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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EYE] '검수완박' 반대…다시 전장으로 나온 윤석열 검찰총장

민성기 논설위원

입력 : 2021.03.03 10:23|수정 : 2021.03.05 11:03


삼일절 연휴가 끝나자마자 윤석열 검찰총장의 인터뷰 기사가 대서특필됐습니다. 여권이 추진 중인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신설 법안을 막기 위해 검찰총장이 직접 나선 겁니다. 검찰총장이 정국 현안에 대한 의견을 언론 인터뷰를 통해 밝힌다는 것 자체가 대단히 이례적입니다.

중수청 법안의 핵심은 검찰에 남은 6대 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 수사권도 중수청으로 넘기라는 것입니다. 검찰은 수사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공소 유지만 하라는 거지요. 그래서 '검수완박'(검찰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이라고 불립니다.

윤 총장은 "검찰 수사권의 완전한 박탈은 정치·경제·사회 분야의 힘 있는 세력들에게 치외법권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규정하면서 "민주주의의 퇴보이자 헌법정신의 파괴"라며 반대 의사를 분명하게 밝혔습니다. 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과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등 현 정권을 겨냥한 수사에 대한 보복이라는 검찰 내부의 인식이 반영된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나는 어떤 일을 맡든 늘 직을 걸고 해왔지, 직을 위해 타협한 적은 없다. 직을 걸고 막을 수 있다면야 100번이라도 걸겠다. 그런다고 될 일이 아니다. 국민들께서 관심을 가져 주셔야 한다." 사퇴 카드를 슬쩍 내보이면서 여론전에 나서겠다는 뜻을 드러낸 이 발언은 여권을 향한 압박 메시지로 보입니다.

중대범죄수사청 설치 입법 공청회 (사진=연합뉴스)
중수청 법안을 주도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세력은 범여권 초선 의원 모임인 '처럼회'입니다.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를 비롯해 황운하·김용민·김남국·이탄희 의원 등 20여 명이 소속돼 있는데 이른바 친조국-추미애 라인으로 분류되는 의원들이 많습니다. 조국, 추미애 두 전직 법무부 장관도 SNS에 올린 글을 통해 지원 사격을 하고 있습니다. 결국 윤 총장의 메시지는 여권이 친조국-추미애 라인을 중심으로 한 강경파에 끌려가 중수청 설립을 강행한다면 좌시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여권의 반응은 신중했지만 불쾌감과 곤혹스러움이 함께 깔려 있었습니다. 청와대는 "검찰은 국회를 존중해 정해진 절차에 따라 차분히 의견을 개진해야 할 것"이라며 윤 총장에 대해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지만 정면 대응은 자제했습니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예상 못 했던 것은 아니지만 서울시장과 부산시장을 뽑는 4월 보궐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악재인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른바 조국 사태와 추미애-윤석열 갈등 국면 등 여권과 검찰이 격렬하게 대립할 때마다 여권에 대한 여론 지지도가 바닥으로 추락했기 때문에 상당히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게다가 민주당 내에는 윤 총장에 대한 반감이 높아서 강경파를 설득해 절충안을 만드는 것도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유영민 청와대 비서실장이 국회에서 '속도조절론'을 언급했다가 면박을 당한 것이 여당의 분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입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 (사진=연합뉴스)
반면 국민의힘은 여권의 중수청 설립 추진을 맹비난하면서 윤 총장을 엄호하고 나섰습니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수사의 칼날이 자신(여권)을 향하니까 검찰을 폐지하고 중수청을 만들려는 것"이라면서 "중수청은 완전한 독재국가, 완전한 부패국가로 가는 앞잡이 기구"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국민의힘 안팎에는 드러내놓고 말하지는 않지만 윤 총장이 중수청 설치에 반발해 조기 사퇴한 뒤 범야권의 대선주자로 변신하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윤석열 총장은 여권 강경파와 맞서 싸울 때 존재감이 높아지고 대선 주자로서 지지도도 올라갔습니다. 이제 다시 '윤석열의 시간'이 시작됐고 그의 선택은 4월 보궐선거는 물론 향후 대선 정국의 뇌관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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