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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L] 토트넘, 첼시 원정 26년 무승 징크스는 깰까?

입력 : 2016.11.25 13:54|수정 : 2016.11.25 13:54


토트넘이 시련의 계절을 보내고 있다. 웸블리 악몽의 여운이 채 가시지도 않았는데 이번에는 '스탬포드 브리지' 악몽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26년 간 깨지지 않고 있는 이 징크스에는 악몽의 차원을 넘어 불길한 기운마저 감돈다. 런던 연고 팀들 간의 더비전 경기가 유독 살벌하기로 유명하지만 토트넘의 첼시 원정길만은 어떤 의미에서 예외다. 마치 그 결과가 미리 정해져 있기라도 하듯 토트넘은 첼시의 홈인 스탬포드 브리지 원정으로 치르는 경기에서 26년 동안 단 한 차례도 승리를 거둬 본 적이 없다. 강산이 세 번은 변하고, 리그와 클럽의 흥망성쇠도 세대를 달리하며 역사를 쌓았지만 달라지지 않는 것이 있다면 토트넘의 첼시 원정 결과였다. '결국 이기지는 못 한다'는 이 지긋지긋한 징크스는 이번에야말로 깨질 수 있을까.

오는 27일 새벽(한국시간) 첼시의 홈인 스탬포드 브리지에서 '2016/17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13라운드 경기가 진행된다. 승점 28점으로 11월 말 현재 리그 1위에 올라 있는 첼시의 중심에는 안토니오 콘테 감독이 있다. 이번 시즌 EPL 무대에서 주목을 끌고 있는 쟁쟁한 명장들을 제치고 일약 '전술 트렌드 세터'로 떠오른 콘테 감독은 흔들리던 첼시에 빠르고 적합한 타이밍으로 '스리백 시스템'을 적용하며 팀의 선풍을 이끌고 있다. 1년 전 이맘때, 첼시가 전임 무리뉴 감독과 갖가지 풍파를 겪었던 상황을 떠올리면 지금의 팀 분위기는 격세지감이라는 단어마저 떠올리게 한다.

더욱이 선두권에서 경쟁을 벌이고 있는 팀들 중 리버풀과 첼시는 UEFA챔피언스리그 경기를 치르지 않는다는 점도 흥미롭다. 맨체스터 시티나 아스날보다 첼시의 우승 가능성이 더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는 이유기도 하다. 물론 현 시점에서 우승 타이틀의 향방을 단정 지을수는 없지만 리버풀의 강세가 다소 주춤해진 만큼 첼시의 리그 6연승이 주는 위압감은 다른 팀들에게도 상당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반대로 원정에 나서는 토트넘의 분위기는 살얼음판이다. 토트넘은 불과 3일 전 '2016/17 UEFA챔피언스리그' 조기 탈락이 확정됐다. 최근 1년 새 챔피언스리그에 대비하기 위해 손흥민을 필두로 유럽 전역에서 다양한 자원들을 보충해 온 토트넘으로서는 충격적인 결과다. 16강도 밟아보지 못하고 막을 내린 토트넘의 유럽 무대 도전. 아쉬움을 잊고 다시 한 번 리그 우승 타이틀을 가져오는데 집중하는 역발상의 발판이 될 법도 하지만 공교롭게도 다음 일정은 첼시 원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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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시나 토트넘은 나란히 2000년대 중반 이후 성장세를 지속해 온 대표적인 런던 연고팀들로 꼽힌다. 첼시는 러시아 갑부 구단주 로만 아브라모비치의 구단 인수 이후, 토트넘은 기복을 반복하던 다니엘 레비 회장의 구단 경영이 점차 안정세에 접어 든 이후부터다. 두 팀이 어느덧 프리미어리그 내에서도 존재감을 무시할 수 없는 상위권 클럽의 포지션을 획득했다는 사실은 좀처럼 부정하기 힘들다. 일찌감치 우승 트로피 수집을 시작했던 첼시에 이어 최근에는 토트넘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보다 더 자주 '빅4'에 이름을 올리는 것은 그런 추세를 보여주는 단적인 장면이다.

하지만 토트넘은 첼시 앞에만 서면 언제나 작아졌다.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EPL은 경기를 전후해 양 팀의 역사, 상대전적과 관련해 수많은 통계들이 쏟아지곤 하지만 첼시와 토트넘전, 즉 스탬포드 브리지에서 치러지는 두 팀의 경기를 앞두고 거론되는 수치는 대략 하나로 모아진다. 토트넘은 첼시 원정에서 지난 26년 동안 단 한 차례도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 11무 18패. 마지막으로 승리를 거둔 것이 1990년 2월에 치른 경기다. 영국의 축구전문지 '포포투'는 "현재 토트넘 선수 23명 중 오직 6명 만이 이 승리 이전에 태어났다"는 흥미로운 수치까지 제시했다. 선수들 대부분이 첼시 원정 승리의 '기억' 조차 없다는 의미다. 토트넘 입장에서 가장 뼈아팠던 결과는 바로 올해 5월, 2015/16 시즌 막바지에 치러진 리그 36라운드 경기였다.

