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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심한 언어 사용이 목숨 구한다…핀란드인들의 '금기어'

하대석 기자

입력 : 2017.12.20 20:30|수정 : 2017.12.20 20:30



자살이
‘금기어’인
핀란드한국에서 핀란드로
이주한 직후였습니다.

친구의 죽음으로
힘들어하는 이웃이 있었습니다.저는 이웃을 위로하고자
이렇게 물었습니다.

“친구가 어떻게
세상을 떠났나요…?”
“….”

(못 들은 건가?)

“어떻게 된 거라고요?”
“그냥…. 죽었어요.”

그제야 이 생각이 들더군요.
‘자살이 아닐까’ 하고요.

이주한 지 18년이 된 지금은 압니다.
핀란드인은 ‘자살’이란 단어를
입에 올리지 않는다는 걸요.
핀란드는 우중충한 날씨와
낮은 인구밀도로 인한 고립감으로
자살률이 높습니다.
주위 핀란드인을 보면
가족 중 보통 한두 명은
‘자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자살이 드문 일이 아니지만
사람들은 이 단어를
함부로 입에 올리지 않습니다.
SNS에도 마찬가집니다.

‘자살’이라는 단어가
올라온 걸 본 적 없습니다.
뉴스는 어떨까요?

이렇게 간단히 나옵니다.

“유명인 ㅇㅇㅇ이 사망했다.”자살이라는 단어를 쓰지도 않습니다.

“병과 관련되지 않았다”는 문장으로
자살이란 걸 짐작할 뿐입니다.자살 방법도 다루지 않고,

우후죽순 나올법한
후속 보도도 찾아보기 힘듭니다.
이렇듯 ‘자살’은
핀란드에서 ‘죽은 단어’로
여겨지는 것 같습니다.

- 이보영(50) 씨 / 핀란드 거주한때 핀란드 자살률은
세계 최고 수준이었습니다.


1990년 핀란드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 당 30.2명이었습니다.

유럽연합(EU) 평균의 두 배였습니다.고민 끝에 핀란드 정부는
1992년 세계 최초로
국가 차원의 자살예방 프로그램을 도입합니다.우울증 환자를 적극적으로 치료하고,
병원을 방문하는 모든 환자에게
심리검사를 해
혹시 모를 위험을 파악했습니다.
언론에도 책임이 있다고 본
핀란드 정부는

보도 가이드라인을 수립해
자살 보도 자제를 요청했습니다.그렇게 1990년대 초반 정점을 찍었던
핀란드 자살률은
2014년 10만 명 당 14.6명으로
절반 수준으로 감소했습니다.핀란드 정부의
자살예방 프로그램은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꼽힙니다.“자살 사건이 발생했을 때,
핀란드처럼 보도를 자제하고
대화 주제로 삼지 않는 것만으로도

모방 자살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송인한 교수 /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하지만 자살을 예방하기 위한
건강한 소통은 오히려 권장합니다.

“자살 위험이 있는 사람과
문제를 터놓고 이를 해결하는 분위기는
필요합니다.”

-송인한 교수 /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언론과 사회 구성원의 
세심한 언어 사용이
누군가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는 걸
핀란드는 보여줍니다.

더 이상의 아픈 일은
우리가 막을 수 있습니다.
핀란드에서 '자살'은 '금기어'입니다. 국민들도 '자살'을 입에 올리지 않고, 언론도 '자살보도'를 자제합니다. 핀란드는 이렇게 국민 자살률을 크게 낮췄습니다.

기획 하대석, 권수연 / 그래픽 김민정

(SBS 스브스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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