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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북부 2개주 자치권확대 주민투표, 압도적 가결…'빅뱅' 신호탄

입력 : 2017.10.24 01:39|수정 : 2017.10.24 01:39


이탈리아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30%를 차지하는 부유한 지역인 북부 2개 주가 재정 통제권을 비롯한 핵심 정책에 대한 지방 정부의 권한 강화를 요구하며 실시한 주민투표가 압도적 찬성으로 가결됐다.

이번 주민투표가 비록 법적 구속력은 없으나, 주민투표를 계기로 다른 지역도 앞다퉈 자치권확대 요구에 나설 것으로 보여 중앙 정부의 권위 약화의 신호탄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밀라노가 속한 롬바르디아 주와 베네치아, 베로나 등이 포함된 베네토 주는 22일(이하 현지시간) 재정 통제권과 치안, 이민, 교육, 보건, 환경 등 핵심 행정에 있어 더 많은 지역 권한이 필요한지를 묻는 주민투표를 나란히 실시했다.

23일 발표된 투표 최종 집계에서 베네토 주의 경우 투표율이 57.2%로 나타나 참여가 예상보다 뜨거웠던 것으로 나타났다.

베네토 주는 투표율이 50%를 넘으면 주민투표의 효력이 인정된다.

주 정부에 대한 해킹 공격으로 공식적인 집계가 다소 늦어진 가운데 베네토 주 투표자의 98.1%가 찬성표를 던진 것으로 나타났다.

최소 투표율 규정이 없는 롬바르디아 주의 경우에는 최종 투표율이 38.5%로 나와, 로베르토 마로니 주지사가 당초 목표로 밝힌 34%를 훌쩍 뛰어넘었다. 찬성 응답은 95%에 달했다.

두 지역의 주지사는 압도적인 지지로 주민투표가 통과됐다며 승리를 선언했다.

루카 자이아 베네토 주지사는 이번 투표 결과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것과 같은 '빅뱅'이라고 지칭하며 "우리의 텃밭에서 이뤄지는 일은 우리가 권한을 가져야 한다는 인식을 모든 사람이 지지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마로니 롬바르디아 주지사는 "진정한 자치권을 얻기 위해 롬바르디아 주민 수백만 명이 부여한 이 역사적인 권한을 이행할 중요한 책무가 내게 있다"며 "이탈리아 통합의 틀 안에서 더 많은 권한과 재원을 중앙 정부에 요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두 지역의 주지사는 이번 주민투표 결과를 내세워 지역에서 거두는 세수를 중앙 정부에 덜 보내는 방안을 비롯해 더 많은 자치권을 요구하는 협상을 중앙 정부를 상대로 즉각 개시할 방침이다.

이탈리아 GDP의 각각 20%, 10%를 기여하는 롬바르디아와 베네토는 반(反)이민, 반유럽연합(EU) 성향의 극우정당 북부동맹(LN) 소속 주지사의 통치를 받는 곳이다.

LN은 창당 초기 당론인 북부의 분리 독립을 더이상 주장하고 있지 않지만, 부유한 북부가 낙후된 남부를 일방적으로 지원하며 피해를 보고 있다는 인식 아래 끊임없이 자치권 강화를 요구해왔다.

이런 분위기 속에 마로니 주지사와 자이아 주지사는 자신들의 지역에서 중앙 정부로 흘러들어 가는 막대한 세수 분담금에 상응하는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지역 주민들의 불만을 대변해 이번 주민투표를 밀어붙였다.

이들은 이번 주민투표 결과를 지렛대 삼아 중앙 정부에 대한 이 같은 기여분을 대폭 줄이길 원하고 있다.

롬바르디아 주의 경우 중앙 정부에서 공공 지출 등의 명목으로 돌려받는 돈에 비해 현재 연간 약 540억 유로, 베네토 주는 약 155억 유로를 더 부담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당장 자이아 주지사는 이날 주의회를 소집, 베네토에서 거둬들이는 세수의 90%는 중앙정부에 보내지 않고, 주 정부의 통제권 아래 두는 방안을 요구할 작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GDP의 130%를 상회하는 막대한 부채로 신음하고 있는 이탈리아 정부로서는 롬바르디아와 베네토 주의 이 같은 요구를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자치권 확대 열망이 드러난 두 지역과의 협상에 응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도, 세수 분담 문제는 협상 주제에 포함되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이번 주민투표가 5천500만 유로의 예산을 낭비하는 불필요한 행위라고 비판해온 마우리치오 마르티네 농림부 장관은 이날 발행된 일간 라 푸블리카와의 인터뷰에서 "두 지역과의 협상에 세금 문제는 들어 있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한편, 이번 주민투표는 카탈루냐처럼 분리 독립 투표가 아니라, 정부의 승인 아래 자치권확대를 놓고 치른 것인데다 투표 결과 역시 법적인 구속력 없이 단순히 권고적인 성격만을 띠고 있다.

그럼에도, 이번 투표는 이탈리아와 유럽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란 분석이다.

프랑스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리구리아 주 역시 현재 자치권확대를 꾀하는 비슷한 주민투표를 검토하고 있고, 산업이 발달한 부유한 북부 지역 에밀리아 로마냐 주 역시 지방 정부의 권한 강화를 요구하고 있어, 이번 주민투표는 지방 정부의 목소리를 키우는 동시에 중앙 정부의 권위가 본격적으로 도전받는 계기로 작용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망된다.

이탈리아 경제학자인 로렌초 코도뇨는 AFP통신에 "이탈리아의 통합이 위협을 받지는 않겠지만, 지방 정부의 자치권확대라는 의제는 향후 더 확산할 가능성이 크다"며 "결국 이 문제는 차기 정부에서 전반적으로 논의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 분석가인 스테파노 폴리는 "잘사는 북부와 낙후된 남부 간 분열에 기반한 이번 주민투표로 19세기 이탈리아의 통일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뿌리 깊은 남북 갈등이 증폭될 소지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번 주민투표는 또한 최근 몇 년 동안 유럽 전역에서 일고 있는 지역의 자치권 강화 요구와 같은 맥락에 놓여 있다는 점에서 파편화·고립화로 나아가고 있는 유럽의 현재 기류를 반영하는 동시에 역내 불안감을 더하는 요소가 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제학자 코도뇨는 "이번 북부 2개주 주민투표는 포퓰리즘 물결에 이어 유럽이 이제 지역주의 물결이라는 또 다른 조류에 직면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이는 유럽의 통합을 더 어렵게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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