당시 토트넘은 1위를 달리고 있던 레스터 시티를 승점 8점 차로 추격하고 있었다. 유일하게 우승 가능성이 남아 있던 토트넘은 잔여경기 2경기를 남겨둔 상태에서 첼시 원정길에 올랐다. 레스터 시티의 돌풍을 저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첼시전에서 승리해야 막판까지 우승 희망을 살릴 수 있었는데 전반 38분에 해리 케인이, 전반 44분에는 손흥민이 연이어 스탬포드 브리지의 골망을 흔들었다. 26년 첼시 원정 징크스가 깨지고, 55년 만에 토트넘의 리그 우승이 현실이 되는 듯 했다. 하지만 후반 13분 첼시의 수비수 게리 케이힐이, 후반 39분에는 에이스 아자르가 토트넘의 꿈을 박살냈다.

결국 두 팀의 경기가 2-2 무승부로 경기가 마무리 되면서 남은 결과에 상관없이 레스터 시티의 우승이 확정됐다. 자신들의 홈에서 마치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처럼 두 팀의 경기를 지켜보던 레스터 시티의 공격수 제이미 바디를 비롯한 주요 선수들과 클럽의 팬들이 경기 종료 직후 환호하는 장면은 영국 전역은 물론 전 세계에 속보로 전해졌다. 누군가의 악몽이 누군가에게는 기적이 된 셈. 토트넘은 또 한 번 징크스에 무너졌고, 레스터 시티는 클럽 창단 약 130년 만에 리그 우승을 차지하는 드라마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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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크스는 깨지기 전까지만 의미가 있다는 말이 있다. 26년 동안 이기지 못했지만 26년 만에 승리하게 되면 그 이전의 역사들은 '과거'가 된다. 물론 상황이 쉽지는 않다. 구장을 신축하고 있는 토트넘은 이번 시즌 영국 축구의 성지인 웸블리 스타디움을 UEFA 챔피언스리그 경기의 홈 구장으로 사용했다. 그러나 23일 AS모나코 원정에서 패하며 챔스 탈락이 확정되자 '웸블리의 저주'가 다시 한 번 주목을 받게 됐다. 1998년부터 약 2년 동안 역시 같은 런던 연고 팀인 아스날이 구장 신축 문제로 웸블리를 사용했는데 이 당시 UEFA챔피언스리그 경기 결과도 최악이었다.

토트넘이 웸블리에서 또 한 번 같은 패턴을 반복하자 일부 영국 언론에서는 2017/18 시즌부터 리그 경기까지 모두 웸블리에서 치르기로 했던 토트넘의 계획이 전면 백지화 될 수도 있다는 전망을 내 놓기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트넘을 이끌고 있는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은 "팀을 끌어 올리기 위해 필요한 것은 분석과 침착함이지 비난이나 불만이 아니다. 우리는 웸블리와 좋은 관계를 맺고 있고 나는 선수들이 하루 빨리 이곳을 홈처럼 느끼기를 바랄 뿐이다"며 웸블리 사용 철회 보도를 일축했다.

'웸블리'라는 상징적인 장소에서 그 막강한 부담감을 결국 떨쳐내지 못한 토트넘이 첼시 원정 26년 무승 징크스의 압박감으로부터는 벗어날 수 있을까. 포체티노 감독은 25일 영국 '스카이스포츠'에 게재된 인터뷰에서 "이런 타이밍에 첼시 원정 경기를 치른다는 것은 확실히 큰 부담이다. 첼시는 지금 상승 가도에 있고 좋은 감독과 좋은 선수들을 보유하고 있다. 유럽 대항전도 치르지 않는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이런 상황이 강한 동기를 부여하고 있다. 선수들 역시 그럴 것이라 생각 한다"며 내심 평정심을 강조했다.

선수단 피로누적에 각종 징크스의 압박까지. 물 샐 틈 없이 빡빡한 승점 간격으로 '빅4'를 유지하고 있는 첼시, 리버풀, 맨시티, 아스날의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기 위해서라도 리그 5위에 올라 있는 토트넘에게 이번 첼시 원정 승리는 간절하다. 무엇보다 이제는 다음 시즌 UEFA챔피언스리그 티켓 확보를 위해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사진=Getty Images/이매진스]

(SBS스포츠 이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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