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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르·K스포츠에 돈 댄 기업 전수조사…'차떼기' 데자뷰?

이정국 기자

입력 : 2016.11.02 15:49|수정 : 2016.11.02 15:49


'비선 실세'로 알려진 최순실(60·최서원으로 개명)씨 관련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미르재단과 K스포츠 재단에 기금을 출연한 기업 전반을 수사키로 함에 따라 대기업들이 검찰에 대거 불려올 처지에 놓였습니다.

검찰은 이르면 내일(3일)부터 두 재단에 출연한 기업 관계자들을 차례로 불러 조사할 방침입니다.

경제개혁연대 등에 따르면 미르·K 스포츠재단에 자금을 출연한 기업은 모두 53개입니다.

이처럼 많은 기업이 단시간에 검찰에 무더기로 불려와 조사받는 상황은 2003년 말부터 다음 해 초까지 이른바 '차떼기 사건'으로 불렸던 대선자금 수사가 이뤄진 이래 12년 만의 일입니다.

당시 대부분의 기업을 조사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2002년 대선 기간 한나라당이 삼성, 현대, LG, 한화 등 대기업으로부터 불법으로 정치자금 823억원을 받았다고 발표했습니다.

17대 총선을 목전에 둔 시점에 검찰이 이회창 후보를 중심으로 한 '차떼기'의 전모를 밝히면서 당시 한나라당은 최대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박근혜 대표는 '천막당사'를 차리는 등 배수의 진을치고 121석을 얻어내 정치적 입지를 다지는 계기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차떼기 사건'과 미르·K 스포츠 재단 모금 사안은 대기업들이 대규모 조사 대상이 됐다는 점에서 '무늬 상' 공통점이 있지만, 사안의 실체는 꽤 다른 측면도 많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검찰에 나서는 기업들의 신분입니다.

'차떼기 사건' 당시에 검찰 조사를 받은 기업들은 불법으로 정치자금을 제공한 탓에 대부분이 피의자 신분이었습니다.

반면 이번에는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과 최순실이 공동으로 강압적인 방식으로 돈을 받아냈다는 의혹이 일면서 출연금을 낸 기업들은 일종의 피해자로서 참고인 신분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검찰이 적용한 직권남용 혐의는 대법원 판례상 공무원이 자신의 일반적 직무권한에 속하는 사항에 관해 실질적, 구체적으로 위법·부당한 행위를 한 경우에 성립합니다.

즉, 정당한 권한 이외의 행위를 하는 것입니다.

이 때 '일반적 직무권한'은 반드시 법률상 강제력을 수반해야 하는 건 아닙니다.

정부 각 부처에 대한 지시와 협조 요청을 할 수 있는 청와대 수석이라는 신분상의 막강한 직무권한을 남용했다는 게 검찰 판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안 전 수석 측은 검찰 조사에서 모금에 강제성이 없었다고 주장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다만, 재단에 돈을 낸 행위가 포괄적인 대가를 바라며 이뤄진 것으로 해석될 경우 일부 기업은 '차떼기 사건' 때와 마찬가지로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시민단체인 투기자본감시센터는 지난 9월에 뇌물수수 혐의로 최순실 씨와 안 전 수석을 검찰에 고발하면서 "기업들이 조직적으로 거액을 모은 것은 세금 감면 등 특혜를 받으려는 의도가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이번에 두 재단에 돈을 낸 기업들 가운데 일부가 정책적인 혜택이나 총수 등의 사면·복권 등 모종의 이익을 기대한 정황이 드러날 경우 '비선 실세' 의혹에 맞물려 별도 사법처리가 검토될 여지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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