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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이 봄날, 보고픈 당신께 전화를 겁니다

입력 : 2020.04.04 11:08|수정 : 2020.04.05 10:20

파파제스 |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예쁜 딸을 키우는 아빠, 육아 유튜버


올해 내 마음의 봄은 유난히 늦게 오는 것 같다. 어느덧 4월, 꽃은 흐드러지게 폈지만 내 마음은 여전히 춥다. 코로나19로 인해 야외 활동이 줄어들면서 봄의 기운을 느끼지 못해서 그런 건 아닐까.

그런데 '사회적 거리 두기(Social Distancing)'라는 게 이번 코로나 사태로 인해 처음 접하게 된 생소한 개념인데도 불구하고 왠지 낯설지가 않다. 왜냐하면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나는 이미 사회와 거리를 둔 생활을 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내의 출산과 동시에 육아 휴직을 하게 되면서 매일 반복해왔던 출퇴근이 사라졌고, 자연스럽게 회식이나 모임에도 참석하지 않게 됐으며, 친구들과의 약속도 거의 잡지 않게 되었다.

아이가 생긴 우리 집에는 늘 해야 할 일이 넘쳤고, 24시간 부모를 필요로 하는 아이가 있으니 약속이 생겨봐야 장소는 우리 집 아니면 아이가 있는 친구 집을 방문해 공동 육아하는 만남이 최선이었다. 사실상 그마저도 없었다면 손주를 애타게 기다리시는 양가 부모님에서 사회적 관계가 그쳤을 것이다.

육아 부모 아기 (사진=픽사베이)
아이가 있기 전에는 분명 달랐다. 원래 나는 매우 외향적인 성격이라 직접 파티를 주최해 모임을 만들기도 했고 결혼 후에는 집들이로 친구들을 불러 모으기도 했었다. 그런데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는 외향적인 것과 매우 멀어지게 되었다. 누군가 아이를 맡아주지 않으면 잠시 밖에 나가는 것도 어렵고 아이가 있다 보니 집에 누구를 초대한다는 것도 어려운 일이 되었다. 간혹 아내가 혼자 아이를 맡아준다고 해도 독박 육아를 시키는 게 마음이 편치 않아 선뜻 약속을 잡을 수가 없다. 그렇다고 집으로 초대하자니 육아하랴 대화하랴 손님도 나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러다 보니 약속을 잡지 않게 되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각종 모임에서도 멀어지게 되었다.

육아를 경험하기 전에는 아기가 생긴 친구나 동료들이 사회 모임에 점점 나오지 않는 것에 대해 자연스러운 삶의 단계처럼 받아들였다. '아기가 있으니까 나오기 어려울 거야' 하며 연락을 하지 않는 것이 배려라 생각했다. 그리고 이제는 경험을 통해 약속과 모임이 육아하는 사람에게 얼마나 큰 일인지 절실히 깨닫고 있다. 그들과 나는 이미 육아와 동시에 사회적 거리를 두며 살고 있었던 것이다.

나 역시 변화된 환경 속에 적응하고 또 나름대로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가끔 이렇게 멀어진 사회적 거리가 '이대로 멈추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자의가 아닐지라도 계속해서 사람들을 만나야 하는 회사원 친구들이나 아이가 없어 시간과 공간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친구들을 볼 때면 나는 집안에서 아이만 보다가 이렇게 사회적으로 단절되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문득 들기도 한다. 코로나 사태가 종료되면 사람들의 거리는 다시 가까워지겠지만 나의 사회적 거리엔 변화가 없을 것이다. 모임과 약속은 여전히 큰 일이며, 아이를 데리고 갈 수 있는 카페라곤 키즈 카페뿐이다. 이미 멀어진 사회적 거리를 과연 나라고 좁힐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던 중 회사 동기에게서 전화 한 통이 왔다. 퇴근길에 문득 생각나서 전화했단다. 얼굴 한 번 보고 싶은데 요즘 같은 때에 만날 수 없어서 아쉽다고 했다. 잠깐이었지만 목소리로나마 그간 안부를 나눴다.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얼굴 한 번 보자"하는 말로 통화를 끝냈다. 사실 그 친구와 연락을 자주 하던 사이도 아닌데 요즘 같이 일부러라도 사회적 거리를 두는 때에 안부 전화를 받으니 더욱 반갑고 고마운 마음까지 들었다.

어려운 일도 아닌데 왜 나는 진작 전화 한 번 하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는 사회적 거리 두기를 '물리적 거리'뿐만 아니라 '심리적 거리'로 까지 이어오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렇게 전화 한 통으로도 관계를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인데 말이다.

핸드폰 휴대폰 전화 안부 (사진=픽사베이)
이번 코로나 사태를 통해 '사회적 거리두기'에 대한 이해를 더한다. 나보다 일찍 가정을 만들어 사회에서 멀어져야 했던 동기들과 선배들 그리고 이게 자연스러운 거라 여기며 한 걸음 멀어졌던 나를 다시금 되돌아본다. 그리고 이제는 그 반대편에서 육아를 하며 사회적으로 멀어진 나를 본다. 연락하지 않는 게 육아하는 사람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했던 내가 이제는 연락 한 번으로 반가워하는 사람이 되었다.

코로나가 잠잠해져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면 주변에 사회적 거리를 둘 수밖에 없었던 친구들에게 안부 연락 한 번 해보면 어떨까?

그 전화 한 통화가 일상에 지친 이에게
봄날 같이 따뜻한 선물이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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