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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확산에 "출근만 있고 퇴근은 없다" 가축방역관의 힘겨운 하루

입력 : 2016.12.11 09:07|수정 : 2016.12.11 09:07

일은 넘치고 사람은 없고…기피부서 인식에 구인난 가중


조류인플루엔자(AI)가 맹위를 떨치면서 전국 가축방역관들도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확산하는 바이러스와 분투 중인 하명수(38) 나주시 가축방역관은 11일 "출근은 있지만, 퇴근은 없다"고 일상을 대변했다.

전국 최대 오리산지인 나주는 AI 방역의 핵심 지역이다.

나주가 무너지면 전남 축산업, 전국 오리 산업이 흔들린다.

공산면, 동강면 오리 농장에서 AI가 발생하면서 긴장감도 극에 달했다.

하 방역관은 오전 8시 사무실로 출근해 50~100개에 달하는 공문 확인으로 일과를 시작한다.

농림축산 검역본부, 전남도 등으로부터 내려온 발생상황, 방역·수습 지침을 파악해 농가, 협회에 통보한다.

200개가 넘는 농가를 나주시 공무원들이 분담해 관리하지만, 축산·수의직이 아닌 직원이 꼼꼼하게 방역상황을 점검하기에는 무리도 따른다.

동료들의 문의에 일일이 답변하는 동안에는 축산 관계자들의 민원도 쇄도한다.

상급 기관에서는 농가 간 이동을 최대한 제한하도록 했지만, 축산 관계자들은 '생계가 위협받는다'며 통제를 풀어달라고 울상이다.

AI가 발생하면 농가와 협의해 살처분 매몰지를 선정하고 보상금, 예비비를 지급하기까지 모든 과정도 하 방역관을 거친다.

틈나면 방역초소, 축산현장을 둘러봐야 하고 끊이지 않는 고위층의 지도 방문도 준비해야 한다.

하 방역관은 "서류상 정리해야 할 일도 많은데 주간에는 도저히 할 수가 없다"며 "낮에는 통화하고 밤에는 내 일(서류 작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격무의 보람도 없이 AI가 발생하면 '내가 죄인'이라는 자책감에 피로를 호소할 틈도 없다.

한때 같이 일했던 동료가 그만두면서 '이렇게는 못 살겠다'고 했던 게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고 하 방역관은 하소연했다.

일반 기업체에서 근무하다가 2012년 가축방역관으로 이직한 하 방역관은 공공 방역관으로서 전문성과 자긍심으로 버티고 있지만, 더는 사명감만을 강요할 수도 없는 현실이다.

일선 시·군에서는 정원을 채우기도 어려울 만큼 가축방역관의 인기는 떨어졌다.

전남 22개 시·군 모두 가축방역관과 공중방역수의사를 1명 이상씩 두고 있다.

오리 사육량이 많은 나주와 영암은 방역관과 수의사를 2명씩, 담양·장흥·강진·영광군은 가축방역관 1명과 공중방역수의사 2명을 보유했다.

나머지 시·군은 방역관과 수의사가 1명씩이다.

그러나 일부 지역에서는 수의직 대신 행정·농업직이 AI 업무를 맡고 있다.

해남, 완도, 진도군은 매년 수의직 채용공고를 내는데도 5년 이상 지원자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반복되는 가축 전염병에 업무가 지나치게 많은 데다가 도시권 근무 선호현상도 뚜렷해졌기 때문이다.

그나마 나주는 광주와 인접했으면서도 '축산 고장'이라는 이유로 일이 힘들다는 인식 탓에 기피 지역이 되고 말았다.

가축방역관 정원은 3명이었지만 한때 하 방역관 혼자 근무하다가 지난 7월에야 1명이 더 투입됐다.

전남도 관계자는 "인력을 뽑고 싶어도 응시자들이 동시에 합격해 도시권 자치단체를 선택하는 사례도 많다"며 "업무 강도는 높지만 다른 직렬과 비교해 처우 면에서 나을 것도 없어 사람 구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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