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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아세안서 패권 각축…RCEP 주도한 中·푸대접 자초한 美

입력 : 2019.11.05 03:32|수정 : 2019.11.05 03:32


미국과 중국이 4일 태국 방콕에서 개최된 아세안(ASEAN·동남아국가연합)+3(한중일) 정상회의와 동아시아정상회의(EAS)에서 무역과 남중국해 등 동아시아 패권을 놓고 다시 한번 격돌했지만 이번에는 미국이 체면을 구긴 모양새다.

중국이 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RCEP) 타결을 주도하며 지역내 영향력을 확인한 반면 미국은 인도-태평양전략을 내세워 맞불을 놓았지만 역부족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더욱이 아세안 정상들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번 정상회의에 또 불참한 데 항의하듯 미국과의 정상회의장에 대거 나오지 않았고, 다급해진 미국이 내년 백악관 초청을 제안하는 진풍경까지 나왔다.

동아시아 내 미중 간 패권 경쟁과 관련해 이번 회의에서 가장 주목할 부분은 중국이 주도한 RCEP가 인도를 제외한 15개국의 참여로 타결된 것이다. 이 협정에는 우리나라도 동참했다.

중국 입장에서 RCEP는 미국이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절 핵심 동맹국과 우방국을 주축으로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아우른 세계 최대 무역협정으로 추진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의 대항마적 성격이 있다.

중국은 자국을 배제한 TPP를 중국의 세력 확장을 포위하는 '경제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로 간주하고 2012년 RCEP의 정식 협상에 나섰다.

따라서 이번 RCEP 타결은 미국이 트럼프 대통령 취임 직후인 2017년 TPP에서 탈퇴한 틈을 비집고 중국이 자국 주도의 경제질서를 구축하려는 세력전에서 일정한 성과를 거둔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중국은 미국과 무역전쟁에서 성장 둔화에 직면하자 RCEP를 가속화하길 원했다면서 "트럼프 행정부가 아시아 국가에 중국의 인프라 대출과 5G 기술을 피하라고 촉구하지만 이번 합의는 중국과 아시아 경제권을 좀더 통합시킬 것"이라고 예상했다.

AFP통신도 "미국이 참여하지 않았고 중국이 주도했다는 점이 중요하다"며 "관측통들은 미국이 TPP에서 스스로 탈퇴했기 때문에 RCEP는 중국의 세력권에 대한 우위를 강화할 것이라고 말한다"고 평가했다.

이런 현상은 트럼프 대통령이 고립주의적 외교 정책을 추진한 결과라는 해석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자주의에 부정적 태도를 취하며 TPP는 물론 파리 기후변화협약에서도 탈퇴했고, 대신 중국과의 무역전쟁, 한국·일본과의 새 무역협정 등 '미국 우선주의'와 '힘을 통한 평화'라는 원칙에 따라 개별 협상을 통해 압박하는 정책을 펴왔다.

반면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는 이번 회의에서 "중국은 다자주의를 결연히 수호하겠다"고 말했고, 기후변화에 대해서도 "파리 기후협약을 이행해 저탄소, 녹색 성장을 촉진할 것"이라며 미국을 겨냥한 듯한 발언을 내놓았다.

일단 미국은 윌버 로스 상무장관이 전날 블룸버그TV와 인터뷰에서 "대단한 합의가 아니다", "매우 낮은 수준의 협정"이라고 언급한 것처럼 RCEP를 평가절하하는 분위기지만 긴장한 표정도 읽힌다.

미국이 이날 소집한 아세안 10개국과 정상회담에 7개 국가가 외무장관을 보낼 정도로 푸대접을 받은 것이 대표적이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작년에 이어 올해도 아세안+3, EAS에 불참하면서 행정부 각료도 아닌 로버트 오브라이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대타'로 보낸 것에 불만이라는 해석을 낳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의식한 듯 내년 초 아세안 정상들에게 미국에서 특별 정상회담을 열자고 오브라이언 보좌관이 대독한 서한을 통해 제안했다.

또 로스 장관은 "트럼프 행정부는 인도·태평양 지역에 매우 관심을 가지고 있고, 계속해서 전념하고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트럼프 대통령의 인도·태평양 전략 논의의 성과를 알리는 보도자료를 잇달아 배포했다.

또 지난 2일 문재인 정부의 '신남방정책과 인도·태평양 전략간 협력에 대한 한미 공동 설명서'라는 자료를 배포하고, 이날은 일본과 스마트시티, 에너지 파트너십과 관련한 자료를 내놓기도 했다.

미국과 중국은 남중국해 문제를 놓고도 충돌했다.

오브라이언 보좌관은 "중국은 아세안 국가들이 연안의 원유와 가스 자원을 개발하지 못하도록 협박해 왔다"며 남중국해 영유권을 주장하는 중국의 행위를 '협박', '정복'이라는 단어를 써가며 강하게 비판했다.

이에 러위청(樂玉成) 중국 외교부 부부장은 "이 지역 밖에 있는 국가들이 와서 풍파를 일으키거나 분쟁을 확대하거나 또는 긴장을 조성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AP는 "정상회의는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이 지역에서 영향력을 강화하려는 미국과 중국 간 경쟁을 보여주는 장으로 역할 한다"며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이 불참함으로써 스스로 불리해졌음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AP는 또 "트럼프 대통령과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국내에서 선거운동을 하느라 바쁘다"고 비꼰 뒤 "전문가들은 그들의 부재는 중국이 이 지역에서 영향력을 올릴 여지를 줬다고 말한다"고 지적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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