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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승' 일당스님 작품 수십 점 멋대로 처분한 제자

홍지영 기자

입력 : 2017.05.31 08:30|수정 : 2017.05.31 08:30


그림 그리는 스님인 '화승'(畵僧)으로 살다 입적한 김태신(金泰伸) 스님이 남긴 작품을 멋대로 처분한 자칭 '제자'가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서울북부지검 형사1부는 일당스님의 그림 등 작품 60여점을 유족 동의 없이 처분한 혐의(횡령)로 고모(64)씨를 불구속 기소했다고 31일 밝혔습니다.

고씨는 2014년 7월 그림을 팔아 박물관을 짓는다는 명목으로 일당스님으로부터 그림 60여 점을 위임받아 보관하다가 같은 해 12월 스님이 입적한 이후 처분해 수억 원을 챙긴 혐의를 받습니다.

검찰에 따르면 고씨는 2012년부터 스님의 시중을 들면서 그림을 배우는 문하생으로 지내다가 스님이 돌아가시기 몇 개월 전 그림 64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박물관 건립 사업은 진행되지 않았고, 일당스님의 유족이 그림들을 돌려달라고 했지만 고씨는 이를 거부하고 오히려 그림을 팔아치운 것으로 조사됐다고 검찰은 전했습니다.

고씨는 검찰에서 전체 64점 중 30점을 한 기업에 3억원가량을 받고 팔았으며 15점은 썩어 버렸고, 나머지 몇 점을 다른 사람에게 공짜로 나눠줬다고 말했습니다.

고씨는 "스님이 의지하던 나에게 전부 조건 없이 증여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이를 뒷받침할 만한 증거나 정황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검찰 관계자는 "일본 미술계에서 일당스님의 그림은 호당 700만∼800만원 정도에 형성돼 있어 64점 정도면 일본에서 100억원 이상으로 추정된다"며 "고씨가 진술을 회피하는 바람에 어떤 그림이 있었고, 몇 점이 남았는지 확인되지 않았다"고 전했습니다.

일당스님의 제자 재불화가 르네 추씨는 "일당스님의 낙관을 포함해 어머니인 일엽스님 초상화, 이당 김운호 화백의 그림, 신익희 선생 서예품 등도 넘겨진 것으로 안다"며 "스님의 그림을 횡령했을 뿐만 아니라 진품을 누가 소장하는지도 알리지 않아 매우 안타깝다"고 말했습니다.

일당스님은 일제 강점기 유학파 출신 문인이자 한국 불교 최고의 여승으로 불린 일엽스님(1896∼1971)이 출가 전 일본 명문가 출신인 오다 세이조(太田淸藏)와 만나 낳은 아들입니다.

기구한 운명 탓에 이곳저곳 옮겨 살다 자신을 양자로 삼은 이당 김은호(1892∼1979) 화백에게서 그림을 배웠고, 일본 도쿄(東京)제국미술학교에 입학해 이토오 신스이(伊東深水) 교수를 사사했습니다.

한일 양국을 오가며 화려한 색감의 불화나 인물화를 그리는 동양 채색화 기법으로 작품활동을 하던 중 어머니가 걸어간 길을 따라가고 싶다며 66세의 늦은 나이에 출가해 화승으로 살다가,2014년 12월 25일 세수 93세로 입적했습니다.

한국보다는 일본에서 화가로 유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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