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가 '최순실 국정농단 게이트'로 벌어진 일련의 사태를 '헌정공백'으로 규정하고 국회가 책임감을 가지고 수습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최 교수는 이 사태가 민주화 이후에도 이어진 '박정희 패러다임'의 효능이 다한 결과라며 정치적 기반과 사회 운영논리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됐다고 평가했다.
최 교수는 15일 오후 서울대 아시아연구소에서 서울대 교수협의회 주최로 열린 '헌정위기, 누가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시국 대토론회 기조 강연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최 교수는 "시민들이 광장에서 분출하는 분노와 요구만으로는 작금의 문제가 해결되거나 풀릴 수 없다"며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은 정부를 운영할 위치에 있는 정당과 정치인의 몫"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국회는 일단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절차를 즉각적으로 밟아야 한다"며 "탄핵 절차는 민주주의를 운영하면서 헌법을 지킬 기회로, 이를 직접 하는 것으로 민주주의가 성숙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검찰이 아닌 국회를 중심으로 한 청문회를 열어 최순실 게이트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파악해야 한다"며 "이 과정에서 대통령의 권한이 마비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으므로 정당 간 합의로 거국내각과 같은 방식으로 행정 업무를 담당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최 교수는 민주화와 세계화라는 변화에도 모순적이고 시대착오적인 박정희 패러다임이라는 권위주의가 우리 사회에 이어져 왔다고 분석했다.
그는 "우리 사회는 자율적인 시민사회의 힘이 약한 반면 권한은 대통령에게 집중됐다"며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지난날 유신시대에 정점을 보여줬던 박정희식 국가운영 패러다임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지난 두 번의 정권 교체로도 현 야권은 이 패러다임을 깨뜨리지 못했다"며 "정부 운영의 미숙으로 시민들이 투표할 때 해결하길 바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흐름 속에서 우리 국가는 작아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민간영역으로 확대했다"며 "이에 따라 공적·사적 영역 사이의 모호한 공간과 영역이 확대돼 부패한 거래가 생겼다"고 진단했다.
최 교수는 지금이 박정희 패러다임 이후의 대안을 고민해봐야 할 전환기라고 지적했다.
그는 새로운 사회의 패러다임에 ▲ 국가와 재벌 동맹의 분리 ▲ 전체적 경제 성장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한 노동자 제약 해소 ▲ 온건하게 조절된 시장경제체제 정착 등이 반영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 교수는 개헌 논의는 일단 헌정공백을 메운 뒤 논의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그는 "두 가지에 관한 시기와 노력이 중복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헌정공백을 메우는 과정에서 발견하는 문제와 대안을 통해 다음 정부에서 개헌을 심도 있게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도 기조 강연을 하고 "박 대통령은 즉각 사퇴하고 경제비상시국을 선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조 강연 이후에는 법학전문대 송석윤 교수, 조영달 사범대 교수 등 서울대 교수들이 참여해 토론이 이어졌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