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전문의약품 처방을 전화로 하려면 사전에 대면 진료 등을 통해 환자의 상태를 잘 알고 있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습니다.
대법원 2부(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제대로 된 진료 없이 전문의약품을 처방한 혐의(의료법 위반)로 기소된 의사 A 씨의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유죄 취지로 사건을 서울서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밝혔습니다.
A 씨는 2011년 2월 지인의 요청으로 환자 B 씨를 직접 만나지 않은 채 전화 통화만으로 비만 치료제인 플루틴캡슐 등 전문의약품을 처방해줬다가 기소됐습니다.
의료법은 직접 관찰하거나 검안한 의사가 아니면 처방전을 환자에게 교부해서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1심에서는 이 조항의 위반 여부를 대면 진료 여부로 판단했습니다.
1심 재판부는 B 씨의 병원비 결제 내역이 없는 점 등을 근거로 대면 진료가 이뤄지지 않은 채 전화 처방이 이뤄졌다고 보고 A 씨에게 벌금 100만 원을 선고했습니다.
반면 2심은 비록 의사가 환자와 대면하지 않았다고 해도 전화로 충분한 진찰이 있었다면 전화 처방이 가능하다고 보고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처방전을 교부할 수 있는 조건으로 의료법이 명시한 '직접 진찰'은 비대면 진찰이 아니라 의사를 대리한 처방을 금지한 것이라는 취지입니다.
판결은 상고심에서 다시 뒤집혔습니다.
대법원은 전화 처방은 가능하지만 그 이전에 의사가 환자를 대면하고 진찰해 환자의 특성·상태를 이미 알고 있다는 점이 전제돼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따라서 A 씨는 전화 처방 전 B 씨와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고 전화 통화 때도 B 씨의 특성에 대해 잘 알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진찰'을 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재판부는 "신뢰할만한 환자의 상태를 토대로 특정 진단이나 처방 등을 내릴 수 있는 정도의 행위가 있어야 '진찰'이 이뤄졌다고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