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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 폭등했지만 우울한 양계농…"산지 가격 제자리, 팔 계란 없어"

홍지영 기자

입력 : 2016.12.26 08:05|수정 : 2016.12.26 08:05


전국을 강타한 조류 인플루엔자(AI) 여파로 달걀값이 하루가 다르게 폭등하고 있지만 산지 양계농가들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습니다.

달걀 소비자 가격은 한 달 새 30% 이상 올랐지만 산지 시세의 오름폭은 그 절반에도 못 미치기 때문입니다.

지난여름 폭염으로 산란율이 크게 떨어진 상태라 생산량이 기대에 못 미치고, AI 방역 지출이 늘어난 데다 자식 같이 키운 닭들이 언제든 AI에 감염돼 생매장될 수 있다는 불안감 속에 하루하루를 버텨내며 감내하는 스트레스가 더 크다고 하소연합니다.

26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지난 23일 기준 특란 한 판(30개)의 소비자 가격은 7천124원으로 한 달 전(5천420원)보다 31.4%나 올랐습니다.

지난달 17일 AI 확진 농가가 나온 이후 달걀값이 계속 오른 것인데, aT가 달걀값을 집계한 1996년 이후 달걀 한 판의 소비자 가격이 7천원을 넘긴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소매시장 분위기와는 달리 연일 AI 감염을 걱정하며 달걀을 생산해내는 산지의 시세 변화는 예상외로 크지 않습니다.

대한양계협회가 고지한 지난 23일 기준 산지 달걀값은 한 판당 5천760원으로 한 달 전(5천220원)보다 10.3% 올랐을 뿐이어서 산지가와 소비자 가격의 오름폭이 3배 이상 차이가 나는 셈입니다.

이 때문에 달걀 공급 부족을 틈타 중간상인들만 폭리를 취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달걀 중 65%는 수집판매상을 거쳐 유통되는데, 산란계 농장에서는 매일 생산되는 달걀을 창고에 마냥 쌓아놓을 수 없으니 수집판매상이 제시하는 가격이 터무니없이 낮지만 않으면 그 즉시 출하합니다.

사실상 수집판매상들에 의해 산지가가 책정된다는 얘기입니다.

한 양계업 관계자는 "중간 유통 과정에서 조금씩 살이 붙고, 최종적으로 대형유통업체가 시장 분위기를 이용해 높은 마진을 붙여 팔면 산지가와 소비자 가격이 크게 차이 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에 최근에는 부족한 달걀을 더 확보하려는 일부 중간상인들이 농가에 웃돈을 주고 매입하는 사례가 늘면서 소비자 가격 상승을 더욱 부추긴다는 게 양계 업계의 전언입니다.

달걀값 상승에도 양계 농가가 웃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생산량 감소입니다.

양계협회에 따르면 AI 발생 이전에 하루 4천200만개씩 공급되던 달걀이 최근에는 3천만개 정도로 줄었습니다.

AI에 의한 산란계 농장 피해가 큰 게 주된 원인이지만 AI 피해가 없는 농가들도 전반적으로 생산량이 줄었습니다.

지난여름 폭염에 의한 폐사로 닭 사육두수가 줄었고, 산란율마저 떨어졌다는 게 양계 업계의 설명입니다.

충북에서 산란계 농장 중 규모가 가장 큰 충주 A농장의 경우 56만마리의 닭을 키우고 있는데 하루 달걀 생산량은 35만개 정도.

산란율이 62.5%라는 얘기인데 보통 80% 안팎을 유지해야 정상입니다.

이 농장 관계자는 "지난여름 더위로 인해 닭들이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폐사하거나 난중(달걀 무게)이 줄어 산란율이 크게 떨어졌는데 아직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는 상황"이라고 전했습니다.

한 달 넘게 이어지고 있는 방역 전쟁에 따른 비용 출혈도 상당합니다.

AI가 전국으로 퍼져 사실상 모든 지역이 AI 영향권 안에 있다 보니 규모가 큰 농장의 경우 지자체 지원 말고도 자체 방역 장비를 늘리느라 예정에 없던 지출이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양계농장을 운영하는 한 농민은 "AI에 감염되면 말 그대로 끝이니 당장 손해를 보더라도 방역에 올인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며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인데 달걀값이 오른다고 마냥 웃을 수 있겠느냐"고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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