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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 스포츠센터 파면 팔수록 곳곳 '뇌관'…참사 이유 있었다

유영규 기자

입력 : 2017.12.26 15:16|수정 : 2017.12.26 15:58


29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제천 스포츠센터는 곳곳에 설치된 뇌관만 작동하면 언제든 터질 수 있었던 '시한폭탄'이었습니다.

뇌관은 한두 개가 아니었습니다.

20여 일 전 이뤄진 소방안전 점검 때 지적된 것만 무려 29개 항목 66곳이나 됩니다.

1층 출입구와 지하실의 스프링클러 고장, 화재 감지기 이상, 완강기 부족, 방화셔터 작동 불량 등이 주요 문제점으로 꼽혔습니다.

한마디로 '부실 복합세트'였던 것입니다.

수십 명의 인명피해를 낸 화재 당시 생존자들은 건물 내 일부 스프링클러가 작동하지 않았다고 증언했습니다.

소방점검 후 제때 설비를 보완했더라면 이번처럼 큰 인명피해는 없었을 것이라는 비난이 쏟아지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다.

완강기는 불이 났을 때 몸에 밧줄을 매고 높은 층에서 땅으로 천천히 내려갈 수 있는 필수 소방설비니입니다.

소방시설법에는 지상 3층부터 모든 층에 완강기를 설치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습니다.

설치 개수는 층별로 1개입니다.

지난 21일 불이 난 제천 스포츠센터는 9층이지만 완강기는 3층과 5층, 8층 3곳에만 설치돼 있습니다.

완강기가 없는 층에는 '양방향 피난계단'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건물 일부 층에는 한쪽으로만 난 계단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습다.

방화셔터는 불이 건물 전체로 번지는 것을 막는 설비로, 건설교통부령상 연면적 1천㎡가 넘는 건축물은 설치 대상입니다.

3천813.59㎡의 이 스포츠센터에도 방화셔터는 설치돼 있지만 6층의 방화셔터는 작동 불량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건설교통부가 고시한 '자동 방화셔터 및 방화문 기준'에 따르면 방화셔터는 화재 발생 시 연기 감지기에 의한 일부 폐쇄와 열 감지기에 의한 완전 폐쇄가 가능해야 합니다.

불이 나면 연기·유독가스가 먼저 번지기 때문에 대피할 수 있도록 일정 시간 열려 있다가 불이 확산할 경우 완전히 닫혀야 합니다.

그러나 스포츠센터 6층의 방화셔터는 연기 감지기만 작동해도 완전히 폐쇄되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5층 방화셔터도 작동 불량이었습니다.

29명의 희생자 중 9명이 6∼8층에서 목숨을 잃은 것은 방화셔터가 완전히 닫히며 아래층으로 대피하지 못한 데 따른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옵니다.

제천 스포츠센터는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가 있는 특정 소방 대상물로, 건물 내에는 모두 356개의 스프링클러가 설치돼 있습다.

그러나 화마가 이 스포츠센터를 휘감은 지난 21일 최초 발화 지점인 1층 스프링클러가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고장이 나서가 아니라 배관에서 물이 새자 일부러 알람 밸브를 잠가 놓은 것으로 확인되면서 경찰은 건물주를 체포했고 소방시설 점검 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섰습니다.

소화기는 내구연한 10년이 넘었다고 해서 사용할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소방산업기술원에 성능 확인을 의뢰하고 사용 가능할 경우 1회에 한해 3년 더 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스포츠센터는 내구연한이 지난 소화기를 속이 텅 빈 상태로 방치했습니다.

건물주 이 모(53)씨는 지난 21일 1층 주차장에서 불을 끄겠다며 소화기 3개를 들고 우왕좌왕했으나 모두 텅텅 비어있었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스포츠센터 2층 여탕에서 비상계단으로 이어지는 통로에는 목욕바구니가 올려진 철제 선반으로 막혀 있었습다.

소방안전 점검업체는 지난달 30일 이 센터를 점검했으나 직원 모두 남자라 2층 여성 사우나에는 들어가지 못했다고 합니다.

허술하기 짝이 없는 점검이었습니다.

이들은 내부를 점검하지 않고 직원들 얘기만 듣는 데 그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소방점검이 제대로 이뤄져 비상구의 불법 구조물 설치 등이 확인됐고, 시정이 이뤄졌다면 참사를 막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바닥 면적이 1천㎡ 이상인 건물에는 연기를 빼는 기능의 제연 설비가 설치돼야 합니다.

하지만 이 스포츠센터는 바닥 면적이 639.12㎡인 탓에 설치 의무가 없습다.

게다가 당국의 허가 없이 무허가 증축이 이뤄지고 용도까지 변경한 불법투성이 건축물인 탓에 연기와 유독가스가 더더욱 배출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합동감식팀은 불이 난 뒤 아크릴로 덮인 81.31㎡의 8층 테라스와 아크릴·천막 재질의 지붕이 덮인 53.25㎡의 9층 테라스가 불법 증축된 점을 확인했습니다.

사방이 트여 있어야 할 8, 9층에 아크릴과 천막으로 뒤덮인 테라스가 설치된 탓에 연기와 유독가스가 제대로 빠져나가지 못해 인명피해가 컸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제천 스포츠센터는 지난 8월 현 건물주에게 매각되기 전까지 전 건물주의 아들이 소방 안전관리를 담당했습니다.

이른바 '셀프 점검'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작년 8월 제천소방서에 제출된 이 건물 소방안전보고서에는 소화기 충전 필요, 비상 조명등 교체 등 경미한 사안만 지적돼 있습니다.

피난시설 간이 완강기, 경보시설, 스프링클러 등 주요 소방설비는 대부분 이상이 없는 것으로 표시됐습니다.

지난 8월 경매로 이 건물을 인수한 이 씨는 소방 안전점검을 외부 업체에 맡겼습니다.

이 업체는 지난달 30일 소방점검 때 중대 하자인 보조 펌프 고장, 스프링클러 고장, 방화셔터 작동 불량 등을 지적했습니다.

전 건물주가 철저하게 소방점검을 해 문제점을 제때 시정했다면 이번 화재 참사를 막을 수 있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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