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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조치로 체포돼 다른 범죄로 유죄 확정, 재심해야" 첫 결정

박원경 기자

입력 : 2018.05.03 11:00|수정 : 2018.05.03 11:00


유신체제 당시 긴급조치 9호에 따라 영장 없이 체포·구금됐다가 긴급조치 위반이 아닌 다른 범죄로 재판에 넘겨져 유죄를 확정받은 경우에도 재심사유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첫 결정이 나왔습니다.

그동안 대법원은 긴급조치위반죄로 유죄가 확정된 경우에만 재심을 허용했는데, 긴급조치로 영장 없이 체포됐다가 다른 범죄로 유죄가 확정된 경우에도 재심사유에 해당한다고 처음 판단한 겁니다.

대법원 2부(주심 고영한 대법관)는 검찰이 서울고법의 재심 결정을 취소해달라며 낸 재심 인용 결정 재항고 사건에서 검찰의 항고를 기각하고 재심 결정을 확정했다고 밝혔습니다.

재판부는 "당시 법령에 따른 행위라도 그 법령 자체가 원시적으로 위헌이라면 그 수사에 기초해 공소제기에 따른 유죄 확정판결에는 경찰이 불법체포감금죄를 범한 경우와 같은 중대한 하자가 있다고 봐야 한다"며 재심 결정을 한 원심의 판단이 옳다고 봤습니다.

최 모씨는 1979년 7월 긴급조치 9호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영장 없이 체포돼 9일 동안 구금상태로 수사를 받았습니다.

경찰은 최씨를 긴급조치위반죄뿐만 아니라 반공법위반과 사기, 업무상횡령 등 다른 혐의도 적용해 재판에 넘겼습니다.

당시 법원은 재판이 진행되던 도중 긴급조치 9호가 해제되자 긴급조치위반죄에 대해 면소를 선고하고, 나머지 혐의는 유죄를 확정했습니다.

대법원은 2013년 4월 긴급조치 9호가 위헌이라고 판단했고, 이후 사망한 최씨를 대신해 아들이 서울고법에 재심을 청구했습니다.

서울고법 재판에선 경찰이 당시 법령에 따라 체포·구금한 경우에도 재심사유에 해당하는지가 쟁점이 됐습니다.

형사소송법은 경찰이 수사 등 직무와 관련해 죄를 저지른 것이 확정판결로 입증될 경우 재심사유가 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씨를 수사한 경찰이 불법을 저질렀다는 확정판결을 받지는 않았기 때문에 법원 판단에 관심이 쏠렸습니다.

서울고법은 "경찰관들이 영장 없이 체포, 구금한 것을 처벌할 수는 없지만, 불법체포·감금죄의 구성요건에는 해당한다"며 재심개시를 결정했습니다.

최씨를 체포·구금한 경찰을 처벌할 수는 없어도 죄를 범한 것으로는 인정되는 만큼 '확정판결에 의해 유죄가 증명된 때'로 봐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검찰은 "경찰의 행위는 당시의 유효한 법령에 따른 것일 뿐 직권을 남용한 것이 아니므로 불법체포감금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대법원에 재항고했습니다.

하지만, 대법원은 "중대한 하자가 존재하는데도 단지 위헌적인 법령이 존재했다는 이유만으로 그 하자를 바로잡는 것을 거부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검찰의 항고를 기각했습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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