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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프랑코 독재 당시 자행된 '신생아 빼돌리기' 첫 재판

입력 : 2018.06.27 05:02|수정 : 2018.06.27 05:02


스페인의 군부독재 시절 반체제 인사나 빈곤층 가정에서 태어난 아기들이 병원에서 친부모 몰래 빼돌려져 살해되거나 강제입양됐다는 의혹과 관련해 80대 의사가 기소돼 법정에 섰다.

그동안 스페인에서는 유사한 의혹이 수천 건 제기됐지만 모두 증거불충분이나 공소시효 만료로 기소까지 이어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26일(현지시간) 엘파이스 등 스페인 언론에 따르면 산부인과 의사 에두아르도 벨라(85)가 출생기록 위조와 사기 등의 혐의로 이날 마드리드 법정에 출석했다.

그는 자신의 병원에서 1969년 태어난 이네스 마드리갈(현재 49세)라는 여자아이를 생모에게서 몰래 빼앗아 서류를 조작한 다음 다른 여성에게 준 혐의를 받고 있다.

생모에게는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사망했다고 말하고 병원이 알아서 시신을 매장했다고 거짓말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스페인에서는 인민전선 정부를 쿠데타로 뒤엎고 정권을 잡은 독재자 프란시스 프랑코(1892∼1975)의 집권 시기 배후를 알 수 없는 신생아 납치나 강제 입양 사건이 많았다.

처음에는 독재정권의 편에 선 세력이나 그 하수인들이 공화주의 좌파 세력을 말살시키고자 좌파 정치인이나 운동가들의 아이를 몰래 병원에서 빼돌려 암매장하거나 다른 가정에 돈을 받고 팔아버리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1950년대 시작된 이런 잔악한 범죄는 좌파진영을 넘어 빈곤층 또는 동거커플 등 혼외관계에서 태어난 아기들로까지 확대됐다.

여기에는 아이들이 경제적으로 풍족하고 종교적으로 신실한 가톨릭 가정에서 자라는 것이 훨씬 낫다는 그릇된 믿음이 작용한 것으로 지적된다.

스페인의 시민단체 'SOS 도둑맞은 아기들'에 따르면 이런 조직적인 '아기 빼돌리기'에는 산부인과 의사와 간호사는 물론 가톨릭 사제와 수녀들까지 광범위하게 연루됐으며, 1987년 스페인에서 입양을 까다롭게 규제하는 법률이 시행되면서 자취를 감췄다.

1950년대부터 1980년대 후반까지 스페인에서는 이런 식으로 수만 명의 신생아가 빼돌려져 강제입양되거나 살해 후 암매장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동안 스페인에서는 독재 종식과 민주화 이후 유사한 의혹이 2천여 건이나 제기됐지만, 증거부족과 공소시효 만료 등으로 실제 재판까지 이어진 케이스는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2013년에는 피고인이 운영하는 병원에서 함께 일하며 신생아 납치에 관여했던 87세 수녀가 재판 출석을 앞두고 숨지기도 했다.

법정에 선 산부인과 의사는 "당시 출생 관련 서류를 읽지도 않고 서명한 일이 많았다"면서 무죄를 주장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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