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행정(展示行政)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전시(展示) 효과만을 노리고 펼치는 행정(行政)을 의미하는데, 실현 가능성은 적지만, 실적만을 보여주기 위한 정책 등을 말할 때 흔히 사용됩니다.
2013년 출범한 박근혜 정부는 ‘정부 혁신 프로그램’ 중 하나로 ‘스마트 정부(Smart Government)’를 추진해 왔습니다. 공공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공공 애플리케이션(Application) 개발을 장려하는 등 IT 시대에 걸맞은 정부를 표방해온 겁니다.
그런데 정부부처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이 개발한 공공 애플리케이션(이하 앱)이 '전시행정'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 폐지된 공공 앱만 140억 원 규모
현 정부가 '스마트 정부'를 표방하겠다고 선언한 뒤, 각 정부부처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은 앞다퉈 공공 앱 개발에 나섰습니다.
그런데 중앙부처 등에서 개발한 공공 앱 1768개 중 642개가 폐지됐습니다. 이는 36.3%에 달하는 수치로, 앱 10개 중 3개는 폐지된 겁니다.

정부는 민간 경쟁력 제고를 위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폐지된 앱 가운데 244개는 다운로드 건수가 1천 건 미만으로 집계됐습니다. 결국, 실질적인 원인은 '이용 실적 저조'였던 겁니다.
2016년 기준 '산업통상자원부(이하 산자부) 및 소관 기관의 공공 앱 운영 및 폐지 현황 자료'에 따르면, 산자부의 '산업통상자원부 픽토그램'이라는 공공 앱은 지난 2013년 1500만 원을 투입해 개발됐지만, 다운로드 건수가 500여 건에 불과했습니다.
공공 기관인 한국남부발전이 5천2백만 원을 들여 개발한 '코코아톡 한국남부발전'이라는 앱도 이용실적이 500여 건에 불과해 폐지된 사례입니다.
공공 앱 1개를 개발하려면, 평균적으로 약 2천만 원이 필요합니다. 연간 운영 비용은 개발 비용의 10%가 드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개발비를 2천만 원, 운영 비용을 개발비의 10%인 200만 원이라고 가정하면, 폐지된 공공 앱 642개에는 140억 원 이 넘는 예산이 투입된 셈입니다. 평균치로만 계산해도 말입니다.
■ 쓰임은 '중복'…내용은 '허술'
정부가 막대한 예산을 들여 개발한 공공 앱의 이용 실적이 저조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공공 앱을 다운받은 사용자들의 이용 후기를 살펴보면, 그 이유를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폐지 이후에도 남아 있는 일부 공공 앱 이용 후기에는 기능이 기존에 이미 나와 있는 앱과 중복되거나, 업데이트 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설치 후 오류 수정을 요청했는데, 전혀 해결되지 않았다'는 비판이 담긴 후기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습니다.
상위 부처에서 내려온 지침 때문에 급하게 여러 개를 만드는 '보여주기 식 행정'에 치우치면서, 공공 앱 자체의 질이 떨어진 겁니다.
■ 폐지 이후에도 여전한 전시행정
정부는 공공 앱 폐지 이후, 서비스를 시작한 지 1년이 넘은 공공 앱에 대한 운영 성과를 정기적으로 측정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일차적으로 각 부처가 앱을 책임 있게 관리하고, 관리 내용을 정기적으로 행정자치부에 보고하도록 하겠다는 방침이었죠. 성과가 저조한 앱에 대해서는 개선 또는 폐기 등 정비 계획도 마련하겠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러나 앱 운영과 개선 문제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인 것으로 보입니다.

국민권익위원회에서 운영하는 '국민신문고'와 행정자치부에서 개발한 '생활불편신고'는 앱의 사용 기능이 유사하다는 지적이 많지만, 여전히 제각각 운영되고 있습니다.
국정원이 운영하는 '절대시계 위젯'은 2012년 이후 한 번도 업데이트 되지 않았고, 국세청에서 운영하는 '홈택스' 역시 오류 수정 요청이 있지만 지난해 말 이후, 개선된 사항이 없습니다.
사용자들의 2017년도 이용 후기와 평가만 살펴봐도 공공 앱에 대한 만족도가 떨어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공공의 편의를 위한다며 수백억 원을 들여 만들었다, 없앴다 반복하는 공공 앱.
사용자인 국민이 만족하지 못하고 불편함을 호소한다면 '공공을 위한 앱'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기획·구성: 김도균, 장아람 / 디자인: 정혜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