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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2039를 잡아라…금융권 캐릭터 전쟁

조성현 기자

입력 : 2017.08.21 13:06|수정 : 2017.08.21 14:55

미래 고객 선점 위해 '캐릭터 마케팅' 열중


최근 20~30대 젊은이들의 SNS에는 체크카드 사진이 자주 눈에 띕니다. 해쉬태그(#)까지 붙여 경험을 공유하는 일종의 인증샷 놀이인데 유행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가장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건 바로 지난 7월 출범한 카카오뱅크가 내놓은 캐릭터 카드들입니다. 무뚝뚝한 표정의 숫사자 '라이언',  토끼옷을 입은 단무지 '무지' 같은 앙증맞은 카카오프렌즈 캐릭터들이 20, 30대 젊은이들의 지갑에 속속 자리를 잡고 있는 겁니다.

국민 메신저인 카카오톡을 통해 친숙해진 캐릭터로 체크 카드를 만들고, 이게 다시 카카오뱅크의 가입자를 끌어들이는 성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카카오뱅크의 체크카드 발급 신청 건 수는 지난 18일까지 187만 장에 달했습니다. 업체는 연말까지 40만~50만 장 정도 나가지 않을까 예상했지만 4배 가까운 실적을 단기간에 올린 겁니다. 

카카오뱅크는 카카오뱅크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할 경우 카카오프렌즈 이모티콘을 선물로 제공하는 이벤트도 벌여 효과를 톡톡히 봤습니다. 2000~3000원 하는 이모티콘을 공짜로 얻으려고 카카오뱅크에 가입한 사람들도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습니다. 

또다른 인터넷 전문은행 케이뱅크는 네이버 메신저 라인 캐릭터와 제휴해 네이버페이 체크카드를 지난 18일 출시했습니다. 라인 프렌즈 캐릭터인 '브라운' '초코' 가 새겨진 체크카드로 카카오뱅크 체크카드에 맞불을 놓겠다는 심산입니다.  카카오 대 네이버, 카카오톡 대 라인의 국내 양대 IT 업체의 대리전을 방불케합니다. 

금융권의 캐릭터 마케팅이 새로운 현상은 아닙니다. 해외에선 미국의 생명보험사 메트라이프는 1985년부터 2016년까지 인기 만화 캐릭터 스누피를 자사 마스코트로 활용하기도 했습니다. 2016년 당시 연간 1000만~1500만 달러를 스누피 저작권자에게 지급해온 것으로 알려져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국내에서도 꿀벌 모양의 자체 캐릭터 '위비'를 개발한 우리은행, 아이언맨 같은 인기 마블 캐릭터와 손 잡은 SC제일은행, 아기공룡과 코끼리 같은 캐릭터 '올원 프렌즈'를 활용한 농협은행 등 금융권 전반으로 캐릭터 마케팅이 널리 퍼져있습니다.

20~30대를 노린 캐릭터 마케팅은 실제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마블 캐릭터와 제휴한 SC제일은행의 체크카드는 3개월 만에 7만5천 장이 발급됐습니다. 이 가운데 65% 이상을 20~30대가 신청했습니다. 일본 만화 포켓몬스터를 활용한 KEB 하나은행의 통장도 비슷한 기간 8만 개가 개설됐습니다. 
카카오뱅크 체크카드은행들이 캐릭터 마케팅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캐릭터와 친숙한 20~30대 젊은 고객의 눈을 사로잡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큽니다. 사실 20~30대는 사회 초년병이어서 금융자산이 많지는 않습니다. 또 40대 이상 고객에 비해 여러 은행과 거래하거나 은행을 자주 바꾸는 편에 속합니다. 하지만 이들이 30~40대가 되면 소득과 자산이 빠르게 늘어나면서 최대의 고객으로 성장합니다. 이들을 고객으로 끌어들이지 않고서는 은행들의 미래를 보장할 수 없습니다.

캐릭터 상품 기획을 담당한 김종훈 SC제일은행 상무는 "20~30대가 현재 전세계 성인 경제인구의 40%를 차지하고 있는데, 향후 5년 간 이 비율은 60%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며 "20~30대 고객을 잡기 위해 이들과 친숙한 마블 캐릭터를 활용하게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한국캐릭터학회장을 맡고 있는 국립안동대 김시범 교수는 은행들의 이런 캐릭터 마케팅에 대해 피해갈 수 없는 선택이라고 설명합니다. 지금의 30대는 어린 시절 88 서울 올림픽 마스코트 '호돌이' 캐릭터를 시작으로 캐릭터와 친해진 첫 세대이며, 스스로 캐릭터에게 자신을 투영하고 소통해가며 성장한 세대인 만큼 캐릭터를 활용한 마케팅에 적극 반응한다는 게 김 교수의 해석입니다. 

사실 은행이 고객을 끌어들이는 가장 중요한 핵심은 싼 대출이자, 후한 예금이자 같은 금리와 각종 금융혜택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밀레니얼 세대인 20-30대 젊은 고객들이 속속 구매력을 높여가고, 카카오뱅크 같은 인터넷 전문은행이 돌풍을 일으키면서 캐릭터 디자인 또한 금리 못지 않은 필수 경쟁 요소가 돼가고 있습니다. 

"캐릭터는 고객과 만나는 첫 접점…소유하고 싶은 굿즈 만들고 싶었다"

지난 18일 오후 찾은 경기도 분당 판교 테크노밸리의 카카오뱅크 사무실.  탁 트인 사무실, 칸막이 없는 책상이 마치 대학 도서관을 보는 느낌이다. 반바지에 샌들처럼 자유 분방한 복장으로 다니는 사원들. 만나면 직함 없이 영어 이름을 부르며 반갑게 인사한다. 경직되고 보수적이며 관료적인 기존 은행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였다. 

로비 휴식 공간에서 체크카드 상품 기획에 참여한 이성미(샤론)씨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 카카오프렌즈 체크카드의 기획 의도는?

"우리는 모바일 은행이어서 점포가 없습니다. 오프라인에서 고객과 만날 기회가 매우 적은 겁니다. 어플을 다운로드 받아 실행하는 순간이 고객과 만나는 첫 접점입니다. 고객과 처음 접하는 그 순간 고객이 받는 느낌이 곧 카카오뱅크에 대한 이미지를 결정하는 거죠. 그래서 그 첫 순간을 무엇으로 장식할까 고민하다가 카카오톡을 통해 누구나 친숙하게 느끼고 있는 카카오프렌즈 캐릭터들을 활용하게 된 겁니다."

- 인스타그램 같은 SNS에서 호응이 뜨겁다. 

"잘 될 거라 생각은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연말까지 잘 되면 40만~50만 장 정도 나갈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오늘 벌써 187만 장 신청이 들어왔습니다." 

- 다른 은행들도 캐릭터 마케팅에 공을 들이고 있는데, 다른 은행과 카카오뱅크 캐릭터 활용의 차이가 있다면?

"보통 다른 은행들이 보내주는 신용카드나 체크카드는 흰 봉투에 담겨서 옵니다. 열어보면 글씨가 빼곡한 안내서가 들어있고요. 사람들은 거기서 카드만 딱 떼어내고 봉투는 휙 찢어버립니다. 우리는 카드 뿐만 아니라 카드와 함께 배송되는 안내문, 포장 등이 하나의 캐릭터 굿즈로 여겨지도록 구성했습니다. 20~30대들이 카드를 받는 순간부터 이건 꼭 소장해야겠다, 간직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도록 만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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