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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아들, 어서 집에 가자" 잠수교 붙은 메모지 수십 장

신정은 기자

입력 : 2021.03.30 15:41|수정 : 2021.03.30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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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집에 가자 어여. 집에 가서 따뜻한 밥 먹자. 엄마는 우리 아들이 필요한데."

"힘이 들면 이야기를 하지 형이랑 소주 한잔하면서 훌훌 털자."

"키는 175. 24살. 남색 잠바를 입었는데 행적을 알 수가 없어요. 연락 부탁드립니다."

지난 금요일(26일) 서울 서초구 잠수교 위에 노란색 메모지 수십 장이 1~2m 간격으로 드문드문 붙어 있었습니다.

혹시나 거센 강바람에 날아갈까 스카치테이프로 하나하나 붙여놓은 모습이었습니다.

현장에선 시민들도 가던 길을 멈추고 한참을 들여다보거나 사진을 찍었습니다.

잠시 멈춰 눈을 감고 기도하는 시민들도 보였습니다.

메모지를 붙인 건 지난 7일 잠수교 근처에서 실종된 24살 김성훈 씨의 가족입니다.

이들은 김 씨의 실종 사실을 접한 뒤 나흘간 이곳에 나와 직접 쓴 메모지를 붙였습니다.

지난 12일 오후, 잠수교를 지나던 시민이 '수상한 차량이 며칠째 정차돼있다'며 김 씨 소유의 흰색 승용차량을 경찰에 최초로 신고했습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조수석 뒷자리에서 번개탄을 피운 흔적과 휴대폰, 빈 소주병 등을 발견했지만 차량 내부는 물론 근처에도 사람은 없었습니다.

다만 휴대폰 한 대에 유언으로 보이는 1분 5초짜리 영상이 녹화돼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영상 속 김 씨는 "엄마 아빠 미안해. 열심히 살아볼라 그랬는데 그게 잘 안 되는 거 같아. 난 그냥 까미 옆에 갈게"라고 했습니다.

까미는 김 씨 가족들이 15년간 키우다 죽은 강아지 이름으로 전해졌습니다.

또 경찰이 확보한 잠수교 CCTV 영상에 따르면 지난 7일 김 씨가 차량에서 내려 남쪽으로 걷다가, 다시 돌아서서 차량으로 향했습니다.

실종 사실을 접한 가족들도 지난 한 달간 김 씨의 행적을 추적했습니다.

실종 신고가 들어온 다음 날인 지난 13일 경기 오산시 궐동에 있는 김 씨의 원룸 자취방을 찾았고 방에는 소주병, 맥주캔 등이 널브러져 있었습니다.

집주인은 "3개월 단기 계약을 한 상태였다"고 했습니다.

지난 14일에는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처남이 실종됐어요 잠수교 목격자를 찾습니다'란 글과 함께 김씨의 얼굴, 차량 사진도 올렸습니다.

또 김 씨의 소셜미디어 계정을 뒤지다 한 개인회생 관련 커뮤니티에 '현재 은행권 4곳에 총 4700만 원의 빚이 있는데 너무 힘들다.

어떻게 하면 되느냐'란 댓글을 남긴 것을 확인했습니다.

가족의 애타는 호소에도 김 씨는 24일 오전 11시 45분 동작대교 부근 한강에서 시신으로 발견됐습니다.

김 씨의 시신은 김씨 가족들에게 인계됐습니다.

김씨 가족은 이후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감사를 표했습니다.

김 씨의 누나는 "성훈이 아직 못 찾았나 걱정에 잠 못 드실까, 찾아주시다 몸이 상할까 겁나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라며 "같이 찾아주시고 걱정해 주시고 위로해주시며 또 저희가 혹여 흔들릴까 잘 잡아주시던 분들 너무 감사합니다"라고 썼습니다.

이어 "서울 가서 확인해보니 우리 성훈이 얼마나 오래 있었던 건지, 우리 막둥이 많이 상해있었어요"라며 "성훈이 데리고 해남으로 갑니다. 부모님께선 '우리 성훈이, 우리 아들 배 많이 고팠을 거라고 맛있는 거 아주 많이 차려줘야 한다고... 어서 가자' 하시며 계속 우십니다. 마음이 찢어지는 게 이런 걸까요"라고 썼습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상담전화 ☎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 129, 생명의 전화 ☎ 1588-9191, 청소년 전화 ☎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어플,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취재: 신정은, 구성: 민경호, 영상취재: 설민환, 편집: 차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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