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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컬링, 뉴질랜드서 밝아진 메달 전망과 드러난 약점

이정찬 기자

입력 : 2017.09.05 10:38|수정 : 2017.09.05 15:27


컬링 믹스더블(혼성 2인조) 대표팀이 뉴질랜드 윈터게임을 4위로 마치고 지난 1일 돌아왔습니다. 평창 올림픽에서 한국 컬링 사상 첫 메달에 도전하는 대표팀의 이기정과 장혜지는 "가능성과 한계를 확인했다"고 대회를 평가했습니다. 메달 전망은 분명 밝아지고 있습니다. 이제 남은 시간은 다섯 달. 박차를 가해야 할 때입니다.  
뉴질랜드 윈터게임에서 평창 올림픽 본선행을 확정한 강팀을 연거푸 꺾고 메달 가능성을 키운 믹스 더블 대표팀● 가능성 1. 강호 노르웨이 상대 세계선수권 복수 성공

이기정과 장혜지는 지난 4월 세계선수권에서 조별리그부터 16강전까지 8연승을 달렸습니다. 8강에서 중국에 진 뒤 패자전으로 밀렸는데 5, 6위전에서 노르웨이를 만났습니다. 유종의 미를 거두길 바랐지만 크리스틴 스카슬리엔(여)과 마그누스 네드레고튼(남)에게 2대 9로 완패했습니다. 스키슬리엔과 네드레고튼은 2013년부터 노르웨이 대표로 꾸준히 세계선수권 대회 상위권을 지킨 강팀입니다. 최고 성적은 2015년 3위입니다. 

국제 대회 점수 세계 6위로 평창 올림픽 진출권을 따낸 노르웨이는 이기정과 장혜지가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려면 반드시 이겨야 하는 상대로 꼽힙니다. 두 팀은 뉴질랜드 윈터게임 B조 2차전에서 세계선수권 이후 4개월 만에 격돌했습니다. 결과는 대한민국의 8대 0 완승이었습니다. 장혜지는 "세계선수권에서 한 번 경기를 해봤기 때문에 이번에는 조금 더 자신 있게 할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믹스 더블 대표팀은 이번 뉴질랜드 윈터게임 조별예선에서 노르웨이를 꺾고 세계선수권에서 당한 패배를 설욕했다.● 가능성 2. '세계 챔피언' 스위스 누르고 승승장구

세계선수권 복수에 성공한 대표팀은 상승세를 제대로 탔습니다. 홈팀 뉴질랜드, 스페인 등을 꺾으며 5연승을 달렸습니다. 하이라이트는 6차전이었습니다. 상대는 2017 세계선수권 챔피언 스위스였습니다. 접전이었습니다. 역전에 역전이 거듭되는 팽팽한 승부, 6엔드 한국이 6대 5로 다시 한번 전세를 뒤집어 한 점 앞서나가자 스위스가 이어진 7엔드에서 파워플레이로 승부를 걸어 또 역전했습니다.

6대 7. 한 점 뒤진 마지막 8엔드, 대표팀은 아껴두었던 파워플레이 기회를 썼고, 두 점을 내 8대 7 짜릿한 역전승을 거뒀습니다. 조별리그 6연승, B조 1위를 확정했습니다. 지난 세계선수권에서 세계 3위 중국을 꺾은 데 이어, 이번 뉴질랜드 윈터게임에서 세계 2위 스위스를 꺾으며 대표팀은 평창에 대한 기대를 높였습니다. 이기정은 "올림픽에서 다시 만나도 이길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며 웃었습니다.
대표팀은 이번 대회에서 지난 세계 선수권 우승팀 스위스를 꺾고 조별리그 1위를 확정했다. 사진은 지난 세계선수권 우승트로피를 든 스위스 대표팀● 가능성 3. 조별리그 무패행진, 토너먼트 진출

이기정과 장혜지는 이제 호흡을 맞춘 지 3년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기세가 대단합니다. 처음 출전한 2016년 세계선수권에서 한국 컬링 사상 처음으로 16강에 오르더니 지난 세계선수권에서는 조별리그 7전 전승으로 조별라운드를 통과하며 다시 한 번 역사를 썼습니다. 대표팀은 이번 뉴질랜드 윈터게임에서도 조별 라운드 7전 전승을 기록했습니다. 평창 올림픽은 전 세계 상위 7개 팀과 개최국 한국이 풀리그를 펼쳐 4강 진출 팀을 가립니다.

예선 라운드에서 최소 4승 3패를 해야 4강에 오를 수 있는데, 한국은 세계선수권에 이어 이번 대회에서도 조별리그에서 강한 모습을 보여 평창 올림픽 4강 진출 가능성을 키웠습니다. 세계랭킹에선 한국이 참가팀 가운데 가장 순위가 낮지만 이 가운데 3팀(중국, 스위스, 노르웨이)을 상대로 이겨봤고, 미국과는 지난달 경북 의성에서 합동 훈련을 하며 승리 자신감을 쌓았습니다. 

