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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안종범, 왜 '뇌물' 아닌 '직권남용' 혐의인가

입력 : 2016.11.02 17:40|수정 : 2016.11.02 17:40


검찰이 2일 '비선 실세' 최순실(60)씨와 안종범(57)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비서관에게 적용한 혐의는 형법 제123조 '직권남용' 혐의다.

다른 법 조항보다 수사 실무에서 많이 적용되는 편은 아니라는 평가다.

검찰 수사 지휘부는 이날 영장 청구 30∼40분 전까지도 적용 혐의를 놓고 고심을 거듭한 것으로 알려졌다.

◇ 모금 '강제성' 시인한 진술로 뒷받침

직권남용은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사람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하는 행동을 말한다.

최씨는 아무런 공직이 없으므로 범행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이었던 안 전 수석이 주범이고 최씨는 공범이 된다.

즉, 최씨와 공모한 안 전 수석이 자신의 직권을 넘어서 대기업들로부터 미르·K스포츠 재단의 800억원대 기금을 반강제로 받는 등 기업이 의무 없는 일을 하거나, 기업의 권리행사를 방해했다는 얘기가 된다.

이는 검찰이 롯데 고위임원 등으로부터 모금의 강제성을 인정하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하면서 성립한 것으로 풀이된다.

직권남용 혐의가 유죄로 판단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및 1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린다.

다만, 검찰이 계속 직권남용 혐의를 적용할지 아니면 추가 수사에서 뇌물 혐의 등으로 뻗어 갈지는 미지수다.

검찰 관계자는 "직권남용은 수사 실무에선 가장 나중에 고려하는 죄목"이라며 "현재로써는 구속영장을 받기 위해 직권남용이 가장 적절하다고 판단했겠지만, 수사가 초기인 만큼 앞으로 혐의가 바뀌거나 추가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판사는 "추후 검찰 수사 과정에서 기금 모금 과정에서 부정한 청탁이 드러나면 뇌물죄를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만약 강압성이 명확하게 드러난다면 심지어 공갈죄까지 검토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견해도 제시했다.

◇ 직권남용-뇌물죄 가르는 핵심은 '대가성' 만약 뇌물 혐의를 구성할 경우 형법 제130조의 '제3자 뇌물제공'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고 관측된다.

이는 공무원이 그 직무에 관해 부정한 청탁을 받고 제3자에게 뇌물을 공여하게 하거나, 공여를 요구·약속함으로써 성립한다.

5년 이하 징역, 10년 이하 자격정지에 해당한다.

뇌물죄와 직권남용죄 적용을 가르는 핵심은 대가성이다.

다른 사람에게 돈을 제공하거나 출연하도록 하는 것에 대가성이 인정돼야 한다.

그러나 개별 기업마다 처한 상황과 내부 사정, 의사 판단이 다르므로 대가성 인정이 쉽지 않다는 어려움이 있다.

최씨와 안 전 수석은 기업들로부터 모종의 청탁을 받고 제3자인 미르·K스포츠 재단에 뇌물(기금)을 준 것으로 의심됐다.

그러나 기업들은 검찰 조사에서 "부정한 청탁을 하지 않았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3자 뇌물죄가 성립하려면 기업이 '부정한 청탁'을 하는 등 뚜렷한 대가성 입증이 필요한데 기업들이 자신들에게 불리한 진술을 피하며 적용이 어려워졌다.

예를 들면 기업 입장에선 어떤 사업상 혜택, 수사·재판 관련 편의, 기업 총수의 사면·복권 등 무언가를 기대하고 이런 행위를 해야 했다.

뇌물죄를 구성하려면 구체적 대가성이 있어야 한다.

현재까지 드러난 사실만으로는 기업 입장에서는 어쨌건 돈을 출연한 사실은 있지만, 대가성 입증이 쉽지 않은 측면이 있어 보인다는 게 법조계의 관측이다.

◇ '누군가에 제공' 아닌 '재단에 출연'도 변수 누군가에게 이익을 제공한 게 아니라 일단 표면상 공익적 목적의 재단에 기금을 출연한 행위라는 점도 변수다.

대법원 재판연구관 출신의 한 법조인은 "대가성 여부가 핵심이고, 이 밖에도 뇌물죄를 적용하기에는 '뇌물제공의 상대방'이 애매해 보인다"며 "특정한 누군가에게 제공한 게 아니라 재단을 설립·출연했다는 점에서 이 부분을 파고들 법리 구성 보완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법조계 관계자는 "검찰이 뇌물 혐의를 적용하려 할 경우 기업이 어떤 특정한 혜택을 기대했는지를 밝히고, 미르·K스포츠 재단이 뇌물제공 상대방인지 등을 법리적으로 보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즉 검찰로선 일단 뇌물 혐의보다는 입증이 쉬운 직권남용 법리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청구하고 향후 수사를 통해 뇌물 혐의 등 다른 혐의를 추가 적용하는 방안을 시도할 것으로 전망된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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