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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에 순응도, 대결도 아니다"…김정은 '전략적 인내' 선택하나

입력 : 2019.04.11 09:50|수정 : 2019.04.11 09:54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고심 끝에 '전략적 인내'라는 '새로운 길'을 선택해 가는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위원장은 10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4차 전원회의를 주재하면서 "혁명발전과 사회주의 건설의 근본요구로부터 당 중앙은 자력갱생의 기치 높이 사회주의 강국을 건설하는 것이 우리 당의 확고부동한 정치 노선이라는 것을 재천명하게 된다"고 밝혔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1일 전했다.

'자력갱생을 통한 경제발전'을 '포스트 하노이' 노선으로 선택하고 공식화한 것으로 평가된다.

김 위원장은 또 "자립적 민족경제에 토대해 자력갱생의 기치 높이 사회주의 건설을 줄기차게 전진시켜 나감으로써 제재로 우리를 굴복시킬 수 있다고 혈안이 돼 오판하는 적대세력들에 심각한 타격을 줘야 한다"라고도 했다.

미국을 향한 노골적인 비난을 삼가긴 했지만, 미국의 '일괄타결' 요구와 제재 압박에 순응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우회적으로 발신한 셈이다.

김 위원장은 전원회의에서 "최근에 진행된 조미수뇌회담의 기본취지와 우리 당의 입장"에 대해서도 언급했으나 북한 매체들은 상세한 내용을 전하지 않았다.

그러나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이후 북한이 "미국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일관하게 보여온 만큼 그의 회의 발언 역시 이런 맥락에서 벗어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 김정은 위원장은 미국의 일괄타결 요구를 수용하지 않을 것이며 그렇다고 해서 작년 당 전원회의에서 선언한 '경제발전 총력집중' 노선에서도 탈선하지 않겠다는 이른바 '현상유지' 정책을 선택한 셈이다.

특히 김정은 위원장의 이런 입장에서 '시간은 내 편'이라는 판단 속에 대화도, 도발도 하지 않고 현 상황을 유지하면서 상대방의 입장이 바뀔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의도가 읽힌다.

사실상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집권 기간 유지한 '전략적 인내 정책'과 유사한 맥락으로, 북한판 버전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오바마 행정부가 핵·미사일 발사 등 군사도발을 강행하는 북한에 대해 군사적으로 대응하지도, 협상도 하지 않으면서 무시하는 전략을 구사한 것과 유사해 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하노이 회담 결렬은 영변핵시설을 앞세워 대북 제재 완화의 기대에 부풀어있던 김정은 위원장을 진퇴양난의 위기에 빠뜨렸다고 할 수 있다.

강경 도발을 통한 과거 회귀를 선택하자니 미국의 제재 강화에 구실을 주고 중국과 러시아 등 우호 국가를 포함해 국제사회의 더 큰 고립을 자처하는 꼴이 될 수 있다.

또 미국과 유엔을 중심으로 국제사회의 제재 포위망이 더욱 좁혀져 간신히 연명하는 경제의 숨통을 완전히 끊어놓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고, 이로 인한 경제적 파국은 정권 유지에도 절대로 유리하지 않다.

더욱이 최고지도자의 권위를 최우선으로 하는 북한 입장에서 이미 대내외에 선언한 경제발전 총력집중 노선을 1년 만에 손바닥 뒤집듯 번복한다는 것은 김정은 위원장의 리더십과 이미지에 치명상을 주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미국의 일괄타결 빅딜 요구를 '일방적 핵무장 해제' 또는 '선(先) 핵 포기'나 다름없다고 받아들이는 상황에서 수용할 수도 없는 형국이다.

'완전한 핵폐기'에 대한 김정은 위원장의 결단이 진심이든 속임수이든 미국의 상응 조치가 없는 상황에서 일방적 요구를 수용하면, 북한 내부에서 지도자 이미지를 훼손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대미 협상 실무자들을 포함해 북한 간부와 기득권, 일반 주민들까지 북미 관계를 풀어 경제성장을 해야 한다는 욕구를 갖고 있음에도 완전한 핵 폐기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이중적 심리가 적지 않게 형성돼 있다는 후문이다.

최선희 외무성 부상은 지난달 15일 평양주재 대사관 관계자들과 브리핑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북미 협상의 기회를 만들기 위해 "국내의 많은 반대와 도전과도 맞서오시었다"며 "사실 우리 인민들 특히 우리 군대와 군수공업부문은 우리가 절대로 핵을 포기하면 안 된다고 하면서 우리 국무위원회 위원장 동지께 수천통의 청원 편지를 올리고 있다"고 말했다.

최 부상의 발언은 단순히 대외용이 아니라 실제 기득권과 주민들의 모순된 인식을 반영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인태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현재 국면에서 김정은 위원장에게는 현상유지 외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어 보인다"며 "상황 변화가 없는 한 트럼프 행정부 임기 내까지 제재의 중장기 전에 대비해 자구노력으로 경제발전의 국가전략을 계속 갖고 가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연합뉴스/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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