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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 격"…녹지병원 직원들 '한숨'

권태훈 기자

입력 : 2019.04.29 13:49|수정 : 2019.04.29 13:49


국내 첫 영리병원으로 추진된 제주 녹지국제병원측이 직원들에게 사업 철수 의사를 밝힌 후 첫 출근날인 29일 제주 서귀포시 토평동 녹지병원은 사람 온기가 느껴지지 않은 채 고요했습니다.

녹지병원에 조성된 화단은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지 오래인 듯 잡초가 무성했습니다.

병원 내부는 갓 지은 모델하우스처럼 삭막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넓은 주차장은 텅텅 비어있었고 일부 직원들이 추적추적 내리는 가랑비에 아랑곳하지 않고 병원 밖 흡연 구역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습니다.
병원 직원으로 보이는 두 사람이 심각하게 대화하고 있다. 이들은 병원측의 철수통보에 답답한 심정을 내비쳤습니다.

2년 가량 병원에서 근무했다는 한 행정직 직원은 "언론 보도를 통해 녹지병원 돌아가는 상황을 알고 있을 뿐"이라며 "지난 26일 오후 4시쯤 병원 상급자가 직원들에게 나눠준 근로자 고용 해지에 대한 내용이 담긴 통지서를 받아들고 놀랐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사업자측이 철수의지를 밝힌 만큼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사업자 측이 중국 기업이고 직원들이 사실상 노동법에 대해 잘 아는 것도 아니어서 걱정이 된다"며 "아직 직원들끼리도 제대로 말을 해보지 않은 상태라 이번 주는 지나야 구체적인 방안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답답한 마음을 반영하기라도 하듯 흡연 구역에는 10분도 채 되지 않아 10여 명이 오가는 등 담배를 피우러 나오는 직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모두 '참담하다', '억울하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고 입을 모으면서 이날 오후 예정된 녹지병원 사업자측인 녹지제주헬스케어타운 유한회사(이하 녹지제주)와의 간담회에 기대를 거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병원 인근에서 만난 또 다른 직원은 "1년 6개월간 근무하면서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공기업인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가 추진하는 사업이라 기대가 있었다"며 "중간에 제주도가 인수하겠다는 이야기도 있어 지금껏 버텨온 직원들이 대다수"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물론, 녹지병원 사업이 좌초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온 직원들도 있다"며 "하지만 결국 근로자들은 고래 싸움에 직장을 잃게 돼버린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길게는 약 2년의 시간을 허비해 버렸다"고 호소했습니다.
녹지병원 사업 철수로 굳게 잠긴 병원 출입구병원 직원들은 이날 오전 1시간 30분가량 대책 회의를 했지만 뾰족한 대안은 내놓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들은 이날 오후 예정된 녹지제주와의 간담회에서 사업자 측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다시 의견을 나누자는 쪽으로 결론을 냈다고 전했습니다.

앞서 녹지병원 사업자인 녹지제주헬스케어타운 유한회사(이하 녹지제주)는 지난 26일 구샤팡 대표 명의로 병원 근로자 50여 명(간호사·행정직 등)에게 통지서를 보내 "병원사업을 부득이하게 접을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말했습니다.

중국 자본인 녹지그룹의 녹지제주는 외국계 의료기관으로 국내 첫 영리병원 개설을 추진해 왔습니다.

제주도는 지난 17일 정당한 사유없이 의료법이 정한 시한내에 병원을 개원하지 않았다며 녹지제주의 병원 개설허가를 취소했습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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