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제가 발레리나라는 걸 안 믿어요. 하하하”
운동복을 입고 나타난 스테파니(29)는 한눈에 봐도 털털하다. 아직 식사를 챙겨 먹지 못했다며 김밥 하나를 급히 주문하던 스테파니는 “워낙 오랫동안 차에서 김밥을 챙겨 먹던 게 익숙해서, 따로 식당에 가서 밥 챙겨 먹질 못한다.”며 소탈하게 웃었다. 발레리나에서 아이돌로, 솔로 가수에서 프로듀서로, 이제는 배우로서의 하나의 직업을 더 갖게 된 스테파니를 연극 ‘술과 눈물과 지킬 앤 하이드’ 무대 전에 만났다
연극 ‘술과 눈물과 지킬 앤 하이드’에서 스테파니는 절제미를 가진 숙녀 이브 댄버스와 내면의 욕구를 폭발하는 하이디 등 1인 2역을 맡고 있다.
“무대에 올라가서 즐기는 모습은 하이디에 가깝죠. 겉모습도 하이디로 보이고요. 하지만 무대 밑에 저의 진짜 모습은 벽을 깨지 못한 이브의 모습이 더 많아요. ‘집순이’라서 일 없으면 한 발자국도 안 나가고요. 사실 술자리에 가끔 가는 것 외에 일탈이라는 것도 못해요. 여행을 가는 것도 두렵고요.”
자신과 닮은 모습 때문일까. 스테파니는 연극 ‘술과 눈물과 지킬앤하이드’를 자신의 ‘인생 작품’이라며 애착을 드러냈다. 특히 스테파니는 조신함과 도발적인 매력 등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주며 코미디 연기를 선보이고 있다. 생애 처음 도전한 코미디 연기, 어렵진 않을까.
“사실 코미디 연기에 대한 부담이 없는 건 아니었어요. 마이크 없이 600석의 관객 앞에서 대사를 전달하고 웃기는 게 쉽지 않잖아요. 연출님은 ‘몸개그로 웃기려고 하지 마라. 배우는 웃지 마라’를 늘 강조하셨어요. 그래서 최대한 진정성을 가지고 준비한 연기를 하려고 임하려고 해요.”
스테파니는 스스로를 ‘완벽주의자’라고 설명했다. 어릴 때부터 하고 싶은 건 꼭 하도록 하면서도 그 책임까지 스스로 지게 했던 부모님의 교육 덕에 스테파니는 도전에 따르는 책임의 무게도 스스로 져왔다.
SM엔터테인먼트에서 나와 현재의 소속사로 옮기면서부터는 더 챙겨야 할 게 많아졌다. 챙겨야 할 게 많아졌다는 건, 그녀의 책임감이 더 커졌다는 것. 그런 스테파니가 연극 ‘술과 눈물과 지킬앤하이드’를 통해 연기에 도전하기까지, 그만한 고민의 깊이가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이 됐다.
“SM엔터테인먼트라는 대형 기획사에서 지금의 회사로 온 이후에도 하루하루가 모험이었어요. 연기를 제대로 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지난해였어요. 무대는 고향을 찾은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요. 저는 발레리나로, 가수로 반평생을 무대에서 살아왔잖아요. 음악은 제 쉼터고요. 작사작곡은 아티스트라면 꼭 해야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연기는, 지금 저에게 해내야 할 숙제예요.”
그래서일까. 스테파니는 한국에 가수를 하겠다고 왔던 15살 소녀 때처럼 여전히 새로운 분야에 대한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지난해 5년 만에 ‘한 여름밤의 호두까기 인형’의 주연으로 토슈즈를 다시 신은 것도 그러한 이유다. 발레리나, 가수, 천상지희, 배우 등 다양한 이름에 도전할 수 있었던 건 스테파니의 긍정적 성격 덕이었다.
“제 인생이 파란만장 했잖아요?(웃음)데뷔 이후, 부상도 이었고, 재활도 해야 했고, 학교도 가고 발레단도 가고 회사를 옮겼고 컴백도 해야 했고요. 부상에 대한 트라우마도 있고, 슬럼프에 대한 기억도 여전히 있어요. 하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서 저는 도전을 통해 성숙해진다는 사실을 믿어요. 이브 댄버스도 어떤 우여곡절을 겪고 나서 경쾌함을 겪잖아요? 도전의 끝은 늘 경쾌할 것이라는 긍정적인 마음이 있어요.”
스테파니에게 연기란 무엇일까.
“여태까지 많은 작품을 한 건 아니지만 맡은 역할들이 다 달랐어요. 저에게 무엇이 맞을지는 10년 정도는 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이제야 이런 음악이 잘 맞겠다는 걸 알겠어요. 늦게 시작을 했기 때문에 들어오는 역할이나 연기에 골라서 하는 건 생각 안해요. 어떤 캐릭터를 만나든 제대로 소화해내는 게 제 작은 목표예요.”
사진=마피아 레코드
(SBS funE 강경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