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뉴스

뉴스 > 정치

[취재파일] 북·미 대화 타진에 美 싸늘…평창 이후는?

남승모 기자

입력 : 2018.02.04 13:34|수정 : 2018.02.04 16:51


문재인 대통령이 2일밤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30분 간 통화했습니다. 평창동계올림픽 개회를 일주일 앞두고 대회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기 위한 양국 간 협력을 확인하는 자리였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3, 4주 전만해도 많은 국가들이 평창올림픽 참가를 두려워하면서 참가 취소를 검토했지만 지금은 참가에 아무런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면서 올림픽 성공과 안전을 기원하며 100% 한국과 함께 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 명분은 '평창', 본론은 '북·미 대화'

하지만 2일밤 한미 정상통화의 핵심은 평창이 아니었습니다. 사실 평창 올림픽에 관한 한 한·미 사이에 별다른 이견이 있을 리 없습니다. 굳이 조율이나 공유가 필요하다면 북한 참가 문제 정도일까요? 실제로도 그날 밤 통화에서 언론의 관심을 끈 건 문 대통령의 다음과 같은 발언이었습니다.

"문 대통령은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한 남북대화 개선의 모멘텀이 향후 지속되어 한반도 평화 정착에 기여하기를 희망한다고 했고 펜스 부통령 방한이 이를 위한 중요한 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외교적 표현이다 보니 무슨 얘기인지 좀 애매합니다. 풀어보겠습니다. <평창 올림픽을 계기로 남북대화의 물꼬가 트였다. 이 기회를 북한 비핵화 같은 한반도 평화 정착 방안 논의로 이어가고 싶다. 펜스 부통령도 방한 때 중요한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중요한 역할>은 뭘까요? 네, 북·미 대화 정도가 아닐까 합니다. "대화"라는 말을 직접 쓰지는 않았지만 평창을 계기로 북·미가 마주 앉는 자리가 마련되길 희망한다는 겁니다.

● 靑, 북·미 대화 가능성 다각도로 타진

청와대는 그간 여러 채널을 통해 미국이 북·미 대화에 나설 의향이 있는지 다각도로 타진을 해왔습니다. 최종건 군비통제비서관의 최근 방미 역시 이런 차원이었습니다. 청와대는 민간이 포함된 1.5트랙으로 정부 간 만남은 아니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지만 이 또한 '정부 대 정부'라는 부담을 줄이면서 미국의 속내를 타진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최 비서관 방미 직후 한 여권 관계자는 "현재 한·미 군사훈련이 4월로 예정돼 있으니까 그 안에 뭔가 북·미대화 채널이 열리지 않으면 군사훈련을 해야 한다. 훈련 문제로 한미 간에 갈등이 불거지면 문제가 복잡해지니까 불가피한 수순일 거다. 하지만 군사훈련이 시작되면 북한 반발은 뻔하다. 그러면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갈 수 있다. 그러니까 정부에서는 어떻게든 북·미 대화 채널을 열려고 노력하는 거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또 이 문제는 장관이나 차관 선에서 의사타진을 해볼 수는 있지만 결론이 날 수 없는 문제로 결국 청와대와 백악관이 답을 내야 하고 그건 대통령이 직접 나서야 한다는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2일밤 정상 통화는 바로 이런 차원에서, 즉 대통령이 직접 나서 미국 측에 북·미 대화에 나설 의사가 있는지 타진한 걸로 해석됩니다.도널드 트럼프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트럼프, '펜스 역할론'에 無반응

이쯤 되면 트럼프 대통령의 반응이 궁금해집니다. 문 대통령의 이런 제안에 대해 한때 트럼프 대통령이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는, 상당히 고무적인 보도가 나왔습니다. 하지만 우리 희망이 너무 섞인 것이었던 걸까요? 확인 결과, 트럼프 대통령은 문 대통령 발언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걸로 나타났습니다.

이런 분위기는 얼마 안 돼 펜스 부통령의 발언으로도 확인됐습니다. 펜스 부통령은 현지시간으로 2일 펜실베이니아 피츠버그에서 열린 '미국 우선주의 정책' 관련 행사에서 평창 동계올림픽 참석에 대해 "전략적 인내의 시대는 끝났다는 간단명료한 메시지를 전달하러 가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북한이 탄도 미사일 실험을 계속하고 미국을 위협할 때, 우리는 모든 옵션이 테이블 위에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할 것"이라며 "북한이 완전히 그리고 영원히 핵과 탄도 미사일 프로그램을 포기할 때까지 우리는 모든 경제적, 외교적 압력을 가하는 일에 힘을 쏟을 것이라는 것을 확신해도 좋다"고 강조했습니다.

● '주사위는 던져졌다'…평창 이후는?

이제 이번 주말이면 평창 올림픽이 열립니다. 북한 선수단 참가로 평화 올림픽에 걸맞은 축제가 될 걸로 보입니다. 평창 올림픽까지는 모든 게 순조로워 보이니 일단 다행입니다. 하지만 이후가 걱정입니다. 평창을 계기로 남북 간 대화의 물꼬를 트는 데는 성공했지만 북·미 간 대화, 나아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로 연결 시킬 만한 접점은 보이지 않습니다.

다만 평창 덕에 남북 채널이 복원된 만큼 북핵 문제에 있어서 한국이 소외되는 이른바 '코리아 패싱' 위험은 상당 부분 줄일 수 있을 걸로 보입니다. 남북 채널이 있어야 북핵 문제 논의 때 우리 입지도 생긴다는 건 경험을 통해 어느 정도 확인된 일입니다. 문제는 평창 이후에도 이 채널을 유지시킬 수 있느냐입니다.

물론 북핵 문제에서도 올림픽만큼이나 드라마 같은 일들이 생기지 말란 법은 없습니다. 미국의 싸늘한 반응에도 실낱 같은 희망을 걸어보는 이유입니다. 혹시나 미국의 지금 태도가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기 위한 '나쁜 경찰' 역할의 차원이라면 기대를 걸어볼 수도 있습니다. 평창 올림픽이란 주사위는 던져졌고 이제 선수들은 물론 정부도 그간 갈고 닦은 기량(?)을 발휘할 때입니다.
SBS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