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백악관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잇따라 나오며 비상이 걸렸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마이크 펜스 부통령을 보좌하는 직원이 코로나19에 감염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미국의 심장부나 다름없는 백악관 내 확산 우려가 커진 탓이다.
백악관 역시 추가 감염자를 차단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지만 관리들이 대응책을 놓고 서로 뒤섞인 메시지를 내놓는 등 우려가 적지 않다고 워싱턴포스트(WP) 등 외신이 1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최근 들어 백악관 근무자의 감염이 속출하고 있다.
지난 7일 대통령의 시중을 드는 파견 군인 1명이 양성 판정을 받았다고 알려진 데 이어 8일에는 '이인자' 펜스 부통령의 대변인인 케이티 밀러가 감염된 사실이 전해졌다.
요인 경호 업무 등을 담당하는 국토안보부 비밀경호국 소속 대원 11명이 양성 판정을 받고 60명이 자가격리 상태지만 이들 중 누가 최근 백악관에서 근무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는 보도도 나왔다.
위기 의식이 높아진 탓에 백악관 참모들은 8일 백악관 행정팀으로부터 원격근무를 최대한 실행하고 가능하면 떨어져서 일하라는 지침을 전달받았다.
또 워싱턴을 떠날 경우 14일간 자가격리를 하고 모든 여행 상황을 보고하도록 했다.
이 지침은 양성으로 추정될 경우 백악관 의료팀이 접촉자를 추적해 통보하는 작업을 한다고도 밝혔다.
7일에는 보좌진이 대통령 집무실의 바깥 문을 닫고, 비밀경호국과 백악관 관리들도 대통령 집무실에 있는 인원을 제한하기 시작했다.
또 백악관 방문객은 들어가기 전 증상 리스트에 관한 질문을 받고, 백악관 직원들의 사무실이 있는 '이스트 윙' 근무자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
'웨스트윙'의 트럼프 대통령 집무실 아래 근무하는 직원들도 마스크를 쓰고 있다.
저드 디어 백악관 부대변인은 "모든 예방책을 취하기 위해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며 사회적 거리두기, 일일 발열 체크, 대통령과 부통령 근접 인사의 코로나19 매일 검사 사례 등을 제시했다.
하지만 문제는 추가 감염을 차단하기 위한 일관되고 종합적인 대응책이 부족하다는 점이라고 외신은 지적한다.
일례로 백악관 코로나19 태스크포스(TF) 멤버인 로버트 레드필드 식품의약국(FDA) 국장과 스티븐 한 질병통제예방센터(CDC) 국장은 양성 판정자에게 노출됐다며 2주간 자가격리에 들어갔고, 앤서니 파우치 미 국립알레르기·전염병 연구소 소장도 완화된 자가격리를 시작했다.
그러나 좌장인 펜스 부통령을 비롯해 TF의 다른 구성원이 자가격리를 시작한다는 얘기는 아직 없다.
또 일부 백악관 참모는 사무실에서 일하는 것을 권장 받았으며, 트럼프 대통령, 펜스 부통령과 함께 외부 행사에 참석하는 보좌진도 격리 조치를 하진 않는다고 WP가 당국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CDC와 FDA 수장마저 자가격리에 들어간 판국에 일부 당국자는 자신들도 계속 백악관에서 근무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한다고 WP는 전했다.
지난 8일 백악관 직원에게 보낸 지침에는 마스크를 착용하라는 내용이 포함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두 차례 외부 행사 때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은 데 이어 9일 백악관에서 개최한 군 지도부와 회의 때도 착용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케빈 해싯 백악관 경제 선임보좌관은 이날 CBS방송에 출연해 백악관에 최고의 의료팀이 있지만 웨스트윙의 좁은 업무환경으로 향하는 것은 겁나는 일이라는 취지로 하소연했다.
그는 "일하러 가는 게 무섭다. 웨스트윙에 가는 것보다 집에서 앉아 일하는 것이 훨씬 더 안전할 것"이라면서도 "지금은 사람들이 나라를 섬겨야할 때"라고 말했다.
WP는 "당국자와 참모들의 상충하는 대응 방식은 백악관이 트럼프 대통령과 펜스 부통령, 참모들을 위해 안전한 업무 환경을 유지하는 과제에 관한 의문을 계속 키웠다"고 평가했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19 확산 억제에서 경제 정상화 쪽으로 초점을 옮겨감에 따라 파우치 소장이나 데비 벅스 백악관 조정관 등 보건 전문가의 입지가 위축되고 있다는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행정부 내 보건 전문가들의 의회 증언 요청이 백악관에 의해 일부 거부되는가 하면, 코로나19 TF 언론 브리핑이 열리지 않아 트럼프 대통령에게 공개적 반론도 불사한 이들의 목소리가 전달될 기회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전염병과 싸움의 결정적 시점에 고위 보건 전문가의 목소리가 점점 들리지 않는다며 이들의 목소리는 정치인에게 자리를 내주고 있다고 꼬집었다.
(연합뉴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