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예진은 ‘이름값’이 확실한 배우다. ‘클래식’, ‘여름향기’, ‘내 머리 속의 지우개’, ‘연애시대’, 최근 개봉했던 ‘지금 만나러 갑니다’까지, 손예진은 영화와 드라마를 넘나들며 ‘믿고 보는 멜로 여신’으로 대중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상어’ 이후 5년만에 돌아온 안방극장에서도 손예진은 자신의 진가를 톡톡히 발휘했다. 최근 종영한 JTBC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이하 ‘예쁜 누나’)에서 윤진아 역할을 소화한 손예진은 30대 여성의 사랑, 우정, 직장생활, 가족과의 갈등까지 섬세하고 현실적인 연기로 그려내 큰 공감을 이끌어냈다. 조건 좋은 남자와 결혼시키려는 엄마의 반대에 맞서며 연하남 서준희와 예쁜 사랑을 나누는 35세의 윤진아가 왠지 세상 어딘가에 진짜 살고 있을 것 같은 기분. 손예진이 숨을 불어넣은 윤진아는 그런 깊은 공감대를 선사하며 시청자의 응원을 받았다.
‘이름값’을 꾸준히 유지하려면 그만큼의 노력이 뒤따른다. 손예진도 마찬가지다. ‘예쁜 누나’를 통해 다시 한 번 ‘멜로=손예진’ 공식을 입증시킨 그녀는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캐릭터에 몰입했고 연기에 집중했다. 상대역으로 연기호흡을 맞춘 배우 정해인은 이런 손예진에 대해 “대기실에서 나와 카메라 앞에 서기 전까지, 링 위에 올라가는 권투선수처럼 보였다. 절대 가볍지 않았고 비장함마저 느껴졌다. 매 순간에 진지하게 임하는 게 보였다”라고 말했다. 데뷔한지 18년이나 됐지만, 손예진의 연기열정은 후배를 감탄시킬 만큼 여전히 뜨겁다.
손예진은 자기 또래의 이야기인 ‘예쁜 누나’를 통해 다양한 감정을 느꼈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런데도 여전히 사랑이 뭔지, 결혼을 꼭 해야만 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단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배우로서 반짝반짝 빛나는 손예진도, 그 안에는 윤진아와 같은 30대 여성의 고민을 함께 안고 있었다.
Q. ‘예쁜 누나’가 종영하고 일주일 정도 지났는데. 이제 윤진아는 좀 떠나 보냈나?
손예진: 이것저것 하느라 바빴다. 영화 ‘협상’이 추석 개봉이라 포스터 촬영도 했고, 녹음도 했고, 드라마 촬영 때문에 못했던 행사스케줄도 소화했다. ‘예쁜 누나’는 끝났지만, 이렇게 언론 인터뷰를 하며 계속 드라마 이야기를 하니 아직도 ‘예쁜 누나’를 하고 있는 것만 같다. 어떻게 쉽게 떠나보낼 수 있겠나. 이 기분은 오래 갈 거 같다.
Q. ‘예쁜 누나’에 애정이 깊은 거 같다.
손예진: 너무 많은 감정들이 있어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 ‘예쁜 누나’는 제 또래 여자의 이야기였다. 사랑, 가족, 직장에서의 사건, 생활의 이야기였다. 모든 지점에서 생각을 많이 하게 해준 드라마다. 안판석 감독님과 함께 해서 너무 좋았다. 보통 드라마 현장이 힘들어서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이 큰데, 이 작품은 끝나 가는 게 너무 아쉬웠다. 또 끝나고 나서도 오히려 에너지가 남아있어 놀라웠다. 감정적으로도 계속 여운이 남는다.
Q. 드라마 속 윤진아-서준희(정해인 분)의 사랑에 시청자의 응원이 컸다.
손예진: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남녀가 멋있는 장소에서 멋있게 대화를 나누고 안거나 키스하는 아름다운 장면이 그려지는데, 실제 연애는 그렇지 않다. 집 앞 놀이터나 차에서 만나고, 극장에서 영화 보고, 똑같은 밥을 먹고 그런다. ‘예쁜 누나’는 그런 일상에서 주는 현실멜로를 그리고자 했다. 진짜 연인들은 어떤 대화를 하고, 어떻게 스킨십을 하나. 최대한 일상적인 사랑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래서 누구든, 한 번이라도 연애의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공감했을 거다. 많은 분들이 ‘예쁜 누나’를 보며 “나도 저랬는데”, “나도 연애하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하며 봐주신 거 같다.
Q. 윤진아는 직장여성의 고충, 나아가 직장 내 성추행 문제까지 이야기한 캐릭터다. 직장에 다녀본 경험이 없을 텐데, 어떻게 캐릭터에 접근했나?
손예진: 직장에 다녀보지는 않았지만, 주변에 직장인 친구들이 많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업무적인 스트레스도 스트레스지만, 상사나 동료, 직장 내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엄청 크더라. 회식에 가면 고기 구워야지, 상사 술잔에 술이 떨어졌나 눈치 봐야 하지, 회식 자체에 가기 싫은데 가야만 하는 무언의 압박이 있고. 직접 겪어보지 못했지만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윤진아가 운동화를 갖고 다니며 구두에서 갈아신는 장면은, 우리도 비슷하다. 하이힐을 신고 카메라 앞에 서지만, 차에 들어가면 바로 편한 신으로 갈아신는다. 그런 지점에선 공감한 부분도 있다. 진아가 회사 내 미투운동에 앞장섰다가 오히려 문제있는 여자로 몰릴 위기에 처하는 장면은 저도 충격이었다. 전 그저 연기를 했을 뿐이지만, 진아가 느꼈을 그 분노와 수치감에 저 역시 답답했다. 이게 또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더라. 소름 끼치고 무서웠다.
