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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 총리의 조기총선 도박 실패하나…총리직 위기

한세현 기자

입력 : 2017.06.09 09:11|수정 : 2017.06.09 09:37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던진 조기총선 승부수가 결국 자충수로 귀결되고 있습니다.

현지 시간 어제(8일) 치러진 조기총선 출구조사 결과 메이 총리가 이끄는 집권 보수당은 314석으로 지금보다 17석 줄어들어 과반 326석 의석 확보에 실패할 것으로 예상됐습니다.

출구조사를 책임진 존 커티스 교수는 "출구조사가 믿을 수 없는 만큼 틀리지 않는다면 총리가 과반을 얻는 데 실패했다"고 말했습니다.

설령 보수당이 출구조사 결과와 달리 과반의석을 확보하더라도, 조기총선을 요청한 메이 총리의 목표인 "상당한 규모의 과반"은 불가능할 것으로 분석됩니다.

과반의석을 대폭 늘려 "안정적이고 강력한 리더십"을 확보하려던 메이의 계획은 현상유지 수준의 결과를 맞을 것으로 예측됩니다.

메이 총리는 유세 기간 압도적인 과반 이상 의석 확보에 실패하면, "혼란의 연정"이 올 거라고 주장했었습니다.

이번 선거는 메이의 단독 결정에 의한 것으로, 극소수 측근하고만 논의한 채 조기총선 요청을 전격적으로 발표해 보수당 전체에 충격파를 울렸습니다.

선거유세 역시, 메이 총리와 측근인 '메이 팀' 독주였고 선거 슬로건도 "안정적이고 강력한 리더십"이었습니다.

메이는 마지막 유세에서 "브렉시트 협상에서 강력한 협상권을 내 손에 쥐어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선거는 이른바 '브렉시트 선거'로 불렸습니다.

하지만, 브렉시트 쟁점은 정작 선거에서 사라졌습니다.

제러미 코빈 노동당 대표가 보수당 집권 7년에 걸친 긴축과 '불평등'을 화두로 삼고 펼친 정책 선거유세가 주목을 받은 겁니다.

반면, "코빈은 브렉시트 협상장에서 발가벗겨 질 것"이라는 메이의 목소리는 유권자들의 주목을 끌지 못했습니다.

'i 뉴스'가 조사한 온라인 여론조사에서 유세에서 누가 더 잘했느냐는 질문에 코빈이 58%로 25%인 메이를 배 넘게 앞섰습니다.

보수당 지지자들 가운데 21%도 코빈이 메이보다 더 잘했다고 했습니다.

메이와 코빈 개인에 대한 신뢰도도 메이의 선거유세 실패를 드러냈습니다.

여론조사업체 유고브 조사에 따르면, 개인 인기도에서 메이는 43%, 코빈은 32%였습니다.

메이가 11%포인트 앞서지만, 선거유세 시작 당시 격차는 무려 39%포인트나 났었습니다.

이 같은 결과에 대해 전문가들은 메이의 잇단 자책이 원인이라고 지적합니다.

노인요양 지원자를 축소하는 '사회적 돌봄' 개혁 공약을 내놓자 지지층인 노년층이 거세게 반발했고, 이에 노동당도 '치매세'라며 공세를 퍼부었습니다.

메이는 황급히 사흘 만에 공약을 사실상 철회했습니다.

지지층을 흔들 사안을 아무런 신호 없이 불쑥 공약으로 발표한 것도 실수지만, 곧바로 공약을 철회한 것은 '안정적이고 강력한 지도력'과는 정반대되는 행보라는 비판이 보수당 내부조차 터져 나왔습니다.

영국 스카이뉴스 제러미 팍스맨은 지난달 29일 저녁 생중계된 메이 총리와 인터뷰에서 "내가 만일 브뤼셀에 있는 EU 관리라면 당신은 '허풍쟁이'라는 생각이 들 거다"고 꼬집었습니다.

메이는 또, 각 정당 대표들이 참여하는 TV 토론도 거부해 비난을 자초했습니다.

코빈은 애초 메이가 참석하지 않으면 TV 토론에 나서지 않겠다고 했다가 막판에 마음을 바꿔 나섰습니다.

한 정치평론가는 "비록 코빈이 반등 기회를 찾아려고 토론에 나선 것이지만, 메이는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려 나서지 않는 것으로 보여 모두 유권자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없었다"고 지적했습니다.

의석을 대폭 늘리기는커녕 과반의석 상실마저 눈앞에 둔 메이의 총리직은 불투명해졌습니다.

보수당에선 조기총선 요청 당시 20%포인트 안팎에 달한 노동당과의 지지율 격차에 비춰 볼 때, 메이가 17석인 과반의석을 적어도 60석 이상으로 늘려야 성공이라고 평가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일부는 90석 이상의 과반의석을 기준 잣대로 삼기도 했습니다.

가디언은 출구조사 발표 직후 보수당내에서 "메이가 자리를 지키기 매우 어려울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면서 메이가 벌써 사퇴 압박을 받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베팅업체는 보리스 존슨 외무장관이 메이를 대신할 확률을 50%로 제시하며 메이의 퇴진을 베팅 리스트에 올리기까지 했습니다.

보수성향 일간 텔레그래프도 메이가 기술적으로는 총리직을 유지할 수 있지만 권위가 상당히 훼손돼 새 정부를 구성하는 데 고전할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스티븐 필딩 노팅엄대 교수는 "사람들이 메이의 리더십에 관한 질문들을 던질 것이다. 숫자에서 패배한 건 아니지만 총리 위임에선 패배한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메이는 지난해 6월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브렉시트 국민투표 책임을 지고 사퇴한 뒤 열린 당 대표 경선에서 승리해 총리직을 자동 승계했습니다.

영국의 EU 탈퇴를 이끌 '구원투수'로 등장해 EU를 떠나면서 EU 단일시장에서도 이탈하는 '하드 브렉시트'를 추구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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