● 한계 1. 다시 드러난 토너먼트 승부 약점, 이긴 팀에 지다

한계도 명확히 드러났습니다. 조별리그에서의 상승세를 토너먼트까지 이어가지 못한 점이 가장 아쉬웠습니다. 대표팀은 윈터게임에서 1위로 준결승에 직행하고도, 6강전을 치르고 올라온 에스토니아에 5대 8로 졌습니다. 동메달 결정전은 더 큰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조별리그에서 8대 0으로 완파한 노르웨이를 만났는데 이번엔 2대 10으로 크게 지고 말았습니다. 대표팀은 지난 4월 세계선수권에서도 조별리그에서 꺾은 상대, 중국을 8강에서 다시 만나 무릎을 꿇은 기억이 있습니다. 장반석 대표팀 감독은 "강팀은 대회 후반부로 갈수록 강해지는데, 우리는 그러지 못했다"며 아쉬워했습니다.
뉴질랜드 윈터게임을 마친 대표팀 장반석 감독(가운데)이 선수들과 대회 소감을 밝히는 모습● 한계 2. 무너진 심리 회복 능력

노르웨이와 동메달 결정전은 대표팀이 내년 평창 올림픽을 앞두고 반드시 곱씹어야 할 경기입니다. 단지 메달을 눈앞에서 놓쳐서는 아닙니다. '지더라도 잘 져야'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첫 엔드에서 3점을 빼앗긴 대표팀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4엔드 6대 1까지 점수가 벌어지자 5엔드에서 파워플레이로 일찌감치 승부를 걸었습니다. 1점을 만회하는 데 그쳤습니다. 결국 6엔드에서 파워플레이를 신청한 노르웨이에 대거 4점을 내주며 남은 엔드 승부를 포기했습니다.

장 감독은 "준결승에서 진 뒤, 같은 날 3, 4위전이 열렸다. 한 번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나는 모습이 부족했다”고 평가 했습니다. 준결승 패배 충격을 떨치지 못한 겁니다. 평창에서 조별리그를 잘 치러 4강에 들더라도 두 경기 중 한 경기는 반드시 이겨야 메달을 목에 걸 수 있습니다. 장혜지는 "이번 대회에서 지는 법을 배웠다. 남은 다섯 달 반드시 이기는 법을 배우겠다"며 전의를 다졌습니다.

● 한계 3. 젊은 팀, 부족한 큰 경기 올림픽 경험

컬링은 1cm 차이로 승부가 갈리는 민감한 스포츠입니다. 경기가 진행될수록 승부의 중압감은 더 무거워지기 때문에 고도의 집중력과 체력이 필수입니다. 특히 믹스더블에선 스톤수가 4인조 경기(8개*10엔드=80개)의 절반(5개*8엔드=40개)에 불과해 실수 하나에 승부가 갈릴 수 있습니다. 스물두 살 이기정과 스무 살 장혜지는 패기가 넘치지만 노련함은 아직 부족합니다.

한국 컬링 역사가 짧은 점, 믹스더블이 이번 평창 올림픽에서 처음 정식 종목이 된 점도 두 선수를 불안하게 하는 요소입니다. 장혜지는 "예선에선 '한 번 잘 해보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나서 잘 됐는데, 뒤로 갈수록 욕심이 생기면서 부담이 커졌고 몸이 굳었다"고 당시를 기억했습니다. 이기정 역시 "꼭 이겨야 할 경기에서 이기는 기술이 부족했다"고 자평했습니다.

● 해결책은 "올림픽 경험 전해줄 외국인 지도자"

대표팀이 뉴질랜드에 가 있는 사이 집행부 갈등으로 행정이 사실상 마비된 대한컬링연맹은 지난달 28일 대한체육회 관리단체로 지정됐습니다. 대회를 마치고 돌아온 장반석 감독은 "이제 체육회에서 잘 지원해주실 거라 믿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외국인 지도자 영입 필요성을 역설했습니다.

"우리 선수들이 많이 젊습니다. 올림픽 출전 팀 가운데 가장 어립니다. 당연히 올림픽 치른 경험도 없고요. 저희 지도자 중에도 올림픽 경험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낸 지도자를 영입할 수 있다면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장 감독은 '올림픽 프로그램'의 중요성을 역설했습니다. 남은 시간, 단순히 전지훈련을 많이 가고 좋은 팀과 경기를 해 보는 것만으로는 메달 가능성을 높이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겁니다. 경기를 하면서 상대를 파악할 수 있지만 역으로 상대에게 파악당할 기회를 내줄 수도 있습니다. 장 감독은 "올림픽까지 다섯 달, 얼마나 체계적으로 훈련을 할 수 있느냐, 우리 선수들에게 특화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이행할 수 있느냐에 메달이 걸려있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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