강력해집니다. 국회, 사법체계 등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메커니즘을 통해 반드시 평화적인 결론을 갖고 올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 성전환 수술을 했다가 불명예 전역 당하고 정부와 소송 끝에 목숨을 끊은 고 변희수 하사 사건을 아는가. 뉴질랜드였어도 발생할 수 있는 일이었을까.
"직접적인 코멘트를 드리는 대신 뉴질랜드 얘길 해보겠습니다. 뉴질랜드에서도 역시 군대 내 LGBT, 트랜스젠더에 대한 차별과 희롱이 문제가 됐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에 대해서도 또 많은 사회적 토론과 논쟁들이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뉴질랜드에서 최초로 오픈된 트랜스젠더 군인이 나왔습니다. 변 하사처럼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하신 분인데 그 커밍아웃이 2010년이었습니다. 현재 그 분은 공군 하사로 여전히 복무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 역시 2010년 당시에는 이걸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몰랐습니다. 군 차원에서 어떤 포괄적인 정책이나 가이드라인이 있지도 않았고요. 그래서 그를 위해 뉴질랜드 방위군, 뉴질랜드 군대 차원에서 우리가 접근을 새롭게 하자, 라는 사회적 논의 끝에 성소수자와 관련된 군내 지침과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냈습니다. 단순히 성소수자, LGBT, 트랜스젠더를 포괄하는 것 뿐 아니라 전체적인 군내 소수자 다양성을 보장하도록 하는 성격의 지침 말입니다."
- 그 이후에 어떤 변화가 있었나? 군이 약화된다는 비판은 없었나?
"가이드라인이 다행히 잘 작동해서 뉴질랜드 군대는 2014년 헤이그 국제기구로부터 전세계 군대 중 가장 LGBT 포용적인 군대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2019년에도 뉴질랜드 군대가 소수자 인권상을 받은 적이 있고요. 오늘 날에도 뉴질랜드에는 현직에서 훌륭히 복무 중인 많은 LGBT 군인들과 경찰이 계십니다. 현직에 계시면서도 성소수자 프라이드 축제도 적극적으로 참여할 정도로 함께 살아가는 게 당연한 일이 되었습니다. 다양성을 수용하는 것은 분명 더 강력한 사회, 강력한 국력의 기반이 됩니다. 사회의 각 구성원이 자신의 정체성으로 인해 하지 않아도 될 고민을 하는 대신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일, 군사 전략, 업무에만 모든 집중력을 쏟으면 되기 때문입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