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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단 폐쇄' 10개월…'사장님'에서 자전거수리공으로

입력 : 2016.12.15 15:32|수정 : 2016.12.15 15:32

정부, 개성공단 소재 자산 담보로 지원 약속…'하세월'
"얼음은 망치 아닌 바늘로 깨야…재개하면 꼭 다시 들어갈 것"


▲ 개성공단 영업기업 태진티제이 고재권 대표 (사진=연합뉴스)

개성공단을 드나들며 온갖 물건을 납품해온 '고 사장'은 하루아침에 생계 수단을 잃었다.

지난 2월 북한의 핵실험 이후 내려진 정부의 일방적인 공단 가동중단 결정에 자전거수리공으로, 이제는 동절기를 맞아 식당 주방 보조 일을 전전하고 있다.

개성공단 영업기업 태진티제이 고재권(54) 대표의 지난 1년은 사태의 여파를 여실히 보여준다.

지난 14일 경기도 고양시 소재 사회적기업인 '사랑의 자전거'에서 만난 고씨는 "여느 때처럼 통일대교에 올라 개성에 들어가려는데 길이 막혀있던 게 생생히 기억이 난다"고 운을 뗐다.

그는 "폐쇄 3일 전에 북측 세관 관계자에게 문의했을 때만 해도 2013년 남북이 개성공단 운영은 정세에 영향을 받지 않기로 합의한 만큼 아무 일이 없을 거라고 했는데, 갑자기 중단됐다"고 말했다.

개성공단은 북한 측이 '존엄 모독'을 이유로 일방적으로 근로자를 철수시키면서 2013년 4∼9월 가동을 한차례 중단했었고, 북한의 제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계기로 올해 2월 10일 가동을 전면 중단했다.

고씨의 삶은 올해 2월 10일 이후 완전히 달라졌다.

개성공단 입주기업 등에 자동차부품·자전거부품, 각종 사무용품 등을 납품해온 고씨로서는 졸지에 거래처를 모두 잃은 셈이었다.

북한 근로자들이 출퇴근할 때 타고 다니는 자전거에 쓸 부품을 납품하며 어깨너머로 본 기술을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해 자전거수리공으로 취업했다.

지난 8월부터 11월까지 고양시 전역을 돌며 '찾아가는 자전거 수리' 일을 했다.

당장 입에 풀칠하기 위해서 둔한 손으로 땀을 뻘뻘 흘러가며 일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월급은 140만원이었다.

그마저도 동절기가 되자 일이 끊겼다.

현재는 사촌이 하는 서울의 한 오리백숙 식당에서 주방 보조 일을 하고 있다.

이후에는 뭘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그동안 피해 보상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고 며칠 전에서야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에서 나와 지원책 관련 설명을 했다.

앞서 통일부는 지난 3∼5월 개성공업지구 피해 관련 실태 조사를 벌여 회계법인을 통해 업체별로 피해액이 얼마인지 추산했다.

통일부 관계자는 "당시 증빙서류를 준비하지 못한 곳들이 있어 지난 8∼10월 추가로 수출신고필증 등을 제출받았다"며 "현재 지원금액을 신청받고 있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고씨 역시 추가 기간에 서류를 냈다.

그러나 최근 들은 보상금 지원조건은 다소 황당했다.

조건은 "향후 개성공단 소재 자산을 사용 가능한 시점이 되면 담보 설정된 유동(재고) 자산의 가치를 재평가하고, 해당 평가금액을 반납하는 경우 양도담보 설정을 해제한다"는 것이었다.

재단 측은 이런 조건을 내건 서약서에 서명하라고 하는데, 고씨의 마음은 답답할 수밖에 없다.

그도 그럴 듯이 고씨의 경우 개성공단에 쌓여있는 물건이 3천500만원어치에 달하며, 그것도 수도권 등지를 돌며 발품을 팔아 떼온 물건들이라고 했다.

그러나 금전적 손해도 손해지만, 고씨를 더욱 안타깝게 하는 것은 '살아있는 통일 교육장'이 폐쇄됐다는 점이다.

소년 시절 받은 반공교육 외에 통일 문제에 관심이 없던 고씨는 2002년부터 본격적으로 개성공단을 출입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고씨는 "군사분계선을 넘어갈 때면 기분이 아주 이상할 때가 있다"면서 "같은 하늘 아래 하루는 자본주의의 침대에서 잠을 자고 하루는 사회주의 땅에서 돈을 번다는 게 참 묘하다"고 했다.

그는 "북측 근로자들은 남측 사람들이 무섭지 않으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고 한다"면서 "이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 식솔들과 얘기를 하면 자연히 남측에 대해 좋은 인상과 관심을 가지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고씨는 남북관계를 얼음에 비유하면서 그 중요성도 강조했다.

"두꺼운 얼음은 망치로 아무리 해도 잘 안 깨지는데 가운데서 바늘로 콕콕 찍어 나가면 깨지게 돼 있습니다. 개성공단 같은 곳을 늘리면 이렇게 서로 긴장만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고씨는 "겨울에 임진강을 지나다 보면 얼음이 어는 게 보이는데, 얼음은 바깥에서부터 얼지만 녹을 때는 꼭 가운데서부터 녹는다"며 "개성공단은 반드시 다시 열려야 하고, 나도 꼭 다시 들어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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