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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점원 없는 매장' 실험, 우리는 어디까지 왔나?

곽상은 기자

입력 : 2017.10.31 12:40|수정 : 2017.10.31 12:42


2000년대 중반쯤 됐을까요? 일본 오사카를 처음 갔을 때 라면가게마다 설치된 무인결제 단말기를 보고 낯설어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로부터 10여 년, 이제 한국의 음식점들에서도 드물지 않게 무인결제 단말기를 볼 수 있습니다. 일본식 라면집은 물론 각종 패스트푸드 매장과 저렴한 가격을 내세운 음식점들에선 더는 낯선 풍경이 아닙니다. 익숙하게 척척 주문을 하는 손님도 있고, 주방 쪽 직원에게 이것저것 물은 뒤 단말기를 누르는 손님도 있지만, 대부분 큰 불편 없이 주문을 마칩니다.

식당에서 주문과 결제를 ‘단말기’에 맡기고 음식 나르는 일을 ‘셀프 서비스’로 전환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경영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거죠. 기술의 발전은 음식점 사업의 비용 요소들 가운데 주문과 결제를 담당하는 직원의 인건비를 대체할 기술을 가장 먼저 상용화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그 변화는 이제 무인결제 시스템을 넘어 무인점포 실험으로 확산하고 있습니다.

국내 무인점포 실험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편의점 업계입니다. 무인 빨래방, 무인 노래방, 무인 뽑기방, 무인 주유소 등 상주직원이 없는 매장은 많습니다만, 이 업체들은 주문과 결제가 비교적 단순해 단말기 혹은 그에 상응하는 기계장치로 쉽게 대체할 수 있다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편의점 사업은 좀 다르죠.

다루는 상품 수가 비교할 수도 없이 많아 자판기 형태로 쉽게 대체할 수 없는데다 1+1, 묶음판매 등 가격정책도 다양합니다. 술과 담배는 성인인지를 확인한 뒤에야 팔 수 있다는 제약도 있고, 자판기 매장이 아니라는 점에서 도난에 쉽게 노출될 수 있다는 보안상의 문제도 안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업계에서 무인점포 실험이 한창입니다.
세븐일레븐 시그니처점 무인편의점 (사진=연합뉴스)지난 5월 문을 연 국내 첫 무인 편의점 세븐일레븐 시그니처 1호점은 ‘핸드페이(Hand Pay)’ 방식을 도입했습니다. 매장을 이용하려는 사람은 신원확인 절차를 거친 뒤 자신의 신용카드 정보와 손바닥 정맥 정보를 등록하면 이후 매장 출입과 결제를 손바닥으로 할 수 있는, 일종의 생체정보 이용 결제방식입니다. 초기에는 해당 건물에 입주한 기업의 직원들만 이 매장을 이용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이런 절차를 거친 일반인들도 매장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낮 시간대 평범한 (유인)편의점으로 운영되는 이마트24 성수백영점은 지난달부터 심야시간대 무인점포로 변신하는 실험에 돌입했습니다. 밤 11시 직원들이 매장의 문을 잠그고 퇴근하면 이후 아침 6시까지 손님들은 자신의 신용카드를 이용해 매장을 출입하고 물건을 스스로 결제해야 합니다. 심야시간대 손님 가운데는 주변 사무실에서 야근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무인점포를 체험하고 싶어 일부러 찾아왔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아무도 이용 상의 불편함을 느끼지는 않는 듯 보였습니다.

이런 편의점들의 도전이 신선하기는 하지만 아직은 갈 길이 멉니다. 세븐일레븐 무인점포의 경우 아직은 낯선 핸드페이나 특정 간편결제시스템 혹은 교통카드로만 결제가 된다는 점에서 이용에 제약이 있었습니다. 매장 뒤 작은 사무실에 상주직원들이 있어 고객이 술을 살 때마다 직원이 직접 나와 계산을 해야 했고, 무엇보다 핸드페이 등록을 담당하는 카드사 직원이 매장 앞을 지키고 있어야 해서, 현재로는 일반 점포보다 운영의 효율성도 높지 않아 보였습니다.

이마트24 무인점포는 일반 신용카드로 출입과 결제가 이뤄진다는 점에서 편의성이 한결 높기는 했지만, 실제 직원이 없는 심야시간대에는 편의점의 주력상품인 술과 담배 구입이 불가능한데다 누군가 남의 카드를 몰래 이용할 경우엔 도난 가능성에도 취약점이 있어 보였습니다.

물론 해당 기업들도 이런 문제점들을 모르는 건 아닙니다. 두 매장은 모두 본사가 직영하는 점포들로 지금 당장 해당 매장들에서 이익을 거두려는 목적이 아니라 무인점포의 가능성과 기술을 연구하고 고객 반응을 알아보기 위해 설치한 매장들이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험을 계속해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아직은 부족한 점들이 적지 않지만 해당 기업들이 실험을 멈출 수 없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세계 시장에서 무인 편의점 경쟁이 이미 치열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건 아마도 미국의 전자상거래업체 아마존이 만든 오프라인 식료품 매장, ‘아마존 고(Amazon Go)’일 겁니다. 지난해 말 미국 시애틀에 문을 연 이 매장엔 계산원은 물론 셀프 계산대도 없습니다. 소비자가 아마존 고 앱을 켠 채 매장에 들어가 마음껏 물건을 골라 나오면 쇼핑은 끝납니다.

아마존은 광고를 통해 강조합니다. “계산대 앞에 줄을 서지 마세요, 값을 지불하고 나갈 필요도 없습니다!”  손님이 직접 계산과 결제를 해야 하는 국내 무인 편의점들보다 한층 더 혁명적인 변화입니다. 물론 아직 상용화된 것은 아니며 미국에서도 아마존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테스트 매장만 있을 뿐입니다. 다만 그 실험이 끝나는 시점엔 아마존이 빠른 속도로 미국의 오프라인 식료품 매장 시장을 잠식해 나갈 것이라고 많은 전문가들은 예상합니다.

미국뿐 아닙니다. 인공지능, 사물 인터넷, 생체정보 활용기술 등 이른바 4차 산업 영역에서 미국을 부지런히 쫓아가고 있는 중국에선 무인 편의점이 상용화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물론 아마존 고 같은 형태는 아니지만 상주직원이 없는 편의점을 선보인 기업이 7곳이나 되고 이 업체들은 일부 단점에도 불구하고 가격경쟁력을 내세워 매장을 확대해 나가는 중이라고 합니다.

이제 막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국내 편의점 업계의 무인점포 실험은 이른바 4차 산업의 발전이라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에다 최저임금 상승의 영향까지 더해지면서 더욱 속도를 높여갈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래도 사람이 있는 게 편하지‘ 생각하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취재과정에서 만난 무인점포의 한 업주 분이 해 준 얘기도 귀담아 들을 만합니다. “요즘 20대들은 다른 사람에게 이런저런 설명을 하지 않고도 자신이 원하는 걸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무인점포를 더 선호하는 것 같더라.”

소비자의 취향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과도한 공포심이나 안일한 낙관론 대신 국가 차원에서 꼼꼼하고 선제적인 대처가 필요합니다. 미래의 산업은 어떻게 변할 것인가, 그 속에서 우리 기업들은 어떻게 경쟁력을 확보할 것인가, 무엇보다 그 과정에서 일자리를 잃는 사람들을 위해선 어떤 정책과 대안이 마련돼야 하는가? 무인점포 실험을 목격하는 우리들에게 주어진 과제입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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