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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헌 변호사 49년 만에 세 번째 시집 '하얀 목소리'

이종훈 기자

입력 : 2016.12.11 10:43|수정 : 2016.12.11 10:43


한승헌(82) 변호사가 생애 세 번째 시집 '하얀 목소리'(서정시학)를 냈습니다.

한국의 대표적 인권변호사인 그는 법조계에 투신한 1960년대 이미 두 편의 시집을 엮은 시인입니다.

49년 만에 낸 이번 시집에는 전작에 실린 작품을 추리고 그동안 여러 문학지와 일간지에 쓴 시편을 함께 묶었습니다.

시인은 책 앞머리에 "부질없는 늑장"을 탓하면서도 "이 각박한 세상을 살아가는 고단한 생명들에게 손이라도 한 번 더 흔들어 줘야지"라고 썼습니다.

한 변호사는 전북대 학보사 기자 시절부터 빈 지면을 자신의 시로 채운 문학청년이었습니다.

고등고시 사법과(현재의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검사로 일하던 1961년 첫 시집 '인간귀향'을 냈습니다.

5년 만에 공직을 그만두고 변호사 활동을 하면서 낸 두 번째 시집이 1967년 '노숙'입니다.

"검사 초임지가 문인들 많이 배출하기로 유명한 통영이었는데, 주변에서 자꾸 꼬드겨서 시화전을 하고 얄팍하니 시집을 묶었어요. 두 번째는 본격 시집처럼 제법 괜찮게 만들었어요. 박목월이니 서정주니 쟁쟁한 시인들이 살아 계실 때라, 출판기념회를 했더니 '변호사가 무슨 시를 쓰는가' 하면서 많이 와주셨죠. 문인들과 많이 친하니까 필화사건 당하거나 하면 그 인연으로 법정에서 변론하고 한 거죠." 한 변호사는 '시국사건 1호 변호사'로 불리며 동백림 간첩단 사건, 김지하 시인의 '오적' 필화사건 등을 맡았습니다.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때는 공범으로 몰려 투옥되기도 했습니다.

시집 곳곳에는 어둡고 가슴 아픈 한국 현대사의 그림자가 드리웁니다.

조국은 움이 트길 기다리는 '동토'이자 '분 바른 식민지'입니다.

한 변호사는 서슬 퍼런 군사독재에 글로써 맞서 싸웠던 이들을 격려하고 스스로도 다짐합니다.

"검劍에 밀리던 붓/ 그 붓으로 기어이 검 이겨내고자/ 어둠을 쪼개는 안간힘/ 나이테 더할수록 무거운 짐/ 위태로운 성을 지키는 마음/ 이제는 자랑으로 피어나거라.// (…) // 추억이 주는 아쉬움과/ 아픔 위에 피어나는 보람과/ 아직 이루지 못한 소망을 위하여/ 제 몸 태워 어둠 밝히는/ 한 자루 촛불이고자/ 오늘 새로이 다짐하는 뜨거운 염원/ 역사의 길섶에 피어나거라." ('역사의 길섶에서' 부분) "분 바른 식민지의 하늘에/ 태양은 슬프게 뜨고 진다./ 짙을수록 고운 몸부림의 원색 위에/ 무엇인가/ 흐느끼는 마음이 자리할/ 역사의 좌표를 찾아야 한다." ('초병백서' 부분) 인권 투사로서의 면모만으로 시집을 채운 건 아닙니다.

"구석진 목숨의 한 모퉁이/ 강물처럼 도도히 흘러간/ 부끄러운 내 세월이었습니다."('우리만의 제창')라든가 "우리 머무는 푸른 항구에/ 이별처럼 회상처럼/ 비가 내립니다."('항시에서')처럼 서정성 짙은 문장들도 담았습니다.

한 변호사는 "작품으로 내세우기보다는 나도 한 시대를 살아온 사람이니까, 뭔가 써서 남기고 정리하는 의미에서 (시집) 하나 낸 것"이라고 담담하게 말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심판 당시 대통령을 대리했던 그에게 이번 탄핵 정국 얘기를 꺼냈더니 신중한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예전에 변론하면서도 느꼈지만 역시 헌법재판소는 보수성이 강해요. 아슬아슬하고 마음을 놓을 수가 없는 곳이에요. 이번에도 그런 걱정을 전혀 안 할 수는 없죠. 장담하기는 어려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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