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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환기 블루'의 최고봉을 만나다

홍지영 기자

입력 : 2019.01.24 15:01|수정 : 2019.01.25 09:26


서울 부암동에 있는 서울미술관은 흥선대원군이 사랑했던 정자 석파정(石坡亭)을 정원으로 두고 있습니다. 서울미술관이 문을 연 것은 2012년. 그해 가을에 미술관에 갔었습니다. 미술관보다는 단풍이 곱게 든 정원과 흥선대원군의 별장이었던 한옥, 그리고 북악산과 이어지는 계곡에 자리 잡고 있는 석파정을 보며 가을 정취를 한껏 즐겼습니다. '서울에도 이런 곳이 있구나' 생각하며 '한 번 더 와 봐야지' 했지만 다시 가보진 못했습니다.
서울미술관 내 정원7년 만에 다시 찾은 미술관 정원은 겨울이라 을씨년스럽긴 하지만 고풍스러운 한옥과 오래된 나무들이 더욱 자리를 잡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동안 안동, 영주, 구례 등에서 공수한 수백 년 수령의 모과나무, 회화나무, 산수유 등을 옮겨 심었다고 합니다. 정원 풍경을 미술관 3층에서 한눈에 감상할 수 있는 것도 좋았습니다.
거인展, 서울미술관 신관 개관 7년을 맞아 새로 신관을 지어 기념 전시를 합니다.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인데 특히 지하 1층은 층고가 5m나 돼 커다란 작품들도 시원하게 감상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덕분에 "환기 블루" 시대 최고봉으로 꼽히는 김환기의 작품 <십만 개의 점>도 전혀 부담스럽지 않게 볼 수가 있었습니다.
김환기, 십만 개의 점 04-VI-73 #316, 1973, 면천에 유채, 263x205cm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이 작품은 미술관 개관 이후 처음 공개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액자 틀이 발광하는 것처럼 신경 쓴 조명도 작품에 빠져들게 하는 큰 역할을 하는 듯했습니다.
폴 자쿨레展, 서울미술관 신관 2층 전시관 신관 2층에서는 '아시아를 그린 서양화가'로 잘 알려진 폴 자쿨레(Paul Jacoulet)가 한국을 소재로 그린 작품 20여 점이 전시됩니다. 신관 전시회를 직접 기획했다는 안병광 회장으로부터 폴 자쿨레전 기획 의도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안 회장이 미술품 수집에 나서게 된 계기는 이중섭의 대표작 '황소'였습니다.
서울미술관 안병광 회장 제약회사 영업사원 시절 처마 밑에서 소나기를 피하다가 눈에 띈 것이 건물에 전시된 이중섭의 '황소' 그림이었습니다. 뼈만 앙상하게 남은 황소가 여전히 앞으로 전진하려는 모습에 용기를 얻었습니다. 그 작품 인쇄물을 7천 원에 사 아내에게 선물하면서 "언젠가 원작을 사주겠다"고 약속했다는 겁니다. 30여 년 후 안 회장은 결국 이중섭의 <황소>를 사게 됐고, 국내 경매 최고액을 기록했습니다.
이중섭, 황소, 1953, 종이에 에나멜과 유채, 35.5x52cm그 뒤부터 이중섭의 <황소>를 계속 수집했습니다. 이 중 하나인 <싸우는 소>를 지난 2011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 내놓았다고 합니다. 마음먹고 100만 달러를 불렀는데, 85만 달러까지 올라갔지만 결국 팔지 않았답니다.
이중섭, 싸우는 소, 1955, 종이에 애나멜과 유채, 27.5X39.5cm안 회장은 '왜 우리 작가 작품은 가치를 높게 쳐 주지 않는가'며 아쉬운 마음에 팔지 않았고, 뉴욕의 한 교포가 이중섭의 작품을 싸게 팔지 않아서 고맙다며 폴 자쿨레의 그림을 하나 선물했습니다. 그것이 계기가 돼 그의 작품도 모으기 시작했고, 그 작품들이 이번에 전시된 겁니다.

미술관 측은 신관 개관을 계기로 미술관 문턱을 더욱 낮춰 젊은이들도 자주 찾는 공간이 되도록 하겠다는 포부를 밝혔습니다. 그래서 정원만 따로 볼 수 있는 입장권 등 입장권을 다양하게 나누고 각종 연계 프로그램도 운영할 계획입니다. 안 회장은 "잔칫집에 손님 많으면 마음이 뿌듯한 것처럼 미술관에 사람이 많으면 부자 된 것 같아요"라면서 "특히 젊은이들이 미술품들을 보면서 지나치게 감정적이기보다는 감성에 충만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부암동 서울미술관 신관 전경부암동에 자리 잡은 서울 미술관은 접근성이 별로 좋지 않은데 특히 광화문에 시위가 있으면 차가 꼼짝을 못 해 관람객이 확 줄어 걱정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한마디 덧붙였습니다. 미술관에 사람들이 북적거릴 수 있도록 (시위를 안 할 수 있도록) "제발 정치 좀 잘해줬으면 좋겠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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