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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위하는 아키히토 일왕 "행복하고 감사했다"

권태훈 기자

입력 : 2019.04.30 17:30|수정 : 2019.04.30 17:31


일본의 제125대 아키히토 일왕이 30일 재위 30년 3개월 만에 "지금까지 행복했고, (일본) 국민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남기고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아키히토 일왕은 이날 오후 5시 도쿄 지요다의 고쿄 내 영빈관인 '마쓰노마'에서 약 10분간 마지막 퇴위 의식을 치렀습니다.

이 의식에는 나루히토 왕세자를 비롯한 왕실 인사들과 아베 신조 총리 등 중앙정부 각료, 국회 의장단, 지방자치단체 대표 등 약 300명이 참석했습니다.

아베 총리는 "덴노 헤이카(일왕에 대한 경칭)는 '고고사마'(왕비에 대한 경칭)와 함께 국민들에게 가깝게 다가가 내일에 대한 용기와 희망을 주셨다"며 국민을 대표해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아키히토 일왕은 퇴위의 변인 '오코토바'를 통해 "오늘로 덴노로서의 직무를 마치게 됐다"며 "국민을 대표해 아베 총리가 언급한 말에 깊은 사의를 표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즉위로부터 30년, 지금까지 덴노로서의 역할(소임)을 국민의 깊은 신뢰와 경애를 받으며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은 행복한 일이었다"며 "상징(덴노)으로 저를 받아주고 지탱해준 국민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덧붙였습니다.

아키히토 일왕은 "내일부터 시작되는 새로운 레이와의 시대가 평화롭게 많은 결실을 보기를 고고(왕비)와 함께 진심으로 바라고, 아울러 우리나라와 세계인의 안녕과 행복을 기원한다"고 했습니다.

이 의식을 끝으로 아키히토 일왕은 1989년 1월 7일 선친인 쇼와(1926∼1989) 일왕의 뒤를 이어 즉위한 지 30년 3개월 만에 왕의 자리에서 내려왔습니다.

일왕의 생전 퇴위는 에도시대 후기인 1817년 고카쿠 이후 202년 만입니다.

일본이 헌정 체제(1890년)에 들어선 후로는 처음입니다.

퇴위한 아키히토 일왕은 '조코'(상왕) 지위로 왕세자 시절 살던 아카사카의 옛 사저로 거처를 옮길 예정입니다.

올해 12월 만 86세를 맞는 아키히토 일왕은 2016년 8월 고령과 건강을 이유로 큰아들인 나루히토(59) 왕세자에게 자리를 넘기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이에 일본 정부는 이듬해 6월 아키히토 일왕에 한해 생전 퇴위를 인정하는 왕실전범 특례법을 만들어 이번 퇴위를 가능케 했습니다.

이에 앞서 아키히토 일왕은 이날 오전 고쿄 내 규추산덴을 차례로 참배하면서 조상신들에게 일본고유어로 퇴위를 고하는 의식을 올렸습니다.

규추산덴은 일본 왕실 조상이라는 아마테라스 오미카미를 봉안한 '가시코도코로', 일본 왕실종묘인 '고레이덴', 천지의 여러 신을 모신 '신덴'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아키히토 일왕의 뒤를 잇는 나루히토 새 일왕은 5월 1일 오전 10시 30분부터 10분가량 마쓰노마에서 '겐지토 쇼케이노 기'로 불리는 첫 즉위 행사를 치릅니다.

이 의식은 청동검과 청동거울, 굽은 구슬 등 이른바 '삼종신기'로 불리는 일본 왕가의 상징물을 새 일왕이 넘겨받는 것을 의미하는 상징적인 행사입니다.

이 가운데 굽은 구슬만 원래 물건이고 검은 대체품으로 알려졌습니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검은 나고야시의 아쓰타신궁에, 이날 의식에 등장하지 않는 거울은 미에현의 이세신궁에 보관돼 있습니다.

그러나 실재 여부는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 의식에는 일본 왕가에서 성년 남자만 참석할 수 있고, 여성 왕족은 배제됩니다.

이는 메이지 시대 말기에 제정됐다가 현 헌법 시행으로 폐지된 '등극령'을 거의 그대로 원용하는 것입니다.

이 배경에는 '여성 덴노제' 도입 논란을 피하고자 하는 보수 정부의 생각이 반영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현 일본 왕실전범은 남자만이 왕위에 오를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나루히토 새 일왕은 1일 오전 11시 10분부터 10분 남짓 같은 장소에서 '조현 의식'에 참여해 총리를 비롯한 정부 부처 대신(장관)과 광역단체장 등 국민대표들을 처음으로 만날 예정입니다.

한편 일본 연호는 5월 1일 0시를 기해 아키히토 일왕의 헤이세이에서 나루히토 새 일왕의 레이와로 바뀝니다.

아키히토 일왕은 일제가 일으킨 전쟁의 피해국들을 방문해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깊은 반성" 등의 표현으로 사죄의 뜻을 표했으나, 한국 방문과 한반도의 전쟁 피해자들에 대한 직접 사과는 끝내 재임 중에 실현하지 못한 채 숙제로 남겨뒀습니다.

(사진=교토,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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