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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백제 비밀 풀리나…몽촌토성서 폭 13m 도로 유적

류란 기자

입력 : 2016.11.14 19:40|수정 : 2016.11.14 19:42


백제 한성도읍기의 유적인 사적 제297호 몽촌토성이 풍납토성의 '배후성'이 아니라 풍납토성과 짝을 이루는 '도성'일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규모 도로 유적이 나왔습니다.

문화재청은 서울시 한성백제박물관이 몽촌토성의 북문 터 일원에서 발굴조사를 진행해 전체 폭이 13m에 달하는 도로 유적을 찾아냈다고 밝혔습니다.
3호 도로 전경이 도로는 너비 9.7m의 중심도로 옆에 폭 2.7m의 길이 나란히 나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몽촌토성 안쪽에서 북문을 지나 바깥쪽까지 이어지는 이 도로는 백제가 처음 개설해 사용하다 한 차례 대대적으로 수리했고, 후대에는 고구려가 개축해 이용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이 길은 북문 바깥쪽에서 40m 정도 나아가다 풍납토성 방향인 북서쪽으로 휘어집니다.

풍납토성은 몽촌토성에서 약 700m 떨어져 있는데, 이 도로가 두 성을 잇는 대로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박중균 한성백제박물관 학예연구사는 "풍납토성에서 나오는 도로 유적의 폭이 보통 6∼8m라는 점을 고려하면 몽촌토성 도로는 매우 넓다"며 "몽촌토성의 중심도로는 폭이 3m 정도 되는 도로를 양옆에 둔 1도 3로 형태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습니다.

또한 "풍화토와 잡석, 점토를 섞어서 워낙 단단하게 다진 탓에 수레바퀴 흔적이 남지 않았다"면서 "여러모로 상당히 공들여 만든 도로로 판단된다"고 덧붙였습니다.

대규모 도로 유적과 연결된 또 다른 도로 유적에서는 고구려가 길을 개축하면서 모서리를 둥글게 처리한 사각형인 말각방형 회전 교차로를 설치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삼국 시대 도로와 수혈유구 출토 토기류
박중균 학예연구사는 "이미 1980년대 몽촌토성 발굴에서 고구려 토기가 많이 출토됐다"며 "이번 발굴 결과로 고구려가 몽촌토성을 함락시킨 뒤 철군한 것이 아니라 점유·활용했다는 주장이 힘을 얻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이날 현장에서 진행된 학술자문회의 겸 설명회에 참석한 자문위원인 박순발 충남대 교수는 "이 도로가 고구려 때에 다시 쓰였는지는 오늘(14일) 조사 결과로는 확정 짓기 힘들다는 것이 위원들의 중론"이라며 추가 조사를 진행하기로 했다고 전했습니다.

박 교수는 "삼국시대 도성 내에서 도로가 확인된 것이 풍납토성의 2개 빼고는 없을 정도로 도성 내부 도로망은 중요하다"며 이 도로가 몽촌토성이 도성으로 사용된 것임을 알려주는 유적이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단, "이런 도로망이 언제 정비됐는지를 규명하는 것이 시기적으로 풍납토성과 몽촌토성 중 어느 것이 먼저 왕궁으로 쓰였는지를 밝히는 데에 중요한 단서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이번 조사에서는 이들 도로 유적 외에도 격자로 난 삼국시대 포장도로 3기, 수혈유구 18기, 구상유구 1기가 몽촌토성 안에서 발견됐고, 성 바깥에서는 사람과 소의 발자국을 비롯해 수레바퀴 흔적이 뚜렷한 통일신라 시대 유구가 나왔습니다.수혈유구 출토 관(官)자명 백제 직구단경호또 수혈유구 중 한 곳에서는 관청을 의미하는 '관'(官) 자가 좌우가 바뀐 채 찍힌 토기 조각이 출토됐습니다.

이 토기는 4∼5세기 백제 한성도읍기를 대표하는 양식인 직구단경호, 주둥이가 곧고 입이 짧은 항아리로 풍납토성에서는 1999년 고위직 관료를 뜻하는 '대부'라는 글자가 새겨진 직구단경호가 나온 바 있습니다.

한성백제박물관이 2013년부터 조사하고 있는 몽촌토성은 1983년부터 1989년까지 서울대박물관, 숭실대박물관, 한양대박물관, 단국대박물관 등이 발굴조사를 벌여 백제 한성도읍기 도성으로 학계의 주목받았던 곳입니다.

그러나 1990년대 풍납토성에서 백제 유물이 무더기로 쏟아지면서 풍납토성에 딸린 성으로 위상이 재조정됐습니다.

박물관 관계자는 "대규모 도로 유적이나 '관'자 토기 발견은 몽촌토성이 백제의 또 다른 도성이었음을 입증하는 유물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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