Q. 윤진아-서준희의 사랑에 가장 큰 걸림돌은 엄마 미연(길해연 분)이었다. 엄마의 지나친 반대가 이해할 수 없다는 의견도 많았다. 그런데 그렇게 완강하던 엄마가 마지막 회에 갑자기 딸한테 “미안하다”라고 사과했다.
손예진: 전 미연이란 엄마가 너무 이해가 갔다. 주변에 미연 같은 어머니들이 너무 많으시다. 그런 이야기들을 아주 가까이에서 듣고 간접적으로 본 적이 많다. 내 자식이 이 사람 을 만나면 행복하지 않을 거란 완벽한 확신을 갖고 하는 행동들이, 참 공포더라. 미연은 미워할 래야 미워할 수 없는, 우리 어머니들의 모습을 담고 있는 캐릭터라 생각한다. 전 마지막의 그 “미안하다”란 말이 감동적이었다. 우리 부모님들은 자식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는 게 익숙지 않은 세대다. 미연이 버선발로 나와서 떠나는 딸한테 “엄마가 미안하다”라는 말을 한 건, 여러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또 진아가 성숙해지는 또 하나의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Q. 미연-진아 모녀를 보며 여러 생각을 했나 보다.
손예진: 진아는 결국 엄마를 저버리지 않는, 정말 착한 딸이다. 그걸 보며 엄마와 딸의 관계,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 대해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부모가 자식 잘되라고 하지 미워서 그랬겠나. 근데 자식한텐 그게 공포고 고통인 거다. 미연은 행복이라 정해놓은 방향으로 자식을 끌고 가려 하고, 진아한텐 그게 행복하지 않은 길이었다. 미연의 입장에선, 엄마니까. 세상을 살아보니 이게 맞다, 싶은 명확한 잣대가 있는데 딸이 자꾸 힘든 길로 가려하니까. 그런 엄마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미연을 이해 못할 것도 없다.
Q. 만약 진아처럼, 실제 어머니가 자신의 사랑을 반대한다면 어쩌겠나.
손예진: 엄마의 반대가 있어도, 전 제 뜻대로 갈 거 같다.(웃음) 전 이미 여러 부분에서 부모님으로부터 독립을 했기 때문에, 진아와는 처한 상황이 다르다.
Q. 윤진아와 손예진, 닮은 점과 다른 점이 있다면?
손예진: 진아는 너무 착하다. 남들한테 피해를 주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혼자 삭히고 짊어지고 간다. 그래서 어느 순간 솔직하지 않게 이야기하기도 한다. 전 솔직한 편이다. 상대가 상처를 받을지언정, 전 솔직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솔직하다는 게, 어떻게 보면 이기적인 것과 한 끗 차이다. 그게 저와 진아의 다른 지점 같다. 비슷한 부분은, 나이. 그리고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거?(웃음)
Q. 윤진아는 집에서 결혼에 대한 압박을 크게 받는데, 실제 손예진은 어떤가. 나이도 같은데.
손예진: 저희 집에선 결혼에 대한 압박이 전혀 없다. 그걸 압박하시는 부모님이 아니시다. 결혼은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다. 하고 싶긴 한데, 그렇다고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은 또 없다. 결혼이 쉬운 일인가. 어떤 마음을 먹어야 결혼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너무 생각이 많아서인 거 같기도 하고.
Q. ‘예쁜 누나’를 하며, 연애관이나 결혼관에 달라진 부분이 있나?
손예진: 그건 시시때때 계속 바뀌기 때문에, 단지 이 작품으로 바뀐 건 없는 거 같다. 자유로움을 꿈꾸지만 한편으론 안정적인 것도 바란다. 그 안정이 결혼인지는 잘 모르겠다. 우리 사회에서 나이가 들면 결혼해야 한다는 통념이 있는데, 그 시기는 좀 지난 거 같기도 하고. 주변에 결혼하지 말라는 사람도 많고, 결혼해서 잘 사는 분들을 보면 행복해 보이기도 하다. 지금은 혼자 있는 게 편하고 좋기도 하고. 잘 모르겠다.(웃음)
Q. 그럼 ‘사랑’은 어떤가. 사랑에 대한 생각에 변화된 게 있나.
손예진: ‘이게 진짜 사랑이다’라고 느끼는 게 저마다 너무 다르단 걸 이번 드라마를 하면서 알게 됐다. 사랑은 서로 다 다르고, 끊임없는 이야기다. 그래서 우리가 자꾸 사랑 이야기를 하고, 드라마나 영화로 보나보다. 우리 인생에서 너무 중요한 게 사랑이다. 그건 남녀간의 사랑 뿐만 아니라 부모 자식, 친구, 모든 인간 관계에서 나온다. 무조건 적인 사랑일 수도 있고, 어느 한 쪽이 더 큰 사랑일 수도 있고, 이 모든 게 얽히고설킨 이야기다.
→스브수다②에서 계속.
[사진제공=엠에스팀엔터테인먼트]
(SBS funE 강선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