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승연 전 금감원 부원장 인터뷰
소득주도성장의 내용 자체는 중요하고 필요한 부분이 있다. 분배의 불평등을 개선하고 일자리를 늘리려는 방향성은 옳다. 하지만 거기에 '성장 담론'을 연결시키는 바람에 잘못됐다는 거다. 경제 흐름이 피가 돌 듯 잘돌아야하는데 지금 한국 사회는 불평등과 불공정으로 흐름이 막혀있다. 그런 부분을 뚫어주는 것이 정부 역할인데, 그걸 뚫는다고 1~2년새 바로 경제성장률이 몇% 오르고, GDP가 오르지 않는다. 임금소득을 높이면 경제가 성장한다는 '소득주도성장'은 그래서 정치 슬로건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정부가 성장에 얽매이지 말고, 장기적으로 불평등을 개선하는 정책을 밀고 나가라는 뜻에서 공동연구를 통해 목소리를 내게 됐다.
물론 쉽지 않다. 한국은 경제개발 5개년 계획할 때부터 몇 년간 몇 퍼센트 성장하겠다는 목표에 매달려왔고, 그 수치에 익숙해져있다. 하지만 미국 바이든 정부도 성장을 얘기하지만 성장률을 몇 퍼센트로 목표로 잡진 않는다. 어떤 부분을 개선하겠다는 걸 목표로 내걸 뿐. 예전처럼 인구가 늘어나고 기업 투자도 많이 해서 정부가 정책을 통해 고용도 크게 늘릴 수 있던 양적 성장이 가능한 시기는 지났다. 이제는 생산성을 높여야 성장이 가능한데, 이건 사회안전망을 갖추면서 천천히 먼 미래를 보고 해 나가야 한다. 성장률이 떨어졌다는 압력을 견뎌내고 꾸준히 밀고 나가야 하는데, 이번 정부가 1, 2년만 보고 정책의 방향성을 바꾸려고 하는게 문제다. 성장률에 목메는 건 이번 정부만의 문제는 아니긴 하다.
최저임금을 올리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급하게 올리려고 했던 '속도'가 문제다. 사람들이 충분히 수긍할 수 있고 준비를 할 수 있게 만들어서 자영업자들의 충격을 완화해야 했다. 최저임금을 인상할 때 속도를 조절하면서 일자리가 축소되지 않도록 근로장려금을 확대하는 등 다른 정책으로 보완을 해야했다. 이제 예전과 달리 민간 영역이 커졌기 때문에, 정부가 경제정책을 강하게 추진해도 정부 의사대로 되지 않는다.
정부 역할은 공정한 시장 질서를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런데 지금은 정부의 공적 기능에 잘못된 게 너무 많다. 이미 경제가 성장해서 시장을 무시할 수가 없고 존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옛날처럼 경제를 통제하는 방식으로 하면 백전백패다. 정부가 개입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개입 방식을 달리해야 한다. 예전에는 정부가 중화학공업 등 4대 산업 육성한다면서 산업정책을 주도했다. 지금은 대기업이 이미 그런 걸 잘하기 때문에 정부가 먼저 지정해주는게 큰 의미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정부의 한국형 뉴딜을 지적한 거다. 정부가 친환경, 전기차 등 육성할 산업을 정하는게 아니라 인프라를 깔아주거나 인센티브를 주는 식으로 되어야 한다.
지금 사람들이 부동산 때문에 화나는 건 갑자기 세금을 올리고, 갑자기 정책이 변하는 것 때문이다. 사람들한테 5년, 10년의 플랜을 주는게 중요한데 정부가 지금 당장을 모면하려 하다가 문제가 생긴 거다. 소탐대실이라고 본다. 시장과 민간을 존중해야 한다. 사람은 다 자신의 이기적인 목적을 위해 살지 않나. 2주택자도 다 이유가 있다. 공직자가 아니라면 다주택자를 비판할 이유가 없다. 다주택자도 시스템 안에서 자기 입장에서는 자신의 부를 잘 활용한 거니까 그걸 잘못됐다고 정부가 얘기하면 안 된다. 정부는 시스템을 이제 이렇게 바꿉시다라고 얘기해야 부드럽게 정책이 진행되고 부작용도 적다.
1980년대에 서울대 경제학과에서 공부할 때, 한국 경제가 어떻게 해야 민주화되고 개발독재시대의 문제점을 극복할까 고민을 했었다. 당시에는 미국 유학을 안 가고 서울대에서 박사까지 공부를 하면서 한국 경제를 공부해야 되겠다는 분위기가 있었다. 그렇게 같이 공부한 게 김상조 전 정책실장(원 교수의 2년 선배)과 홍장표 경제수석(4년 선배)이다. 소득주도성장을 설계할 때 나는 문재인 캠프에 참여도 하지 않았고 안식년이라 쉬고 있어서 관여는 하지 않았다. 소득 분배로 불평등 구조를 없애고 이를 통해 생산성을 높이는 것에는 동의했지만, 그게 바로 성장으로 이어진다는 것에는 동의를 못해서 꾸준히 홍장표 수석 등에게 사적으로도 지적해 온 바 있다.
학현학파는 변형윤 서울대 경제학과 명예교수의 제자들을 묶어서 부르는 말이다. 내부에서 서로 다른 견해도 있고,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다만 경제에서 분배의 중요성, 경제 민주화에 대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공통점은 있다. 그걸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현하느냐의 방법론은 학자마다 각각 다르다. 학파라고 하면 공통된 이론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전통이 있는 건 아니어서 학문 집단 정도로 보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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