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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트+] '영원한 제국'…'천재 소설가' 이인화의 추락

김도균 기자

입력 : 2017.01.03 11:04|수정 : 2017.01.03 17:49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 씨에게 성적 특혜를 제공한 혐의로 류철균(필명 이인화) 이화여대 디지털미디어학부 교수에게 지난 1일 구속영장을 청구했습니다.

류 교수는 2015년 1학기 자신이 담당한 'K-MOOC 영화 스토리텔링의 이해' 과목에서 정 씨가 제대로 출석을 하지 않았는데도 높은 학점을 주는 등 특혜를 줬다는 의혹을 받고 있습니다.

특히 기말고사 당시 독일 체류 중이었던 정 씨의 시험 답안지를 조교에게 대신 써주도록 협박했다는 혐의(업무방해)까지 받고 있습니다.관련 사진류 교수는 지난달 30일 오후 소환돼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긴급체포됐습니다. 특검팀은 "류 씨가 현직 교수인 점과 진술 태도 등에 비춰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류 교수는 대중 사이에서는 '이인화'라는 필명으로 널리 알려진 유명 작가입니다. 소설 <영원한 제국>을 비롯해 화제작을 몰고 다닌 문단계의 스타였기에 그의 작품을 좋아하는 팬들은 실망감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한때 '천재'라는 소리까지 들었던 그가 어쩌다가 이런 일에 휘말리게 된 걸까요?

■ <영원한 제국>의 '천재' 이인화관련 사진대구 출신인 류 교수는 서울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뒤 1992년 소설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로 제1회 작가세계 문학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등단했습니다.

바로 다음 해인 93년 발표된 역사추리소설 <영원한 제국>은 류 교수를 단숨에 유명 작가로 만들어줬습니다.

조선의 22대 왕, 정조의 독살설을 소재로 한 <영원한 제국>은 정조가 사망한 1800년 1월 19일 새벽부터 20일 새벽까지 창덕궁 규장각에서 발생한 일들을 풀어낸 이른바 '팩션(faction, 팩트와 픽션을 합성한 신조어)'입니다.

1990년대 최고의 베스트셀러로 100만 부가 넘게 팔린 것은 물론, 영어·일본어 등 8개 국어로 번역됐고, 배우 안성기 씨가 주연한 동명의 영화로도 만들어질 만큼 대중적으로 엄청난 반향을 부른 작품입니다.

그가 이 책을 집필했을 당시 20대여서 당시 류 교수는 '천재'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습니다.

류 교수는 이 같은 명성을 바탕으로 박사학위를 받기도 전인 1995년 이화여대 국문학과 교수로 초빙되며 또 한 번 세간의 관심을 모았습니다.

이후에도 류 교수는 제24회 이상문학상 대상을 받은 <시인의 별>을 비롯해 <초원의 향기>, <인간의 길> 등의 작품을 발표하며 한국 문단의 중심에서 활발히 활동해 왔습니다.

■ 기행을 몰고 다닌 이인화

하지만 류 교수는 유명한 작가였으나 훌륭한 작가는 되지 못했다는 평입니다.

'한국형 역사추리소설의 새 장을 열었다'는 문단의 찬사를 받는 동시에 국가주의적 역사관 등으로 거센 비판을 받았습니다.

저작 <영원한 제국>에서는 "모든 나라는 절대주의 국가를 거친다"며 절대적 왕권정치를 옹호하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10월 유신이 필연적이었다는 역사인식을 드러내 비판이 잇따랐습니다.관련 사진특히 류 교수가 97년 3부작으로 펴낸 대하소설 <인간의 길>은 박 전 대통령을 한국의 근대화를 달성한 영웅으로 묘사하고 군사독재를 지나치게 미화해 '박정희 찬양가'라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류 교수는 또 '셀프 평론'으로 주목 받기도 했습니다. 이인화라는 필명으로 발표한 데뷔작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에 류철균이라는 본명으로 평론해 자기 작품에 대해 '스스로 평론'을 하며 구설에 오른 겁니다.

여기에 이 소설은 공지영과 무라카미 하루키 등 국내외 작가의 작품을 표절했다는 의혹도 제기됐습니다. 표절 논란에 류 교수는 '포스트모더니즘적 혼성모방'이라고 항변해 더욱 논란을 키우기도 했습니다.

표절 시비는 한동안 잠잠하다가 재작년 소설가 신경숙의 표절 논란 국면에서 신 씨의 남편인 문학평론가 남진우 씨가 언급하며 재차 불거졌습니다.

류 교수에게는 '언어적 성폭력 논란'도 있었습니다. 과거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한 케이무크(K-Mooc) 동영상 강의 도중에 "나쁜 놈을 만나 강간을 당하는 경우가 벌어지더라도 요즘 여성들이 그런 일 좀 겪는다고 사는 데 지장이 없다"고 한 겁니다.

■ 최순실의 오래된 측근? 소설가 이인화의 출세와 몰락

논란을 빚던 류 교수는 박근혜 정부 들어서 갑자기 소설가이자 게임 스토리텔링 전문가, 대학교수 등으로 승승장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류 교수는 박근혜 정부에서 차은택 전 창조경제추진단장과 함께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인 문화융성위원회에서 활동했습니다.

또 박 대통령의 제안으로 출범한 청년희망재단의 초대 이사를 지내면서 문화계 인사로서 유일하게 이름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류 교수가 최 씨와 인연이 깊다는 의혹이 제기된 이유입니다.

하지만 그의 성공은 금방 발목이 잡혔습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불거지며 이화여대에서 정유라 씨에 대한 입시 및 학사 특혜가 조직적으로 이뤄진 정황이 포착됐고, 이어 류 교수도 수사 대상에 포함됐습니다.

지난달 31일 류 교수가 피의자 신분으로 긴급체포된 것으로 볼 때 특검팀은 류 교수의 혐의를 상당 부분 확인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류 씨는 특검 조사과정에서 "최순실을 안다"고 인정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한때 '천재 소설가'로 불리다 '논란의 소설가'가 됐고, 이어 정부도 '모시는' 교수가 됐다가 결국 체포된 류 씨의 추락.

그의 책에 열광했던 사람들은 또 다시 씁쓸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기획, 구성 : 김도균, 정윤교 / 디자인 : 임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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