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부산시장직에서 사퇴한 오거돈 시장은 오뚝이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4번째 도전 끝에 부산시장에 당선된 그의 인생 후반 여정은 순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행정고시 합격으로 1974년 부산시 행정사무관으로 공직을 시작한 그는 이후 내무부와 부산시 요직을 두루 거친 자타가 인정하는 행정 전문가이자 해양전문가로 평가받았습니다.
첫 발령지인 부산을 잠시 떠나 대통령 정책보좌관실, 내무부 국민운동지원과장 등을 그쳐 1992년 다시 부산시 재무국장으로 부임한 뒤 줄곧 부산에서 공직생활을 했습니다.
상수도사업본부장, 기획관리실장, 정무부시장, 행정부시장 등 시장직을 제외하고는 오를 수 있는 자리는 다 했습니다.
그는 언어장애 핸티캡을 선이 굵은 일 처리와 아래 직원과 원만한 소통으로 만회하며 주변으로부터 좋은 평을 받았습니다.
그가 정치권에 발을 처음 내디딘 것은 2004년 6·5 재보선입니다.
그는 이때 열린우리당으로 부산시장 후보로 출마해 낙선했습니다.
하지만 이때 도전 전력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2005년부터 2006년까지 해양수산부 장관을 역임합니다.
이후 한국해양대 총장을 역임하면서 부산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해양·물류밖에 없다며 해양수도로서 부산 역할을 강조하는 등 지역에서 원로로서 걸맞은 역할을 했습니다.
해양대 총장 시절에는 축제 등 여러 무대에서 평소 말을 더듬는 것과는 달리 멋들어지게 노래를 불러 '노래하는 총장'으로 불렸습니다.
부산지역 정치에서 그의 행보는 나름대로 큰 의미가 있다고 지역 정치계는 평가합니다.
그는 2014년 6월 지방선거에서 부산시장 후보로 나서 '통 큰 연대'란 말을 만든 주인공입니다.
당시 보수 일색의 부산에서 진보 후보가 당선되기 위해서는 민주당 이름을 달고 후보로 나서기보다는 무소속으로 출마해 야권 연대를 통해 선거를 치르자는 개념입니다.
그는 "20년간 독점해온 새누리당에 대항해 선거에 승리하기 위해서는 어떤 정당에도 소속되지 않는 '통 큰 연대' 만이 시장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의 이같은 전략에도 당시 서병수 후보에게 눈물을 삼켰습니다.
하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서 3전 4기 도전 끝에 부산시장 자리를 꿰찼습니다.
당시 그의 당선은 1995년 처음 시작한 민선 1기 지방선거 이래 23년 만에, 그 이전 보수정권의 임명직 단체장 시절을 합하면 30여년 만에 부산지방 권력이 보수에서 진보로 교체됐습니다.
그토록 꿈꾸던 부산시장직에 어렵게 오른 그는 취임 2년을 못 채우고 성추행이란 불명예를 안고 자리에서 내려왔습니다.
(사진=부산시 제공,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