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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품한 물건 분실까지 책임져라'…유통업체 '슈퍼 갑질' 백태

유영규 기자

입력 : 2017.08.21 08:01|수정 : 2017.08.21 08:01


공정거래위원회가 근절하겠다며 칼날을 겨눈 유통업체의 불공정거래 행위는 다양하고 교묘합니다.

납품업체들은 제도 마련과 함께 감시 기능도 제대로 작동해야 현장에서 불공정거래 행위가 조금이나마 사라질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대형마트나 백화점 등 유통업체들이 납품업체들을 대상으로 하는 대표 '갑질'은 매장에서 제품이 분실 또는 파손될 경우 생기는 전산 잔여재고와 실재 잔여재고의 차이를 납품업체에 전가하는 것입니다.

이미 매장에 납품한 제품의 처리는 유통업체가 당연히 책임져야 합니다.

하지만 재고 관리에서 오차가 발생하면 유통업체 관리자의 책임이 되기 때문에 납품업체에 오차의 일부를 공짜 제품으로 메워달라고 요구하는 것입니다.

오차 액수는 제품 품목에 따라 약간 다르지만 대개 3개월 마다 매장별로 업체당 수십만에서 수백만 원에 이릅니다.

대형 유통업체에 납품하는 한 회사의 관계자는 "부탁처럼 말하지만 그대로 해주지 않으면 행사 매대 확보나 진열 등에서 불이익이 있어 따를 수밖에 없다"며 "비공식적으로 자행되고 있어 규제해도 적발하기 힘들다"고 설명했습니다.

가격 후려치기와 강제 납품도 고질적인 문제입니다.

가격 할인이나 '1+1' 등의 행사를 대부분 유통업체가 일방적으로 진행합니다.

A마트는 1만 원짜리 제품을 반값(5천 원)에 팔기로 납품업체와 합의했지만 경쟁업체인 B마트가 동일 제품을 4천 원에 판매하면 납품업체에 물어보지도 않고 4천 원에 판 뒤에 1천 원에 대한 부담을 납품업체에 전가했습니다.

C마트는 최근 9천900원, 1만5천900원, 2만5천900원짜리 생활용품 세트를 독자적으로 구성해 판매하겠다며 납품업체들에 세트를 만들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지나치게 저렴한 가격과 추가로 세트를 구성하는 부담 때문에 납품업체들이 거절하자 C마트는 사다리타기에서 걸린 업체에 이를 맡겼습니다.

시식행사 등에 납품업체가 판촉사원을 보내는 관행은 유통업체와 납품업체뿐만 아니라 납품업체 간에도 불합리한 측면이 있습니다.

유통업체는 공정위의 감시를 피하려고 납품업체로부터 자사 제품을 직접 관리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사람을 파견하는 것이라는 약정서를 받습니다.

납품업체는 인건비가 추가로 들어 부담되는 부분이 있지만, 대기업 납품업체는 매대와 진열 공간 등을 확보해 시장점유율을 유지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인력을 파견할 여력이 되지 않는 중소기업은 결국 대기업에 밀릴 수밖에 없습니다.

한 납품업체 관계자는 "공정위가 다양한 방안을 발표했지만 아직은 현장에서 느껴지는 것이 없다"며 "예전에는 증빙 없이 불공정행위를 했는데 이제는 법망을 피할 증빙자료까지 요구해 일만 늘어났다"고 호소했습니다.

그는 "제도를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실상 고발이 어려운 '을'의 입장을 고려해 제대로 감시하는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공정위는 유통업체와 납품업체 간의 불공정거래 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다양한 장치를 준비했습니다.

내년부터 대형유통업체의 고질적·악의적 불공정행위로 발생한 피해에 대해 최대 3배의 배상 책임을 물도록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합니다.

징벌적 손해배상 대상은 상품대금 부당감액, 부당반품, 납품업체 종업원의 부당사용, 보복행위 등입니다.

공정위는 대규모 유통업체의 불공정행위에 대한 과징금을 두 배로 상향하고 자진 시정 등에 따른 과징금 감경률을 줄이는 대규모유통업법 과징금 고시 개정안도 발의한 상태입니다.

이번 개정안은 규제 심사 등을 거쳐 10월에 확정·고시됩니다.

대형유통업체에 내야 하는 판매수수료, 판매장려금, 각종 비용 등 납품업체에 중요한 거래 조건을 공정위 홈페이지 등에 공개하는 대규모유통업거래 공시제도도 도입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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